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가 많아서 좋다

작고 큰 가방을 메고

by 박냥이

이런 걸, 힙색이라고 하던가? 왜,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종종 배에 차고 계신 잔돈 가방 있잖은가. 그것을 대각선으로 한쪽 어깨에 맬 수도 있는 가방.

최근에 힙색 하나를 더 장만했다. 처음에는 많은 물건을 넣을 수도 없고 어깨가 비대칭이 되는 게 염려스러워 사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애매하게 남은 주문금액과 쿠폰을 쓴다고 의류보다 가격이 저렴한 상품을 찾다가, 귀여운 디자인의 힙색이 보여 주문했다. 이후에 운전도 시작하면서 항상 들고 다니던 백팩의 짐을 자동차가 조금 덜어주었고, 이제는 외출 시에 힙색을 더자주 가지고 나간다.


빨강, 하양, 남색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나의 작은 힙색. 힙색이라는 어휘의 발음이 그리 좋진 않아서 다른 단어를 떠올려보려 해도 잘 생각나지 않으므로 그냥 힙색으로 쓰려고 한다.

성인 남자 손 두 개 정도의 크기, 이쪽 어깨에 너무 많이 걸친 듯하면 다른 쪽 어깨에 옮겨 메며 3시간여의 느릿느릿한 등산을 함께 한다. 크기는 작지만 속은 알차다. 주머니도 3개. 차키와 지갑, 안경닦이, 여분의 생리대까지. 거기다 무선 이어폰과 스마트워치까지 들어간다. 산에 갈 때는 여기서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지갑은 빼고 온다. 사실 지갑을 빼도, 어머니가 보시기엔 '뭐 그리 쓸데없는 걸 많이 가져가냐'라고 하실 정도다.

오랜만에 아이패드로 그려봄, 제목 그림은 핸드폰으로.


가방뿐만 아니라, 아노락이나 바람막이에 있는 주머니 하나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주머니가 많은 옷이 좋다. 경험상 꽤 가격이 나가는 아웃도어 의류들은, 주머니가 풍족한 거 같다. 왼쪽 가슴 안쪽의 작은 지퍼 주머니엔 차키를 넣을 때가 많다. 어떤 주머니든 지퍼가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주머니 위치에 따라, 지퍼 유무에 따라 들어가는 물건도 달라진다. 잘 흘러내릴 수 있는 배 쪽 주머니에는, 비상시 쓸 휴지 조각이나, 곧 버려야 할 쓰레기가 위치한다. 같은 위치라도 지퍼가 있으면 한층 가격이 높아진 물건이 들어간다. 무선 이어폰이나, 핸드폰 같은.


나는 어쩌면 쓸데없어 보이는 짐을 한가득 들고 다닌다.

오죽하면 가족들이 '보부상'이라고 불렀던 때도 있다.

가끔 가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잊어버린 적도 많다.

예를 들면, 손톱깎기와 보조배터리, 각종 진통제, 충전기, 여분의 휴지와 비닐과 마스크... 또 뭐가 있었더라...


그나마 학창 시절보다는 낫다.

그때에 약 1킬로 정도의 학교에서 학원 가는 길에, 거의 전과목의 교과서를 다 가방에 넣고 다녔다.

같은 방향으로 하교하던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내 가방을 들어보고는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책자체의 무게가 모이면 어마어마해지니,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한결 가벼워진 편이다.


등산할 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물병이다.

동네 뒷산이라 크게 힘들이지 않고 굳이 물 마셔 가면서 오르지 않아도 오를 수 있음에도, 항상 물을 챙긴다.

핸드폰만 달랑 들고 가시는 어머니께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한다. 대학 시절에는, 생수병을 늘 들고 다녔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먹으며 충분히 반복해서 쓴 생수병을 버리고 또 사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항상 뒤로 매는 가방 외에 쇼핑백을 하나 더 들고 다녔다. 거기에는 '바로 꺼내기 편한' 여러 물건들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홀가분하게 짐 없이 나서고 싶기도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아마 오래된 습관이 된 것 같다.

비슷하게 머릿속에도 온갖 잡념이 가득하다. 등산을 나와서도 브런치에 하염없이 지껄이게 된다. 공상은 즐거울 때도 있지만 지칠 때도 있다.

정리정돈은 힘겹다. 오늘도 어머니의 겨울옷 정리 권유를 능글맞게 피하고 산에 온 것이다. 그나마 오래전 정리했던 것은 400명이 넘던 카톡 친구를 몇십 명 내외로 줄인 것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타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불필요하게 많아지는 것 같다.

보통은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우려고 산에 온다지만, 내경우는 마치 오래된 장롱 구석의 옷가지를 정리하려고 다 끄집어내어 한 군데 쌓는 것처럼, 여러 잡념들을 쏟아내게 된다.

'00아,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

이모와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난다.

그렇게 쏟아지는 새로운 생각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무엇에 빨리 질려버리는 일도 허다하니, 브런치도 뜨개질처럼 이내 시들해져 버리진 않을까?

어쩌면 지금도 곧 지나가버릴 '중독의 시간'일지도.

이순간 나를 내려다보는 나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마치 지나가는 생각들이, 자신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써달라고 나를 붙드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직감에만 의지한 채로 할 수 있는 일이 이제 많이 없어져서 그런 걸까. 사회에 나가면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내 진심과 감정을 숨겨야 할 일들이 투성이니까. 본능에만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나 보다. 그나마 백수인 지금에 그래서 글을 더 많이 쓰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쓸 만큼 쓰고 나면 만족한 활자들이 나를 좀 쉬게끔 놓아주기도 하니 그 시간 동안에는 멍 때리면서 주위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