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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Jun 23. 2024

숨은 K-Pop 명곡 100선, 아흔여섯

거리에 서면, 무한궤도 : 1집 - 1989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우린 항상 의외성에 열광한다.


흔히 생각이나 기대,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을 의외성이라고 하는데, 누구나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뻔한 결과', '뻔한 스토리'를 벗어나게 하는 이런 의의성은 항상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고, 또 생각하지 못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언제나 이런 의외성에 감탄하고, 또 환호하게 된다.


음악이라는 예술 분야에서도 이런 의외성의 공식은 너무나 잘 작용해서, 항상 새로움을 전달해야만 하는 창조의 고뇌를 짊어지고 살고 있는 많은 뮤지션들이나 아티스트들이 신규 앨범이나 노래를 만들어 낼 때 고민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되었고, 한동안은 이러한 의외성을 기대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게 되어 비슷한 의외성이 오히려 또 정상이 되어버려서 의외성이 없는 작품이 의외성이 되어버리는 '역의외성'을 남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동안 음악에서의 의외성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고 있는데, 음악 자체의 의외성이 아닌 것 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아마 '히든 트랙'이지 않았나 싶다. LP나 CD가 거의 모두 사라진 요즘을 사는 세대들에겐 낯선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한 때는 이런 히든 트랙이 조금씩 유행하다가 '보너스 트랙'으로 조금 변형되기도 했고 언젠가부터는 없는 앨범을 찾기 힘들 정도로 보편화가 되기도 했다.


최초의 히든트랙은
비틀스의 'Her Majesty'


최초의 히든트랙은 비틀스 'Abbey Road'에 실린 'Her Majesty'라는 20여 초의 짧은 노래로 알려져 있는데, 의도적인 히든트랙이라고 하기보다는 음반사의 내부 사정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https://youtu.be/Mh1hKt5kQ_4?si=E-O2byi1t1nk2WwS

최초의 히든트랙 비틀스의 'Her Majesty'


물론 이런 종류의 의외성은 음악 자체의 결과물이라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예술적 수준을 논하기는 어렵고, 대부분이 그렇듯이 특별한 목적과 의도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 살아남는 살 떨리는 자본주의의 경쟁 속에서 태어난 마케팅적 수단에 보다 가까워져 갔던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음악적 의외성이라 함은 변형과 융합, 그리고 새로운 시도 등을 통한 '실험적' 작가주의의 창조물을 말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은데, 이는 받아들이는 대중이나 개개인에 따라 그 농도의 기준이 다를 수 있기에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면, 아마도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음악적 의외성은 아마 장르적 변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굉장히 Hard 한 Rock 음악을 하던 밴드가 너무나도 서정적인 발라드나 재즈 등의 음악을 앨범 중 하나로 싣었을 때, 대중들은 장르적 선입관에서 벗어나 굉장히 신선한 의외성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특히 이런 노래들은 대부분 평생 기억에 남을 명곡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또한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판단이 되긴 하겠지만.


내가 못해서 안 한 줄 알아? 


오늘 소개할 아흔여섯 번째 숨은 명곡은 1989년 무한궤도 1집에 수록된 신해철 작사, 정석원 작곡의 '거리에 서면'이라는 노래이다.


무한궤도는 아마 대학가요제, 아니 K-Pop 역사상 가장 대중적이고도 오래 사랑받는 노래 중에 하나인 '그대에게'로 1988년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과도 같이 나타난 대학 밴드로 이듬해인 1989년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해체하였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당시, 무한궤도의 모습


이후 팀의 리더였던 신해철은 솔로로, 나머지 일부 멤버들은 015B로 활동을 이어가게 되는데, 무한궤도의 해체는 본격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던 신해철과 이보다 소극적이거나 취업을 앞둔 다른 멤버들 간의 입장 차이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주관적 견해로는 아마 신해철/정석원간의 음악적 견해나 주도권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뜬금없이 의외성과 무한궤도의 '거리의 서면'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무한궤도는 다들 그저 그랬고 익숙했던 참가곡들 사이에서 전주에서부터 모두가 대상을 직감했던, 대학가요제 등장에서부터가 의외성의 정점이었다.


6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높은 수준의 창착곡 10곡이 수록된 앨범을 발매한 것도 사뭇 놀라운 일이었기도 했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리더였던 신해철이 무한궤도 1집 노래의 대부분을 작사/작곡했을 거라 생각할 테지만, 멤버 모두가 고르게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하여 자신의 개성과 음악성을 함께 펼친 앨범이란 점도 의외였다.


워낙 멤버들 개개인의 취향이 함께 어우러지고 다양한 전자악기와의 음악적 결합을 통해 보다 대중적인 접근이나 편곡 등이 가미되다 보니 정통 Rock 장르라고 말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무한궤도 대부분의 노래들의 근간에는 Rock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1989년 발매된 무한궤도 1집의 앨범 표지와 내지


무한궤도 앨범 제1의 의외성은
'정석원'


대학가요제의 데뷔에서부터 무한궤도 1집까지 많은 '의외성=신선함'을 선사해 준 그들이지만, 개인적으로 그 중 가장 으뜸은 바로, 훗날 신해철과 더불어 K-Pop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레전드 프로듀서가 되는 '정석원'이라는 멤버의 등장이라 생각한다.


무한궤도의 원년멤버(대학가요제 참가)가 아니라 앨범 발매에 맞춰 신해철에 의해 영입된 정성원은 '어둠이 찾아오면'(작사/작곡), 거리에 서면(작곡) 등 2곡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2곡의 노래만 들어봐도 당시 신해철의 손길이 묻어 있는 노래들과는 확연히 다른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부분의 무한궤도의 노래들은 프로그래시브, 하드롹, 소프트 롹 등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더라도 그 중심은 Rock을 기반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유독 정석원의 곡들만큼은 Blues와 Jazz의 향기가 무척이나 많이 난다.


물론 무한궤도 이후, 워낙 실험적이고 트렌디한 창조물들을 만들어간 신해철 솔로 앨범이나 정석원의 015B 시절 음악들을 보면 이 두 프로듀서 간의 음악적 공통분모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무한궤도 1집 내에서 보여준 그들의 성향은 굉장히 상이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달랐지만 함께한
최고의 역작!


아흔여섯 번째 숨은 명곡인 '거리의 서면'은 서로 다른 음악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사람은 작사가로, 한 사람은 작곡가로, 아름다운 작업을 함께한 무한궤도 앨범의 유일한 곡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염세적이긴 하지만 감각적이고 세련된 신해철의 가사가 재즈의 느낌을 살린 정석원의 군더더기 없고 감성적인 멜로디와 함께 어우러져 무한궤도의 곡이라고는 쉽게 상상하지 못할 멋진 의외의 곡을 만들어 냈다.  


다만, 타이틀 곡인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가 큰 인기를 얻고, 무한궤도의 빠른 소프트 롹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여름 이야기' 또한 좋은 반응을 얻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거리의 서면'은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못한 점은 참 아쉽기만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신해철, 정석원과의 오랜 음악적 동반자였던 윤종신이 이 곡의 진가를 인지하고 자신의 솔로앨범 2집과 김광민, 조윤성과 함께한 Just Piano라는 앨범에 리메이크로 직접 자신이 노래하여 대중에게 알려왔다는 점이다. 윤종신의 부른 '거리의 서면'의 각각 버전 또한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담겨 있으니 원곡과 함께 비교 감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1992년 윤종신 2집, 2014년 윤종신, 김광민, 조윤성 앨범에 실린 '거리에 서면'


정석원 특유의 간결하지만 묵직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 노래는 어느새 살짝씩 스쳐 지나가듯 들리는 드럼 심벌, 그리고 베이스와 함께 20대 청량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신해철의 보컬이 함께 어우러지듯 조화를 이루며 귓속을 파고든다.


정통 재즈의 편곡도 아니고, 실제 Real Brass를 사용한 곡도 아니지만, 그 리듬감을 베이스가 든든히 받쳐 주기에 재즈적인 느낌이 충분히 살리는 이 곡은 흐느끼듯 애처롭게 부르는 신해철의 음색을 따라 한 여인을 끝내 잊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을 소환케 한다.


잠들 때마다 매일 아침에
깨지 않기를 기도했지


어쩌면 그렇게 아픈 내 마음을 콕 집어내어 글자와 문장, 그리고 멜로디로 옮겨 놓았는지, 그 시절 깊이 패어진 마음의 상처로 망신창이가 되어 온전히 나 혼자가 되는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나의 모습을 문득 문득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생각날까 봐, 다시 그 아픔이 시작될까 봐 두려워하며 잠이 들곤 했던 스무살 나의 기억까지도...


온몸이 다 불타 없어질 듯이 아팠던 사랑도 세월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마치 세상을 모든 이치를 꿰찬 사람처럼 온갖 너스레를 떨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엄청 커다란 어른이 된 것과도 같이.


아직도 깨우쳐야 할 게 많은 모자란 나이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면 수십 년 동안의 내 모든 이별은 언제나 아팠고 또 상처로 남았다. 다만 우린 아프지 않은 척, 유명배우도 울고갈 아카데미급 연기를 잘하기 시작한 것일 뿐.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러니 미리 걱정할 필요도 또 아파할 필요도 없다.


언젠가 불현듯 찾아올 사랑의 상처 앞에 쓰러져 가는 내가 되더라도, 수십 년 전의 나의 곁에서 오래된 친구와 같이 묵묵히 작은 위로를 전달해 준 이 노래가 또다시 날 보듬어 줄 테니.




거리에 서면

무한궤도, 1집 - 1989


작사 : 신해철

작곡 : 정석원

편곡 : 무한궤도

노래 : 무한궤도


거리엔 표정 없는 사람들 물결

스쳐 가는 얼굴 사이로 나도 모르게


너를 찾았지 없는 줄 알면서

믿고 싶지 않아 이젠 혼자라는 것을


그 언젠가 우리 같이 걷던 이 길을

이젠 나 혼자서 쓸쓸히 걸어가네


뒤를 돌아보면 너의 모습 보일 것 같아


잠들 때마다 매일 아침에 깨지 않기를 기도했지

아물 수 없는 상처 속에서 나는 허물어져 만 가네


세월이 흘러 내가 늙고 지쳐도

내 곁에 없어도 아직 나는 너를 사랑해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oTP5EPPKo9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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