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취미가 곧 부모의 취미가 되는 시기
우리 집에는 바둑기사와 화가, 그리고 평범한 어른 둘이 살고 있다. 프로 바둑기사가 꿈이라는 첫째 아이는 만화 대신 바둑대국을 챙겨보고 세계랭킹 1위 선수인 신진서 프로, 여자 선수로 유명한 김은지 프로, 우리나라 최초의 바둑기사 조남철 프로에 대해서 묻지 않아도 조잘조잘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는 지친 몸으로 퇴근한, 바둑의 ‘바’도 모르는 어른 둘에게 매일 바둑을 두자고 조른다. 나는 피곤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선심 쓰듯 아이와 대국을 시작한지만, 우리 집 바둑기사는 그러한 나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국에서 절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내가 둔 ‘수’를 비웃기도 하고, 가끔 조롱의 말로 노래도 만들어 부르곤 한다. 가끔은 한 수를 물러 주기고 훈수를 두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 집 둘째 아이는 커서 화가가 되겠다고 한다. 미술학원은 진작부터 다니고 싶다고 떼를 써 이제 일 년째 다니고 있는데, 다닌지 몇 개월 뒤부터 미술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기특하게도 최근에 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일주일간은 유치원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상으로 받은 메달이 집에 잘 있는지 확인하고 목에 걸고 다녔다. 요즘에는 팽이와 미니카 종이접기에 푹 빠져있다. 그 조그마한 손으로 하루에 직접 10개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참으로 다작하는 성실한 종이접기 작가, 선수 같다. 혼자서 침착하고 조용히 종이접기를 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뭐가 그리 재밌나?’ 하는 의문이 들다가도 기특하다. 하지만 평화로운 종이접기 중에도 나에게 위기는 찾아온다. 평소 종이접기 책이나 유투브를 보면서 종이를 접는데, 갑자기 둘째가 이렇게 외칠때가 있다. ’아, 어렵다!‘, ’아, 안된다!‘. 손재주라고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없는 나는, 둘째의 목소리를 들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없는 재주를 만들어서라도 둘째 아이의 종이접기를 이어받아 팽이와 미니카를 완성해야하기 때문이다. 둘째가 어렵다고 하는 부분은, 훨씬 전 단계에서부터 잘못 접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첫 순서부터 복기하며 종이를 다시 접어야한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매일 밤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두 아이 덕분에, 어느새 우리 부부, 우리 가족의 취미생활이 탄생했다. 재작년에는 포켓몬스터 카드게임이 우리 가족의 취미생활이었다면, 작년에는 바둑과 미술(특히 종이접기)였다. 꾸준한 취미생활 덕분에 남편은 꽤 바둑을 잘 두게 된 것 같이 보인다. 어느 날은 아이가 이기지만, 어느 날은 남편이 이기기도 해서 남편이 대국에서 승리하는 날의 에피소드는 한 일주일간 신랑의 안주거리로 회자된다. 손재주가 없는 나도 유투브 영상을 몇 번이고 되감기를 하며 종이접기를 하다보니, 그 실력이 나날이 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어떤 종이접기에도 자신감이 생겨난 것이다.
어렸을 적 나도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주말에 부모님 손을 잡고 교회에 가는 것이었다. 어떻게 가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주말에는 친구들과 교회에 갔다. 제법 큰 교회였는데, 주말 아침 9시에는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까지 모여 예배를 하고, 대학생 또래로 보이는 젊은 선생님들과 조를 나눠 성경공부를 했다. 그리고 10시부터는 성인 예배가 교회에서 가장 큰 공간에서 진행이 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9시에 예배를 마치면 부모님과 함께 10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던 우리 부모님은 내가 교회에 가는 것은 허락하셨지만, 본인들은 절대 교회에 가지 않으셨다. 내가 몇 번이고 조르고 부탁해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과 내 바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지만 들어주시진 않으셨다. 그 당시 나에게 깊은 신앙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부모님과 교회에 같이 가고 싶어 했을까? 나는 친구들도 있고 간식도 먹을 수 있고 신나게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일요일 아침의 교회가 좋았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고 싶었다. 어쨌든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친구가 전부이던 시절 전까지, 꾸준히 부모님과 무언가를 하고 싶어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함께 해주신 부모님의 모습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시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부모님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을 사랑했던 나는, 이제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어느새 훌쩍 큰 아이는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나날이 늘어갔다. 좋아하는 것이 좀 더 선명해지니, 그것에 몰입하는 모습이 순수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나와 남편이 이런 아이 모습을 보면 응원하고 함께 시작한 것이 우리 가족만의 취미생활이 되었다. 첫째가 좋아하는 것은 둘째가 좋아하게 되기도 했고, 둘째가 좋아하는 보드게임은 첫째도 함께 즐기게 되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바둑을 둬 보고, 종이접기에 온 정성을 다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도 새로운 우리가족의 취미생활을 기대하게 된다. 올해 남은 겨울은, 귤 한바가지와 함께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즐기며 따뜻하게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