작년에 그만둔 그곳에서 많은 일이 있었다.
매주 약 50여 시간, 하루 평균 9시간 반, 토요일까지 일했지만 그보다 일찍 들어간 일요일 직장도 바로 그만둘 수는 없었기에 휴일 없이 일주일 내내 일했다.
그나마 조금 쉴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반차 때뿐.
사장은 꽤 오래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나 역할에 대해서는 큰 부담 없이 항상 내팽개치고 수시로 자신의 볼일을 보러 나가기 일쑤여서 어쩌면 새로운 타인이 매번 메꾸어야 했을 그 공백은 항상 내 몫이었다. 사장은 마치 스페어 선수처럼 행동하면서 굳이 일하는 공간에서 불편한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냈다. 자신의 존재감을 손님에게든 직원인 우리에게든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렇다고 누군가 열심히 일해줘야 할 그 구역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니... 두 구역을 오고 가며 늘 바쁜 것은 결국 나였다.
점점 지쳐갔다. 기존에 일하던 분들은 나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과연 저렇게 계속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정신없이 일을 닥치는 대로 해도 오후 4-5시쯤엔 시간에 버퍼링이 걸린 듯 시간의 흐름이 처지기 시작했다. 퇴근은 7시 30분. 사장도 직원도 모두 자리를 비우고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기도 했지만, 그 마감시간도 넘길 때가 종종 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늘상 서비스직의 마인드로 친절함을 짜냈다. 간간이 진상들을 마주칠 때면 그나마 유지해오던 몸과 정신이 다 부서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내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은 그 직장에 들어가고 약 1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마 그 시기에 맞은 1차와 2차 백신도 조금 의심스럽긴 하다.
원래 생리량이 많긴 했지만, 그 시기에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졌고, 그날에는 이대로 업무를 지속하기 힘들었던 터라 사장한테 양해를 구하고 근처의 2차 병원으로 갔다. 아마도 근종 때문인 듯했다. 여자 입장에서 피가 쏟아지는데도 초음파를 보는 것은 괜히 의사한테 부담 지우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그 의사가 '피날 때 봐야 뭐 때문에 피가 나는지 더 잘 알 수 있다'라고 하는 말에 내심 안도했다.
사실 원래 다니던 병원까지는 꽤 거리가 있고 사장의 눈치도 보여서 그나마 가까운 이곳으로 온 것이었는데, 거기서 '수술'까지 말이 나왔다.
당장 쏟아지는 피에 딱히 도리가 없었기에 사장의 입장에서는 염치가 없었겠지만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그날에 수술 전 검사까지 마쳤다.
이후 드나들던 근종 카페에서 그 병원의 해당 의사에 대한 일말의 정보를 구하기도 했는데, 대강의 내용은 '그 의사한테 수술받았으나 유착을 다 제거 못하고 수술을 끝냈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너무나 무심하게 그리 말하더란다. 내심 나도 기존에 다니던 3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 당시에는 '내 몸이 어떻게 되는 것'보다는 사장의 눈치가 보이는 것을 더 걱정했다. 3차 병원에서 또다시 수술 전 검사와 수술을 한다고 시간을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로 다음날인가 한 주 뒤인가 수술 전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갑상선 기능 항진으로 전신마취가 잘 안 될 수도 있어서 수술이 불가'하고 갑상선에 대해서는 추가적 검사가 필요하단다.
같이 일하던 직원분이 과거에 갑상선암을 앓은 적이 있어서 대강의 이야기를 듣고 갑상선 초음파, 세침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갑상선암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초음파를 본 의사 선생님도 약간 그런 기색이었고, '생리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직원분의 이야기도 나랑 비슷했기에.
일주일 후, 어머니와 동행해서 검사 결과를 들었는데, 이미 카페를 통해 잘하는 의사와 병원까지 물색해둔 터라 마음을 단단히 해놓은 상태였다.
결과는 역시나 암이 맞았고, 당황해하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생님이 아시는 잘하는 곳이 있나요?'라고 떨린 목소리로 말하는 어머니를 이끌고 나오며, '이미 다 알아놨으니 걱정마라'고 다독였다.
그 후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갑상선암은 진행속도가 느린 암이라 응급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그 교수님의) 수술대기기간이 약 2개월~4개월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생리는 많기도 멈추기도 해서 꾸역꾸역 업무를 이어갔다. 암 진단과 동시에 일을 바로 그만두지 않은 것을 나중에야 엄청 후회했다.
갑상선 수술까지 약 열흘 정도가 남아있던 그날, 하필이면 일주일 중 제일 바쁜 월요일 아침, 제일 큰 생리대는 무용지물이었다. 피가 와르르 쏟아졌다.
제일 바쁜 업무를 맡고 있던 터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지만 '비워야 했다'. 이대로면 바닥도 피바다가 되리라.
그날의 일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 저편으로 묻어두었는데...
뭐... 온갖 피로 범벅이 되었던 날이다.
결론은 Hb 7.9. 대학 병원에서 받은 수혈 한 팩이었지만, 나와 부모님한테는 참 힘들었던 날이다.
혈액이 부족하니 심장이 조이던 그 느낌은... 그러면서도 당장 응급실에 달려가지 않고 버티던 나의 미련함이란...
뒤늦게 부제목인 '말조심'에 대해 써보면, 그 시절 피 말리는 업무량으로 '암 걸릴 거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래도 '진짜 암경험자'인 직원분과 꽤 가까이 지내서 그녀의 앞에서는 이 말을 자제했었다. 이런 사실을 알았던 그녀는 농담으로 '암 걸릴 거 같다 하면 진짜 걸릴 수도 있어요'하며 힘들 때마다 나를 많이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다.
이제 그녀처럼 나도, 우스갯소리로 누가 암 걸릴 것 같이 힘들다고 하면 '그러다 진짜 암 걸릴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먼저 알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몇몇 지인들로부터는 정말 고마운 마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요새 내 주위에 갑상선암 왜 이렇게 많냐', '그건 완치율 높아서 괜찮을 거야'이렇게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떠들어대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무성의함에 실망하기보다 그들과 나의 거리가 그 정도로 가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오히려 장점도 있었다. '그렇게 별거 아닌 거 같다면 당신이 걸려도 무방하겠군'이라고 모든 갑상선암환자와 경험자들이 생각할 것이다.
이후, 나는 몇 년 전 정신적인 고비를 통해 한 번 정리했던 인간관계를 다시금 돌이켜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경을 덜 쓰기로 했다.
예나 지금이나 타지에서 내가 수술받는 당일 아침, 집에서 식사하며 눈물을 쏟았다는 어머니나,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대신해 열흘 정도 나랑 함께 타지에 가서 내가 너무 외롭지 않게 같이 있어준 남자 친구, 그 외 멀리서도 각종 정신적ㆍ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외숙모, J 이모, W형님, E언니, J선생님, A언니 등등 정말 내가 신경 쓰고 살아야 할 사람들은 손에 꼽는다.
곧 그들과 얼굴 볼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