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이 이야기는

아토피와 서퍼

by 문힐

이 글은 물이라면 기겁을 했던 어린 아토피 환자가 서퍼가 되는 이야기이다.


바닷물로 소독하면 좋다더라는 이야기는 대체 누가 했는지, 첫 바다의 기억은 대천해수욕장의 뜨거운 햇볕과 진물과 허물이었다. 갈라져 있던 오금과 팔로 끈적이는 모래가 달라붙어 계속 따갑기만 했고, 작은 어깨는 금방 갈라지며 허물이 벗겨졌다. 아리고 아픈 피부를 접고 접어 바닷물을 꼬옥 짜내고 체액까지 짜내어 몸을 걸레 짜듯 쥐어짜고 싶었다. 너무 아팠고 다시는 바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단 한 번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고, 수영은 당연히 못 했고 샤워가 아니면 가능한 한 물에 닿고 싶지 않았다.


만성적이고 재발이 반복되었다. 보기 싫은 진물 가루가 교복 스타킹에 늘어 붙어 있다가 살점과 함께 떨어졌다. 어깨에 앉은 버석이는 흰 각질은 내 삶과 함께 컸다. 밤새 긁다 수면패턴이 일그러지기는 일쑤였고, 고개를 돌리거나, 팔다리를 쭉 펴고 걷지 못하니 어깨는 굽었고 눈이 흐릿해 교복을 입었을 뿐 노인 같았다. 노인의 움직임처럼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고, 나를 낳은 어머니보다 주름이 많았다. 스테로이드도, 한약도, 식이요법도, 유황오리간장도, 사해소금도, 약재목욕도, 해 본 것 안 해 본 것 없이 부모님의 희망과 물질적 풍요가 꺼져갈 때 성인이 되었다.


아토피를 가진 인간이 미래가 두려운 이유는 예측불가능성 때문이다. 질병은 자주 질서를 잃는다. 단단했던 피부가 갑자기 진물을 쏟을 수도 있고, 갑자기 달라진 날씨에 고개가 돌아가지 않을 수 있어, 하루하루가 버거우니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인간의 성장과정과 결핍, 신체적 고통과 병이 가져오는 심리적 고통을 배우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었던 나는 심리학 전공했지만 중간고사를 보던, 리포트를 쓰던, 빨리빨리 해치우고 몸을 돌보느라 그 무엇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버렸다. 하루 1통을 쓰는 로션값이라도 버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아주 오랫동안 연속성 없는 짧은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을 만났다.


아토피 환우회에서 만난 H는 과거 나보다 훨씬 심한 아토피를 겪었지만, 자기 부담금 100%를 내고, 듀피젠트를 시작한 뒤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토피를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고 손을 놔버리면) 삶의 중요한 시기들이 빵꾸가 나요. 계속. 그러면 내가 그때 해야 하는 것들을 못 하면서 밀리거나, 그 이후에 더 크게 못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거야.”

아, 나는 버티며 살아오는 것만으로 바빠서 그때그때 내 삶에 꼭 필요한 조각들을 모으지 못했었나.. 싶었다. 한 번이라도 내가 아토피가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나? 피부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이지? 만약 돈으로 그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삶을 살 것인가? 아주 많은 질문이 들었다.


그리고 S가 떠올랐다.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늘 나보다 한참을 앞서서 놀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퀼트나 매듭공예에 빠져 같이 동대문 부속상가를 쏘다니며 바늘과 골무를 추천해 주었고, 대학을 졸업하고선 임상심리 수련을 한다고 제주도로 훌쩍 넘어가더니 제주의 온 동네방네 맛집과 오름을 섭렵하고는, 봄이면 무럭무럭 자라나는 고사리를 따 장아찌를 담그고 고사리 김치를 담그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고작 한 살 차이였지만 나는 삶을 즐기는데 S를 따라갈 재간이 없었다. 어떻게 그녀는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있었을까.

가장 기억나는 그녀의 모습은 역시 바다 위에서였다. 제주도로 놀러 간 내게 그녀는 새로 샀다는 서핑복을 자랑했다. 보온의 우수성과 입는 방법에 대해 꽤 열심히 설명하고선, S는 반나절만 서핑하러 가도 되냐고 물었다. ‘이 날씨에?’ 싶었지만 나도 서핑이 조금은 궁금했다. 꽤나 매서운 바람이 부는 2016년 10월 15일 쌩 제주바람을 다 맞으며 서핑하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의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그들은 절대로 중간에 바다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마냥 먼바다를 보며 둥실둥실 떠 있었고 가끔 파도를 타는 듯했다.

지금 생각하면 거긴 서핑샵도 없었고, 샤워시설 당연히 없었고, 너무 추웠는데... 모래와 물이 뚝뚝 떨어져 근처 민가에서 찬 물만 나오는 수도를 잠시 빌려 소금기만 헹구고 나온 S는 솔직히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아니 저게 뭔데! S는 또 나의 호기심에 불을 질렀다.


S는 지금도 금요일 밤이면 바다를 향해 떠나는 서퍼이자, 동료서퍼인 남편과 함께 애기서퍼를 기르고 있다. 이제 곧 둘째 애기서퍼를 낳을 예정이라 한동안 바다에 못 들어가지만, 그녀에겐 올해 안에 바다에 들어가겠다는 목표가 있다.


H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냥 몸빵하며 버티는 삶이 아니라 S처럼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약값이 얼마이든, 지금 현재를 살 수 있다면 buy, 현재를 살 수 있다면 live, 빚을 내더라도 내 삶에서 한 번은 해보자 싶었다. 엄마와 아빠가 선택한 치료가 아닌 내가 선택한 치료. 내가 내 돈으로 온 힘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었다.

사이폴부터 MTX, 릴리사의 올루미언트, 마침 나왔던 애브비사의 린버크까지. 몸에 맞고 안정적인 약을 찾아 열심히 먹고 몸을 관찰하고 더 괜찮아지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내가 마음만 먹으면 될 일이었다. H의 듀피젠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치료에 마음을 먹기까지 걸렸던 시간, 병원을 옮겨가며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의 안지영 선생님에게 오는 시간 동안 차례대로 임상을 마친 약들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었고, 각 제약회사에서 운영되는 환급프로그램과 최소 금액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줄 실손 보험을 들어 두신 부모님까지 모든 타이밍과 조건이 나를 돕고 있었다.


2020년부터 치료를 시작한 지 벌써 5년 차. 삶이 바뀌었다.

매일 먹는 약은 일상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켰다. 땀을 내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입을 수 있는 옷이 다양해졌다. 더 오래 늦게까지 울고 웃고 떠들어도 몸이 시끄럽지 않았고, 잠을 잘 잤다. 금세 화가 나지 않았고 꽤 평온한 사람이 되었다.

작년 여름방학을 앞둔 너무 더웠던 어느 날, 문득 ‘나도 파도를 탈 수 있을까?’ 싶어졌다. 1박 2일 강습을 찾아보고 바로 결제를 했다. 만약 서퍼가 된다면 한 살이라도 어린 서퍼가 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 내내 바다가 나에게 친절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에 걱정을 거듭했지만, 나는 너무 친절한 서핑 샵과 강사님을 만나버렸다.

푸쉬! 업!

피부가 따갑다거나 바닷물이 짜다거나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중심을 잡는 게 중요했다. 아토피 때문에 가려져 알지 못했던 운동신경이 나를 첫 파도에 벌떡 일어서게 했다. 파도는 나를 힘차게 밀었고, 나는 그 위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렸다. 파도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느끼고 말았다. 그렇게 2024년의 여름의 주말은 모두 바다에서 보내며 결국 한 살이라도 더 어린 서퍼가 되었다.

(심지어 2025년에는 내 여름친정집이 되어버린 서핑샵의 여성 크루 중 제일 잘 탄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파도는 한 번도 같은 모양으로 오지도 않고, 기다린다고 오지도 않는다. 제멋대로 오고 언제 올지도 모를 그 파도는 마치 삶과 같아서 나는 늘 준비되어있어야 했고, 멀리서 예측하고, 타이밍 좋게 서둘러야 했다.


미국에서는 PTSD 환자나 우울증 환자에게 서핑을 처방한다고 한다.

총알이 날아다니던 전쟁터에서 돌아와 정신적 외상으로 괴로워하는 군인들이 지금 이 순간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바로 통돌이 당해버리는 지금 여기에 데려다 놓는 것이다. 숨은 쉬어야 하니까 강제로 Here and Now를 하는 셈이다.


S의 서핑을 보고난지 8년 만인 2024년 10월, 나는 S와 함께 서핑 약속을 잡았다. 함께 라인업에 들어갈 생각에 들뜬 우리는 얼마나 추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재밌을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물론 그땐 고작 2달 서퍼 경력이었지만 나는 S가 왜 그렇게 행복해 보였는지,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있을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도 S처럼 생생하니까.


라인업에서 나를 잡아먹을 듯 다가오는 큰 파도도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고, 용기내면 타 볼 수도 있고, 정 안 되겠으면 바닷속으로 잠깐 숨으면 된다. 그다음 파도가 올 거고, 또 나는 선택할 수 있다.

H가 얘기했던 것처럼 삶의 중요한 시기에 빵꾸 안 나게 그때 그 순간 선택하면서. 더 이상 나를 아토피 때문에 못 하거나 안 하는 사람으로 두지 않고. 파랗고 진하고 청명한 시간을 생생히 살아갈 수 있도록.


2025.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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