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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Mar 10. 2024

숨은 K-Pop 명곡 100선, 여든하나

우리 스무살 때, 김건모 : 2집 핑계 - 1993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K-Pop 블랙뮤직 대중화를 이끈
타고난 음악 천재

김건모.


누구는 그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도 하고, '조용필 다음으로 음악적 능력이 뛰어난 상상을 초월하는 가수'라고 칭하기도 하며, 수많은 K-Pop 후배가수들의 롤모델이자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일컫어지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


작사/작곡/편곡/노래 등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천재적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그의 앨범의 성공은 '최단기간 최다 음반 판매량', '5대 가요 시상식의 그랜드 슬램' 등의 K-Pop 내 갖가지 초유의 한 획을 긋는 역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참고로 그의 1995년 발매한 3집은 33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려 방탄소년단의 MAP OF THE SOUL : PERSONA가 나오기까지 장장 24년 동안 대한민국 최대 판매의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K-Pop을 대표하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 김건모


그의 데뷔에 대해선 아마 1992년에 발매된 그의 솔로 1집 앨범을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겠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공식 앨범에는 참여하지 못했기에, K-Pop 데뷔로 인정할지의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1991년 '평균율'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다. 참고로 1989년 1집 앨범으로 데뷔한 락그룹 '평균율'은 1994년 3집까지 발매하며 활동한다.


이렇게 그룹 활동을 하고 있던 그에게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너무나도 잘 부른다며, 1990년대 K-Pop 대중음악의 마이더스 손 프로듀서 '김창환'을 소개한 건 서울예대 선배인 가수 박미경이었고 단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 김창환으로부터 자신의 앨범과 그룹 노이즈의 편곡 등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음악적 완성도와 프로듀싱 훈련을 받은 그는 1992년 말 그의 솔로 앨범 발매하게 된다.


1992년 말 김건모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과 모든 노래의 편곡자로 참여한 노이즈 1집 앨범의 표지


이 두 앨범은 거의 같은 시기인 1992년 10월 29일(김건모), 11월 1일(노이즈)에 발매되었고, 김창환이 모두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김건모의 앨범엔 노이즈의 천성일이 2곡의 노래 작곡을 그리고 노이즈 앨범은 김건모가 모두 편곡을 담당하였을 정도로 서로의 관계가 깊다.


데뷔 당시에는 박광현이 작곡하고 이승철이 불렀던 '잠도 오지 않은 밤에'를 리메이크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가 대중에게 먼저 알려지고 SBS 가요프로그램의 1위를 차지하는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방송에서 얼굴을 공개한 이후 급속도로 그 인기는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세련된 노래와 춤, 그리고 훈훈한 비주얼로 서서히 인기를 끈 노이즈의 '너에게 원한 건'이 이듬해 5~6월경 가요톱텐의 골든컵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방송이나 라디오에서 김건모의 노래를 접하게 된 대중은 그의 진가를 서서히 알게 되는데, 1993년 11월, 그러니까 앨범을 발매한 지 1년이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1집의 '첫인상'이 가요톱 10의 골든컵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골든컵을 차지하게 된 11월 중순은, 그의 2집이 이미 발매된 이후였다.


실력은 배반하지 않는 법!


그의 보컬은 당시 굉장히 독특했다. 어쩌면 대중은 K-Pop 역사상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움을 그로부터 느꼈을지도 모른다. 비음이 섞여 있지만 굉장히 단단하고 소울풀해 오히려 유니크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음색은, 3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역대를 흔들림 없고 정확한 음정으로 부르는 그의 가창력과 어우러져 마치 멜로디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듯해 노래를 잘한다는 게 무엇이고, 그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는 것만 같다.


K-Pop을 레게 열풍으로 만든 그의 첫번째 밀리언셀러 앨범인 2집 표지


그의 2집은 1집보다 더 대단했다.


1993년 11월 발표한 그의 2집은 타이틀 곡이었던 '혼자만의 사랑'이 잠깐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K-Pop 내 최초로 레게 열풍을 불고 온 '핑계'가 전 국민 송으로 빅히트하게 되면서 가요톱텐의 골든컵은 물론이고 180만 장이 넘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게 되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K-Pop Top 아티스트가 된다.


김건모의 커리어 하이를 찍은 330만장 판매고를 올린 3집 앨범 표지


그의 커리어 하이는 1995년에 발매된 3집에 이르러 가장 최고점을 찍게 되는데, 타이틀 곡이었던 '잘못된 만남'의 빅히트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이별', '드라마', '너에게', '넌 친구? 난 연인!' 등의 앨범 내 다수의 노래들이 모두 인기를 끌었고, 잠시 위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이 앨범은 약 330만 장의 앨범 판매라는 K-Pop 내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김건모 4~13집까지의 앨범 표지들


앨범 내 프로듀싱, 특히 곡 선정과 작곡 참여 등에 있어 프로듀서 김창환과 잦은 마찰을 빚은 김건모는 3집을 끝으로 라인기획과 결별하고 4집부터는 최준영, 윤일상 등 신진 프로듀서들과 함께 독자적인 앨범 제작을 추진하게 된다. 그 결과 또한 훌륭해서 4집 '스피드', '미련', '악몽', '빨간 우산', 5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사랑이 떠나가네', '당신만이'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의 프로듀서로서의 욕심이 담긴 6집이 흥행에 크게 실패하게 되자, 그는 4집의 프로듀서였던 최준영과 다시 손을 잡은 7집을 발표하게 되는데, '미안해요', '짱가', '빗속의 여인' 등이 다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8집 또한 '청첩장', '제비', 'My son' 등이 히트하며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그는 전보다 진일보한 음악적 완성도를 담은 9집~11집을 발매하였고, 개인적으로는 그의 최대 명곡인 '서울의 달'과 같은 보석 같은 노래도 발표하였지만, 예전과도 같은 대중성 높은 빅히트나 앨범 판매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는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자 13년 만에 다시 라인기획의 프로듀서 김창환과 손을 잡아 2008년 12집을 발매하였고, 데뷔 20주년 앨범과 동시에 발매된 13집을 2011년에 발매하기도 하였지만 예전에 쌓았던 그의 인기와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2016년 25주년 기념으로 발매한 미니앨범이 그의 마지막 앨범으로 그의 활동이 정체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미 다양한 미디어에서도 보도한 고소/고발 사건 등이 그의 음악적 창작과 활동에 큰 어려움을 제공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너무나도 어렵다.
김건모의 숨은 명곡!


사실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작업이기에 그 안에 숨어 있는 선정의 고통을 모든 사람들이 이해해 주리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김건모와 같은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레전드의 노래들 중에 숨은 명곡을 찾고, 또 그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은 보다 신중해야 하기에 무척 조심스럽고 또 어렵기만 하다.


오랜 고심 끝에 소개할 여든한번째 숨은 명곡은 1993년에 발매된 김건모 2집에 실린 유영건 작사/김건모 작곡/김형석 편곡의 '우리 스무살 때'라는 노래다.


이 노래가 특별한 첫 번째 이유는 김건모의 앨범에 실린 그의 첫 번째 자작곡이라는 것인데, 그는 1집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2집에 들어서야 겨우 자신의 곡, 1곡을 실을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데뷔앨범에서부터 많은 노래들이 그가 만든 노래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철저히 '김창환'이라는 프로듀서로부터 기획된 앨범으로 김건모는 주로 작곡이 아닌 편곡을 맡게 되었는데, 아마 이러한 부분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된 '김창환'과의 어긋남은 결국 그의 홀로서기를 이끌게 되었고, 독립 후인 4집부터 그는 적극적인 작곡과 프로듀싱에 관여하게 된다.


또한 이 노래는 이미 1988년 김수희의 '애모'의 작사/작곡가로 유명한 유영건이 만들고 최성수가 노래한 원곡이 존재했던 노래인데, 김건모는 원곡의 작사만을 차용하고 작곡은 완전히 새롭게 하는 다소 재미있는 형식을 취했다. 그래서 이 두 노래를 비교해 들어보면 같은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노래로 느껴지게 된다.


김건모의 작곡 능력을 어김없이 보여준
블루스 명곡!


https://www.youtube.com/watch?v=Gbs7MQkxY6k

유영건 작사/작곡, 최성수가 노래한 1988년 캠퍼스 4계절에 실린 원곡


김건모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부르던 데뷔 당시 나는 여기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 총 3번을 소개했던 레전드인 박광현/이승철이 만들고 불렀던 명곡을 그저 얄팍한 대중성을 위한 댄스음악으로 망쳐놨다는 생각에 그의 노래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선입관은 '핑계'의 열풍이 K-Pop 전체를 흔들어 놓을 그 시절에도 변함이 없었다. 어쩌면 그저 한순간 지나가는 유행과 같이 그의 노래들은 그렇게 사라져 갈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비논리적인 비하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었던 노래가 바로 오늘 소개할 '우리 스무살 때'이다.


대학입학과 입대의 시기를 거쳤던 그때 그 시절의 내 상황과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졌던 가사의 내용이나 노래의 분위기도 한몫했었고, 김건모가 만든 최고의 명작이라 불리는 그의 10집에 수록된 '서울의 달'과 결을 같이 하는 한국적 블루스의 멜로디와 감성 또한 지금 들어도 내 가슴을 울리게만 한다.


우리 사이에서는 일명 '입대송'으로 군입대를 앞둔 친구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술 한잔 거하게 걸친 새벽이 되면, 의례히 그냥 자연스레 누군가 시작한 멜로디를 따라 목 터져라 함께 불렀었던 그런 인생 노래가 되기도 했다.  


마치 웅장한 가스펠과도 같은 드럼, 좌중을 압도하는 코러스 그리고 이를 이끄는 기타 연주로 시작되는 노래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블루스의 화성과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만드는 강력하고도 찰진 김건모의 보컬과 어우러져 30여 년 전 우리 모습을 소환하게 한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이젠 희미하기만 한 아득한 옛 기억들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데, 먼 길 떠나는 친구의 어깨, 헤어지자 말하는 그녀의 차디찬 입술, 그저 불안하기만 했던 우리들 눈동자, 그 모두가 노래 속 가사처럼 비 오는 날 흔들리는 불빛과 함께 마치 카메라 플래시와 같이 내 머릿속을 환히 비추었다 금세 사라지기도 한다.


아 그리운 나의 20대 여!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어리숙하기만 하다.


아직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벽들이 나를 가로막아 앞이 깜깜하기만 한데, 어느새부터인가 나는 현명하고도 지혜로운 답을 내어 놓아야 하는 강박감을 가지고 살아온 것만 같다.


너무 완벽한 답을 찾으려 하지 말자. 우린 완전하지 않으니 평생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은가?

아름다워 지자! 아름다워 지자!


그래도 20대, 그 때의 풋풋한 나는 부럽기만 하다!

 



우리 스무살 때

김건모, 2집 핑계 - 1993


작사 : 유영건

작곡 : 김건모

편곡 : 김형석

노래 : 김건모


언젠가 비오던 날 이 거리는 술잔에 흔들렸고

떠나는 그대는 바람이었어라 바람이었어라


나는 보았네 그대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

할 말도 못 한 채 돌아서야 했던 바보 같던 시절


사랑하나 못하면서 사랑을 앓던 시절

손뼉을 치면 닿을 것 같은 스무 살 시절의 추억


먼 훗날 그대 이름조차도 잊혀질지라도

어딘가 남아있을 듯한 그때 우리 모습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0kehJEerM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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