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너 참 매력적이야.

by 작심몽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을 겪어 본 지라, 서른아홉에서 마흔이 된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서른아홉의 12월 31일이나 마흔의 1월 1일은 매일 흘러가던 원데이, 투데이 중의 하루였으니까. 새해의 1월 1일은 그냥 서른아홉, 그 해의 12월 32일, 33일로 해도 될 만큼 그저 그런 날들의 하루였다.

하지만 마흔이라는 글자의 어감은 조금 남다르긴 했다. 스물과 서른의 'ㅅ'은 상큼 발랄함이 묻어나는 반면, 마흔의 'ㅁ'과 'ㅎ'은 뭔가 묵직함이 느껴졌다.


어제보다 단 하루가 지난 오늘일 뿐인데 '마흔'이 주는 중후함은 이제 나도 빼. 박! 어른의 대열에 끼어든 듯한, 감히 어디 가서 '난 그런 거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순진무구함이 통하지 않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할 것 만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군대를 막 제대한 친오빠가 50대였던 아빠를 제치고 마치 우리 집 가장이 된 듯한 행세를 하던 느낌으로, 나 또한 온전히 독립한 어른으로서 나이 드신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 대소사를 진두지휘 해야 할 것만 같은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마흔이 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제대 3개월 뒤 다시 철없는 대학생으로 돌아간 친오빠처럼 나도 서른아홉, 아니, 어쩌면 더 어린 날의 내 모습의 연장선처럼 그렇게 철 없이 지내고 있다.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못 찾고 헤매는 일로 여전히 엄마에게 온갖 짜증을 내고, 바쁜 딸 쉽사리 오라 가라 말도 못 하고 목 빠져라 기다리다 어쩌다 따님 '행차'하신 날 밀린 휴대폰 문자 정리와 앱 업데이트를 맡기는 부모님께 밤낮 없는 나랏일에 고단함을 투덜거리는 벼슬 아치 마냥 뻐기며 그렇게 참 미운 마흔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나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마흔의 어느 날을 보내고 있지만 흐르는 세월은 살만 늘어지게 하는 건 아니었는지 딱히 공들여 수양을 한 것도 아닌데 늘 걱정과 짜증과 화로 빽빽했던 마음이 느슨해졌고, 느슨함 사이로 틈이 생기니 옆을 볼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옆을 보니 모든 것들의 수고와 애씀이 보였고 감사함이 생겼다. 그중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었다.


인정을 못하면 감추기 위해 바쁘고 애가 탄다. 애타는 마음은 조급증을 부르고 그 때문에 여유가 없다. 서른의 나는 그랬다. 나를 탓하고 비난하고 할퀴어 상처 내느라 바빴다. 무엇 하나 쉽게 해내지 못하고 아등바등 허덕이는 모습이 무능해서 보기 싫었다. 자책감은 스스로를 괴롭혀 몸과 마음을 아프고 병들게 했다. 오랜 채찍질로 몸이 아프니 포기란 걸 먼저 하게 되었다. 나를 몰아세울 힘조차 없어지니 그제야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하게 되었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 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 그 누구나에 나도 포함된다는 것."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던 때, 그때 마흔 즈음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타인의 잘남에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를 내비치고, 나의 못남에 짜증과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댄다. 하지만 마흔이 되고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애쓰고 수고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 하나로 나의 모든 것을 평가 절하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나는 참으로 고생했으니까.


질책만 퍼붓던 날카롭던 서른과 다르게 마흔은 진정 '내 편'이 되어주고 감싸주었다. 늘어난 나이만큼 넓어진 이해심으로 이제야 나를 인정해 주는 '마흔의 나'는 마주하기 편안했다. 그래서 나는 '마흔'이 좋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 하나가 있다. 주인공의 아빠가 딸에게 하던 말,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고 살면 하나님이지. 사람은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땐 이 말이 너무 소박하다 못해 패배자의 변명 같았다. 하지만 이젠 안다. 쓸데없는 욕심으로 나를 혹사시키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 긍정의 에너지를 쏟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걸......


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마흔 초입에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나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너머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 마음을 쏟고 싶다. 그래서 10년 뒤에 빠른 세월의 야속함을 탓하며 한숨짓는 '쉰' 내 나는 꼰대가 아니라 내 일에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멋지고 행복한 '쉰'의 나를 마주하길 바라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