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는 명상센터에 종종 나를 데려가셨다.
엄마도 살아보려고, 바쁘고 바빴던 삶에서 유일하게 숨 쉴 쉬려 했던 시간을 굳이 나까지 데려가서 아이를 돌봤나싶지만.. 유난히 뾰족하고 예민했던 내가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내 몸은 늘 시끄러웠다.
부산하게 간지러웠고, 늘 어디선가 각질이 떨어지고, 여기가 간지러우면 저기가 따가웠고, 온 몸으로 들어오는 자극들에 일일히 반응을 다 하다보면 이미 지쳐있는데도 근육이 뻐근할 정도로 긁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릴 적부터 이유는 몰라도 유연했는데, 일부는 오렌지색 타이즈를 입고 춤을 췄던 유치원 에어로빅을 다녀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8할은 긁고 싶은 곳을 긁기 위해서 였던 것 같다. 등 정도는 내 손으로 커버해야 원하는 각도와 세기로 맘대로 긁으니까. 그렇게 신나게 긁다보면 손은 뻐근해지고 팔뚝에는 근육도 잡힐 지경이 된다. 그리고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어지고 아주... 시끄러운 상태가 된다.
어릴 적 완두콩 공주에 대한 동화를 봤다.
와, 이건 나 잖아?
옷의 재질, 닿는 부분의 정도, 바스락거림과 뻣뻣한 정도, 바지 안에서 약간 접혀있는 티셔츠의 부분도 그냥 불편했다. 푹신하게 잔뜩 쌓아둔 매트리스 속에서도 완두의 쪼꼬만한 뾰족함을 기어코 찾아내는 프로불편러.
이미 시끄러운 몸에 80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었던 나는 20으로 컸다.
쓰고 남아있던 20이 100인 줄 알고, 나만 체력이 낮고, 나만 힘들고, 나만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명상을 하고나면 긴장해 있던, 시끄럽던 몸이 잠시나마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내려앉고 목이 사르르 풀어지며 턱이 잡아당겨지고, 팔 다리가 더 길어지는 것 같았다. 분명 방금 간지러웠는데 따끔거리던 감각들이 천천히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야말로 멍해지는 고요함.
80으로 쓰고있던 에너지가 좀 덜 들어가면 다른 걸 할 만한 기운이 났다.
오래가는 건 아니었다. 또 수련장 밖으로 한걸음 나오면 외부에서 나를 자극하는 것들은 많았고, 내 몸은 또 내 몸대로 시끄러워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함을 알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은 매일이 이럴지도 몰라' 싶었다.
많이 시간이 지난 뒤, 내 돈을 벌고, 체력은 바닥을 쳐 가고, 나는 여전히 20 가지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제 명에 못 살겠다 싶었을 때 요가를 시작했다.
내 몸만 가지고 노는 데도 이렇게 재밌다고?! 싶었다. 나는 생각보다 별 동작을 다 할 수 있었고, 이게 되겠어 싶은데 숨을 쉬다보면 순간 넘어가 있는 고비에 감탄하고 나한테 스스로 박수치고 독려하고 자신감이 붙었다. 땀이 살짝 나 건조해 찢어질 것 같은 부분이 부들부들해지는 느낌도 좋았다. 땀이 삐질삐질 나서 혼자 매트 위에서 헉헉 거리고 나서 오는 사바아사나의 평화가 좋았다.
여태 아토피로만 이야기를 나눠왔던 내 몸과 요가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못 하고 안 되는 몸이라고 생각했던 내 몸은 생각보다 더 많이 멀리 갈 수 있었고, 내 몸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나보다 잘 알고 계신 선생님들은 한 걸음씩 더 나아가게 도와주셨다.
움직이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일인지! 얼마나 살아있음을 느끼는지!
한껏 세상에 쪼그라들어있었을 때, 실패했고, 일시적이고, 안전하지 않고, 매일이 살엄음판 같았던 시기에 친구가 부른다고 무턱대고 태국에 갔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무작정 쏘다니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태국에서 매일 아침이면 농부악 공원에서 무료 요가 클래스가 있었다.
꽃 축제로 요가인더가든(Yoga in the Garden)으로 잠시 옮겨갔을 때, 새벽 6시 시작하는 수업을 여행 내내 매일 갔다. 수 많은 선생님들과 대체 어디서 모여든 건지 알 수 없는 요기니들과 함께 숨을 깊이 깊이 쉬고 나면 어느새 뜨거워진 태국 아침 햇살에 땀에 흠뻑 젖고 살아있어도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쪼그라들어 있었구나를 우스트라사나로 펼치며 알았고,
실패했다고 느꼈었구나를 스바르가드비자나를 성공하고 느꼈고,
일시적이라고 느꼈었구나를 나타라자아사나에서 흔들리며 느꼈다.
좋은 요가원을, 함께 성장하며 나아갈 도반을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몸이 충분히 움직이길 바라고, 나를 돌보고 들여다 볼 시간을 나에게 주고 싶어졌다.
하루 한 시간, 매일의 바쁨을 가라앉히는 시간.
빼앗겼다고 느껴지는 그 과거의 많은 시간을 지금이라도 욕심껏 배로 살고 싶은 나에게 주는 안심할 수 있는 시간.
오늘 아침 요가를 하면서 꼭 이것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쫒기듯 시간을 접어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 하고 탓하지는 않겠다고.
어느 날 너무 바빠져서 주변에 신경을 못 썼다고 나를 자책하기보다는 한 호흡 쉬어갈 수 있게 다독이고, 자꾸 뭔가 더 하고 싶어지는 나를 욕심부린다고 뭐라 말고 조금만 더 천천히 하나씩 다 할 수 있게 살아주자고.
202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