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커다란 두부 한모 사 와줄래?
말 그대로였다.
엄마가 두부심부름을 시켰다.
"두부 한 모 사 와줄래? 크고 단단한 걸로"
마침 외출할 일도 있었던 터라 (사실 평소에는 투덜거리며 잘 안 하지만) 잔 심부름에 응했다.
"그래 10분 뒤에 사 올게"
볼일을 마치고 마트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보인 풀무원의 '크고 단단한 두부 500g'을 집어 들었다. 두부 심부름이 오랜만인 터일까 괜히 전화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엄마, 풀무원의 크고 단단한 두부찌개용 사가면 돼?"
"응, 크고 단단한 거 사와."
엄마의 목소리는 왜 겨우 이런 일로 전화했냐는 듯한 심드렁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꼭 확인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확인을 마친 후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두부를 꺼내어 놓자마자 엄마가 한 말은
"어? 이거 너무 작잖아, 에이..."
억울했다. 나는 기껏 전화로 확인도 했고, 내 시간을 쪼개 마트까지 다녀왔건만,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들려오는 핀잔에 약간 울컥했다.
"여기 쓰여있잖아. 크고! 단단한! 두부! 전화까지 해서 물어봤잖아. 왜 핀잔이야? 억울한데..."
몇 번의 옥신각신 끝에 엄마의 눈이 내가 사 온 두부의 포장지로 향했다.
"허... 정말 크고, 단단한, 두부라고 쓰여있네...? 이거 뭐라 할 수도 없고 나참ㅋㅋ 이렇게 서로 다르네…
두부 한모에도 이런 정도면 다른 것들을 표현할 때는 오죽하겠어?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많구나.”
나도 나름의 억울한 사정이 있었음을 표현해 냈다. 한결 울컥하는 마음들이 가라앉았다. 서로의 한바탕 다름을 확인하고 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뿐이니까. “크고 단단하다.”의 모호한 표현 대신 ‘1kg 풀무원 상품’이라는 정확한 상품명을 말해주기를 바라는 나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길 바라는 엄마의 대화법이 이번 대화로 더 크게 드러났다. 다시 생각해 보면 모든 두부는 크고 단단하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히 두부는 크게 단단한데 얘는 왜 이런 걸 굳이 전화로 확인하나 싶었을 거다. 내 입장에서는 포장지에 쓰여있는 ‘크고 단단한’이라는 문구가 중요했고 풀무원이 아닌 다른 종류의 엄마의 선호하는 두부가 있나 하고 확인차 물어본 것이었다. 오해를 풀고 나니 엄마는 그냥 가성비가 좋고 마트에서 가장 큰 두부를 사 오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두부 한 모를 표현할 때도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겪곤 엄마는 막연히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내가 하는 푸념에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대답이 들려오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작은 해프닝이었다. 어쩌면 다들 한 번은 겪을 오해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 실수를 이 정도로 가볍게 풀어낼 여력이 없었다 우리에겐. 아마 추측 건데 서로의 두부가 맞다며 두부와는 전혀 다른 상처들을 헤집으며 악다구니를 질러댔을 것이다. 작은 오해를 가벼운 실수로 마칠 수 있다는 감사함. 오해가 작다면 작은 오해에서 그쳐야 한다. 작은 오해와 실수가 제때제때 그치지 못하고 큰 오해가 되어 밥상을 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