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서툰 사람들』서평
대체 어떤 사람이 상실의 슬픔에 서툴지 않을 수 있을까.
짝꿍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바로 전 날까지도 운동을 마치고 매주 일요일 점심약속을 기억하며 내일보자셨고, 직접 나와 문을 잠그셨고, 다음 날 아침 혼자 조용히 가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밥은 직접 해 드셨고, 지팡이보다는 스스로 걷고 싶어하셨고, 좋고 싫은 게 분명했던 엄마.
역사교사셨고, 어리디 어린 내가 학교 선생님이 되어 학교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것을 귀여워하셨던 엄마.
젊은 날 수많은 나라를 다녀오셨고, 근 몇 년은 집과 성당과 공원과 운동센터가 전부였지만, 나의 여름날 바다 위 서핑대회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셨던 엄마.
당신께서 직접 압력솥으로 하신 밥 내음에 신나하고, 들어간 잡곡을 궁금해 하는 나에게 밥 가져가라고 챙겨주시던 엄마.
10년을 만난 짝꿍은 어머니의 나이듦과 병과 병의 호전과 일상을 나와 함께 나누었고,
나는 엄마가 한 분 더 있었다.
분명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막연했지만 엄마의 죽음에 대해 상상한 적이 있다.
짝꿍은 엄마가 아프셨던 후로 많게는 매일, 적게는 주3일, 저녁 8시면 늘 엄마를 운동시켜드리러 갔었다. 엄마에게 가는 화/목 저녁은 일찍 먹어야 하니까 꼭 칼 퇴근. 매주 목요일에는 엄마가 출근하는 우리를 대신해 주민센터에서 페트병을 쓰레기 봉투를 바꿔다주셨다. 나랑 짝꿍, 짝꿍의 동생도, 엄마랑 매주 일요일 점심을 같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었다. 이 곳으로 이사와 정말 단 한 번도 우리 집 전기밥솥을 사용한 일이 없었다. 엄마가 늘 압력솥으로 새 밥을 해주셨으니까. 봄이면 엄마를 위해 텃밭을 만들었다. 첫 해엔 상추랑 깻잎만 길렀는데, 엄마가 재밌어하셔서 다음 해엔 가지도, 토마토도, 땅미나리도, 호박도, 두릅도 키웠다. 엄마는 늘 물을 참 아끼는 분이셔서 집 밖에 큰 고무통에 빗물을 잘 모아 자연을 기르셨다. 호박은 어쩜 그렇게 잘 키우시는지 꽃 수분을 손으로 슥슥 해주신 담에 적당한 크기로 맺힐 때까지 잎으로 숍숍 가려 키워내시고 더이상 잎으로 가려지지 않는 크기가 되었을 때 손녀딸 주려고 손꼽아 수확할 날을 기다리셨다. 그러다 누군가 홀랑 따 가버려서 슬퍼하기도, 그래도 그 다음 봐놨던 호박은 아직 잘 숨어있어서 기뻐하시고 그렇게. 한 달에 한번 손녀딸이 갈비랑 게장에 청국장을 사오면 한참 재미지게 웃으시고 나중에 손녀딸 가고나서야 지나가는 말로 말씀하셨다. 무럭무럭 커서 할머니 보겠다고 꼬박꼬박 오는 거 기특하다고.
엄마는 해가 바뀌어 모여든 가족들이 재잘대던 소리를 들으며 즐거웠던 마음을 노트에 몇자 남기시곤 가셨다.
일상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냥 달라졌다.
돌아가신지 한 달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나와 짝꿍은 별일 없는데 공연히 엄마 집에 들러 엄마냄새를 맡고 보일러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돌아온다.
상상은 했었지만, 모든 상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모든 일은 너무 한꺼번에 닥쳤다. 가장 가까운 일상을 보냈던 나는 당신과 법적 가족이 아니었고, 당연히 슬픔을 위해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고인과 어떤 관계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나와 어머니와 짝꿍만 알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은 모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가 밥솥 뚜껑 위 밥물을 모아 드시던 습관을 알고, 어떤 목소리의 톤으로 이야기 해야 잘 알아들으시는지 알고, 어머니 살림살이 있는 자리에서 제깍 잘 찾아오면 속시원해 하시던 모습도 안다.
짝꿍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10년 전부터 엄마는 아주 꾸준히 계속 집안을 정리해 오셨다. 소중히 해오던 물건들을 버리고, 새 옷을 사지 않으시고 살림을 늘리지 않고 소중한 편지와 기록들을 한데 모으고.. 그러시다 주고싶은 물건이 있으면 소중히 챙겨다 잊지 않고 전하셨다.
그렇게 엄마가 (적어도 20년 전!!) 직접 뜨신 스웨터가 내게 왔다. 아주 쨍하고 맑은, 입으면 생기가 도는, 나의 체헝에 딱 맞고 길이도 목둘레도 팔길이도 더할 나위 없이 내 것인 그 스웨터를 입혀보시고는 너무 뿌듯해하셨다.
올 겨울 그 옷을 정말 교복처럼 입었다. 여기저기 당신께서 뜨신 옷인거 자랑하면서.
경찰과 국과수와 의사와 장례절차와.. 집에서 돌아가셨을 때 으레 하는 절차라지만 그 과정은 참 차갑고, 서류이름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달랐다. 당신께서 집에서 가고 싶어하셨으니 당신께서 괜찮으셨다면... 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 반, 남은 유가족에게 잔인한 절차와 서류들에게 슬픈 마음 반.
하지만 난 자식이 아니었고 장례식에 있었지만 이름표가 없었고 손 빠르고 눈치 빨라서 일을 거드는데 한 몫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그것에 대한 슬픔도 전부였다. 이 슬픔이 왜 이렇게 나에게는 서툴고 어색하고 언어가 없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서툴고 어색해서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슬픔이 서툰 사람들』
목차를 보면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상실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상실에 공감이 갔다.
같은 상실이 하나도 없음을 이야기 하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의 자리에서 모두 다른 존재를 잃었지만, 그 모든 상실을 통과하는 동안 같거나 비슷하거나 다르지만 또 같은 감정과 반응과 고통을 경험하게 했다.
상실은 우리가 당연히 여겼던 세계를 뒤흔들고,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쓰도록 초대한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재정의하도록 만든다.
- 로버트 A. 니마이어
책 속의 많은 삶이 겹쳤다.
아내의 자살 후 마음의 문을 닫은 아들과의 대화를 앞둔 아버지 진도, 아내를 잃고 당위적 감정을 느끼지 못해 이상한 데이비스도, Yvette의 엄마 마사도, 너무도 갑작스런 상실을 겪은 나머지 AI로라도 대화하고 싶은 아내 마사도, 남겨진 아이들을 돌보고자하는 라자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물을 수도 없는 남편에게 묻고 싶은 유미코도...
그 모든 삶은 모두 유일했고, 상실의 경험도 너무나 개인적이고 유일하다고 느끼기에 자꾸만 우리는 서투르다고 느꼈다.
나 또한 서투르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상실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엄마의 손땀을 하루라도 더 자랑하고 입으면서, 엄마라면 학교 안에 있다는 국가보물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물건인지 길게길게 재밌게 이야기 해주셨을텐데라며 짝꿍과 쫑알거리면서, 엄마의 밥이 아직 냉동실에 있지만 아직 저 밥을 꺼내먹는 건 우리 아직 못하겠다 그치.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게 남은 엄마를 기억하고, 어떻게 보면 나만이 알고 있는 엄마를 기록하는 것이어서 참 서툴고 소중한 일이라.. 조금 더 생을 잘 살아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엄마를 잃은 내 짝꿍을, 그걸 함께 겪는 나를, 아끼는 동생을, 우리를 느슨하지만 가장 가족다운 과정으로 서로를 돌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상실을 이렇게나 생생히 살아서 함께 통과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2026.02.11
엄마를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