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9할, 아토피.

덕분에 이만큼 왔어. 지겨웠고 다시는 보지말자.

by 문힐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느꼈다.

3n년차 아토피안.


얼굴을 가리기 바빴고, 숨기기 바빴고, 눈에 안 띄는게 낫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떻게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고, 서핑과 요가와 뜨개질을 사랑하는 지금의 내가 된 걸까 싶었다.


그리고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기는 한 번도 차곡하게 쓴 적이 없지만, 그 진물나고 부스러지고 부끄럽고 어쩔거야 싶던 처절한 시간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되어온 과정을 기록해야겠다.. 싶었다.



아토피는 내게 9할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태열이 있었고, 알러지와 두드러기, 호흡기 질환 등등 allergic march를 그대로 밟았다.


초등학교 땐 수영장 염소 물이 너무나 따가워서 수영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학교 앞 200원짜리 컵볶이를 먹고 싶었는데, 먹고나면 간지러웠다. 학교 앞 만화책방을 먹여살리는 VIP였는데 먼지가 많은 오래된 만화책을 빌려온 날이면 알러지 반응이 일어났다. 아마도 내내 왕따였는데 나만 모르다가, 수학여행 때 키득이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에 치약이 짜이는 걸 보고 그제야 알았다. 나는 안 자고 있었는데, 치약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었는데, 그냥 다들 잘 때까지 그냥 누워있었다.


중학교 땐 머리카락으로 눈 두덩이와 인중에 흐르는 진물을 가리고 싶었는데 지루성피부염으로 앞머리가 다 빠져버렸다. 앞 머리 한 가운데가 홍해 갈라지듯 없었으니 아무리 깻잎머리를 한다 해도 영혼까지 끌어덮은 교장쌤 머리가 되버렸다. 감색 교복 위에는 늘 각질이 수북했다(비듬 아니라고!). 흰 블라우스엔 피가 늘 묻었는데, 매일 빨기도 어려웠지만, 맨날 그 자리를 긁고, 거기서 피 나니 블라우스는 뭔가 꼬질했다. 오금엔 늘 진물과 피가 섞인 채 피부가 벗겨져있었는데, 그게 부끄러워서 스타킹을 신었다. 스타킹은 아침엔 약간의 보정을 해주었지만, 진물이 늘어붙어 마르면 더 하얘졌고, 집 가서 벗으면 피부와 찰싹 붙어버려 툭툭툭 살점도 같이 떨어졌다. 그 와중에 구두만 신어야 했던 학교 덕분에!! 발바닥에 바다포도처럼 돋아났던 물집들을 자꾸 터트려서 간지럽고 아프고 피났다. 팔과 다리를 다 펴면 찢어졌기 때문에 늘 골룸자세였고, 목도 가능하면 안 돌렸다.

그냥 그러고 어떻게 다녔다.


내게 초등학교는 잔인했고,

중학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고등학교는 그냥 그만 둬 버렸다.


어린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돌아보면.. 역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주 예민하고, 모든 질문에는 의도가 있다는걸 빨리 알아서 답을 줘버리고, 뾰족하고 짜증스런 아이였던 것 같아.. 싶다가도 그 모든 수식어들이 알고보면 나의 9할 때문에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결국 1할은 또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2025년 지금의 나는 2021년부터 4년째 아토피 경구약 린버크를 먹고 있고,

바다에 들어갈 수 있고, 서핑을 할 수 있으며, 니트 옷도 입을 수 있기에 뜨개질도 시작했고, 요가와 헬스와 자전거 등 움직이는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여태껏 삶을 꿰 뚫었던 아토피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온 걸까'의 질문을 글과 영상에 담아보기로 했다.

아토피는 그 모든 병은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아주 개인적인 과정이기에, 그냥 이런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저 여기 있어요.

지금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