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사에 진지한 편이다. 예를 들면 단톡에 사소한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것에도 쓸데없이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고, 누가 나에게 보낸 짧은 메시지도 그냥 가볍게 무시해버리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쿨하지 못하고 피곤하다. 신경을 쓰는 것에 게임 속 HP MP같이 한계가 있다면 쓰지 않아도 될 곳에 한정된 에너지를 마구 소모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술자리도 힘들다. 직업 특성상 직장 내 술자리가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으나, 사적인 모임에서 술자리도 기피하는 편이다. 일단 자리를 잡고 앉는 것부터 하나의 난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눈치싸움을 하다 호감이 있는 이성이나 말 많고 재밌어 보이는 사람의 근처에 앉는다. 특출난 외모도 언변도 없는 나에게 가장 편한 자리는 마지막에 남은 자리다.눈치싸움을 기다리기 힘들 때면 가장 나가기 좋은 자리에 앉는다.
가본 적이 꽤 오래된 술자리에서 기억을 떠올려본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 같은데 술집 특유의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옆사람들의 각종 말소리에 뒤섞여 잘 들리진 않는다. 그저 마찬가지로 어색하고 딱히 할 게 없어서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듯한 앞과 옆의 사람들을 흉내 내고 있다. 기억에 남는 말은 딱히 없다. 소음 속으로 들리는 몇몇 어휘를 통해 대강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짐작해볼 뿐.
모임(그림, 독서, 운동 등등)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이상으로 가까워지긴 힘들었다. 20살 넘어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지금 남은 이들 중에 술자리를 통해 가까워진 이들은 거의 없다. 평소 술자리를 그리 즐기지 않은 탓도 있겠다.
거의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각종 모임들의 단톡 메시지에 대해 알람을 꺼놓은 지 오래다. 딱히 특별한 이유 없이 들어가 있는 3개의 단톡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들에 대해 이사람이 저모임사람인지 이모임사람인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매번 자주 톡을 올리는 사람은 대강 그 말이나 사진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사람의 특징을 파악하게 되지만, 마찬가지로 그사람이 어느모임 소속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과의 모바일 소통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는다. 때때로 몰랐던 뉴스거리들도 알게 되고, 모르는 타인의 일상에 대해서 듣고 보기도 한다.
나도 가끔씩 날씨 얘기 같은 걸 하기도 한다. 아직도 조금 낯간지럽긴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편할 때도 있다.굳이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같이 웃고 떠들면 그만. 그 이상 바라는 것도 줄 것도 없다.
사람관계가 꼭 진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한편으로 너무 지칠 것이다. 때로는 가볍게 웃고 떠들고 지나갈 그런 사람들도 필요한 것 같다.
여태껏 길지 않은 인생을 돌아보면 그런 사소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 삶의 한 부분을 채워준 것 같다.
서로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고, 그저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채우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내가 진정으로 진지하게 여기고 챙기며 함께 나아가야 할 사람들은 이미 한도 초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