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런 날이다

by 작심몽실

카페 앞에 내팽개쳐진 우리 집 테이크아웃커피잔을 보니 가슴이 철렁하다. 얼핏 봐도 상당량의 음료가 컵에 남아있다. 비까지 내려 흠뻑 젖은 종이홀더가 아스팔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처량하다. 한낯 일회용 컵이지만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리도 처참하게 버려졌을까. 내 마음이 다 시리다.


누군가 커피를 다 마시고 빈 컵을 몰래 도로 연석에 두고 갔다면 '맛있게 드셨네.'라며 기분 좋게 컵을 치웠을 텐데 반쯤 남겨져 버려진 라테잔을 보며 만족스럽지 못했을 손님의 표정과 기분을 생각하니 마치 대역죄를 지은 듯 가슴이 답답해진다.


뭐가 문제였을까. 버려진 컵을 주워와 싱크대에 버리고 정리하면서 레시피를 복기해 본다. 손님께 나간 그대로 다시 라테를 만들어 봤다. 아... 느끼하다. '하...' 한숨이 나온다. 손에 익숙해졌다 싶어 저울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저울을 이용해 레시피대로 만들어보니 역시 맛있다. '하...' 또다시 한숨이 난다.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을!

건방 떨던 내가 원망스럽다. 동네를 샅샅이 뒤져 떠나간 손님을 찾아가 제발 다시 한번만 맛을 봐주시라고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침부터 제조과정 실수로 고생해서 만든 빵을 전량폐기하고, 오늘따라 단체로 오신 손님들이 앉을자리가 마뜩잖아 발길을 돌리길 두어 번, 그리고 반쯤 남아 대차게 버려진 컵까지..

오늘은 마음속에서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다음에 더 잘하자. 건방 떨지 말고 제대로 하자'라고 다독이고 다짐해 보지만 발목까지 떨어진 기운이 쉬이 충전되진 않는다. 오늘은 억지 텐션을 올리는 것 마저도 에너지 소모가 클 것 같아 모든 생각을 멈춘다. '그냥 오늘은... 그런 날이야..'라고 되뇌며 밀물에 쓸려 지워지는 모래 위 낙서처럼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흘려보내야 할 것 같다.


힘내라고 과하게 의욕을 불태우거나 스스로를 원망하고 탓하느라 남은 기운을 모두 탕진해 버리기엔 아직도 보내야 할 하루가 반나절이나 남아있고, 책임지고 완수해야 할 오늘의 할 일이 핸드폰 투두리스트에 빼곡하다,


발목 언저리에 미약하게 남아 있는 기운으로 더 이상 실수 없이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인, 오늘은 그런 날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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