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향, 겨울... 그녀를 만나다 : Breath - 2005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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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100선 시즌 2,
'다시 시작'의 이야기
"도대체 그걸 왜 하는 건데?"
세상엔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이유 불문의 '숙명'과도 같은 일들이 있기도 한데, 숨은 명곡 시리즈는 내게 바로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하는 거지?"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이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을 선곡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풀어내어 소개하는 것이 언젠가부터 서서히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들었던 생각인데, 한동안 환청처럼 머릿속을 '왱왱'거렸던 이 질문의 답을 찾긴 쉽지 않았다.
그래도 '100곡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종착지를 미리 정해놓았기에, 일단 '끝을 보자!'라는 '완결'에 대한 집념으로 꽤 오랜 시간들을 달려왔고, 지난 2024년 7월 21일 그 마지막 편인 100번째 노래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소개하면서 약 2년간의 길었던 시간을 마무리 지었다.
"당분간 쳐다보지도 말자!"
혹자는 그냥 노래 하나 선곡하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냐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수십 번 넘게 바꾸었던 숨은 명곡들의 선정, 그에 따른 유튜브 영상 수정과 재업로드의 반복,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던 설명글이 한없이 부끄러워져 발행 이후에도 수도 없이 고쳐 썼던 이곳 브런치까지 잠시 쉬기로 했다.
'이유를 찾다'
참 식상하고도 낯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잠시 그렇게 쉬면서 숨은 명곡 시즌 2를 '다시 시작'할 이유를 찾았다. 그건 바로 아무도 관심 없을 줄 알았던 구독자님들의 따뜻한 격려가 담긴 댓글 때문이었다. 왜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구독, 좋아요, 댓글에 힘이 난다고 하는지 뼛속 마디마디부터 깨닫게 되었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언제가 끝이 될지, 그리고 그 끝이 한없이 초라하고 볼품없을지라도, 작은 또 하나의 목표인 시즌 2의 100곡을 향해 무던히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 보고자 한다.
항상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숨은 명곡 시리즈'에 대해 드리고 싶은 말
숨은 명곡 시리즈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Bynue의 생각과 취향이 담긴 노래들로 숫자는 노래의 순서일 뿐 순위나 중요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노래들은 80~90년대에 집중되어 있지만 시대를 무조건 특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발표된 최신 음악들은 선곡을 최대한 자제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자제하겠지만, 동일 아티스트의 노래가 선곡될 수 있으며, 동일 앨범 내 곡이라 할지라도 다중 선곡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은 언제나 환영합니다만, 무차별적인 비방, 욕설, 폄하 등 건전한 소통을 방해하는 댓글들은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시즌 2는 시즌 1과 연속성을 가지며, 101번~200번째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K-광고 음악의 선구자,
재평가가 절실한
시대를 앞서간 보컬리스트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비~비~ 꼬였네~ 들쑥날쑥해~"
아마 김도향이라는 가수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롯데 제과의 스테디셀러인 '스크류바'의 CM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우스갯소리로 김도향 최고의 히트송이라고도 불리는 이 노래뿐만 아니라 월드콘, 뽀삐, 아카시아껌, 써니텐, 맛동산, LG 그룹 등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랑한 많은 광고 음악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어린 시절 집 옆 영화관에서 '공짜(?)' 영화를 보며 자란 그는 영화감독의 꿈을 꾸며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되지만, 곧 영화계의 배고픈 현실에 좌절하게 된다. 생계를 위해 전전긍긍하던 그는 영화를 보며 흥얼거렸던 팝송과 재즈/블루스 노래 경험을 토대로 밤무대 오디션에 지원하게 되고 단번에 합격하여 노래를 부르게 된다.
단 한 번도 음악공부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노래를 부르던 신촌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공연 시간이 겹쳐 그의 노래를 듣게 된 '이미자'로부터 따끔한 지적을 받은 뒤, 그녀의 조언대로 연습했고 이를 다시 보게 된 그녀가 당시 KBS PD, 지금의 남편에게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69년 'KBS 그랜드쇼'에 서게 된다.
이후 그는 포크계의 아지트였던 '쎄시봉'의 후속이라 불린 '명동 YMCA 청개구리'에서 활동하며 조영남/김하정/김도향 옴니버스 앨범, 그리고 조영남/김도향 앨범 등을 내게 된다.
이후 그는 군대 동기였던 손장철과 '투 코리언스'를 결성하고 민요와 블루스의 절묘한 콜라보 시도가 특징 있었던 '벽오동'을 발표하고 서서히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이 노래 가사 중 '와르르르'는 당시 와우 시민 아파트 붕괴 사고와 맞물리며 더욱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1974년까지 총 5장의 앨범을 내며 꾸준히 활동하게 되지만, 결국 음악적 이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해체하게 된다.
1973년 그는 그의 꿈과도 같았던 영화배우로의 데뷔도 하게 되는데, 박태원 감독이 연출한 '마음은 푸른 하늘'이라는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사재를 털어 청소년 선도기관을 운영하는 전직 검사의 이야기로 당대 탑스타였던 남궁원, 김상희, 송창식 등이 출연했고, 김도향은 밴드음악을 하고 싶은 우범 소년의 역할을 맡았다.
1975년 한국 가요계에는 엄청난 충격과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연예계 '대마초'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장희·윤형주·이종용 등 3명의 가수가 우선 구속되었고 연이어 신중현, 김추자도 구속됐다. 이들 외에도 가수 이수미, 김세환, 김정호, 장현 등을 비롯하여 정훈희, 임창제, 임희숙 등이 구속되거나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후 2차 대마초 파동 때 막 인기 가도를 달리던 조용필까지도 출연 정지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도향도 1976년 대마초 흡연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는 서울 오디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이때부터 광고 음악으로 그의 생계를 다시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불후의 명곡,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의 탄생
1980년을 전후하여 광고 음악 작업에 여념이 없었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다 떨어진 낙엽하나에 큰 공허함을 느끼게 되고 그날 밤새워 노래하나를 만들게 되는데, 바로 김도향의 만든 최고의 명작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가 바로 그것이다.
이 노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기가 사랑하던 무대를 떠나 광고음악을 만들어야 했던 김도향을 다시 가수로 재기하게 한 곡으로 인생의 허무함과 공허함을 달래는 위로의 노래라고 할 수 있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빗대어 대학생 사이에서는 무능력하게 전두환 일파에게 정권을 넘긴 '최규하' 대통령의 노래로 유행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노래의 공식 발표 전 작업실을 들락날락했던 가수 이종용이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하여 부르는 것을 허락했었고, MBC 서울 국제 가용제 출품을 위해 발탁한 김태화에게 줄 곡을 물색하던 이장희는 이종용에게 허락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 김도향에게 이 노래를 받게 된다.
1980년 이종용과 김태화는 모두 이 노래를 자신의 앨범에 넣어 발표하게 되고, 노래의 주인을 두고 싸우게 되는데, 이를 지켜보던 한 방송국 PD가 실제 원저작자였던 김도향에게 차라리 앨범을 발매하라고 권유했고 이리하여 같은 해 같은 노래의 다른 버전 3가지 곡이 발매되는 일이 벌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3명이 부른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그 장르나 느낌이 모두 달랐지만 모두 히트했다는 것인데, 이종용의 노래가 포크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김태화는 Rock, 그리고 김도향은 블루스적인 감성이 진하게 묻어있어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재기에 성공한 김도향은 광고 음악뿐만 아니라, 조영남/김도향 앨범 발매, 1980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 역 출연 등 연예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1986년 전국적 높은 흥행을 거둔 이현세 만화 원작, 이장호 감독 연출의 '공포의 외인구단' OST 노래를 들었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정수라의 '난 너에게'라는 곡이 워낙 큰 사랑을 받는 대히트를 거두었기에 그의 노래가 묻혀버린 듯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가 부른 '외인구단'은 정성조의 세련미가 녹아있는 노래 자체도 좋았지만, Rock Sprit을 느낄 수 있는 그의 허스키한 보이스 컬러의 매력이 돋보인 수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광고 음악이 아닌 Rock 음악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많은 분야에서 다방면의 활약을 하던 그는 어느 날 홀연히 산으로 들어가 노래와는 단절하고 명상 음악에 심취하게 되는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도인과 같은 그의 외적인 모습은 이때 만들어진 것 같다.
그는 2000년 지인의 부탁으로 한 치매노인요양원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자기를 알아보고 기억이 되살아난 어느 할머니를 보며 새삼 노래가 가진 그 뜨거운 힘과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다시 노래를 시작하게 된다.
오늘 숨은 명곡 시즌 2의 첫 번째 곡이자, 숨은 명곡 시리즈 백 한 번째 곡은 2005년에 발매된 그의 앨범 'Breath'에 수록된 윤종신 작사, 윤종신/이근호 작곡, 나원주 편곡의 '겨울... 그녀를 만나다'라는 노래이다.
너무나도 위험한 노래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노래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감미롭기만 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고 어느덧 함께 어우러지는 은은한 현악기가 두 귓가에 다가올 때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김도향만의 진하고 단단한 허스키 보이스가 우리의 마음을 서서히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음악에 넋이 빠져있었던 탓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 미래의 어느 겨울 작은 카페에 홀로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상하리만큼 모든 게 참 익숙하기만 하다. 그리고 노래를 듣는 내내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눈앞에 서서히 그려지기 시작한다.
중년에 다다른 어느 헤어진 남녀가 추운 겨울 다시 만나,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어찌 보면 참 식상한 주제에 구구절절 신파가 그득한 내용일 듯 하지만, 원곡자인 윤종신이 어떤 마법을 쏟아부어 낸 것인지 경이롭도록 사실적이고 마치 그리 멀지 않은 순간 내게 일어날 미래를 미리 잠깐 살펴보는 것만 같다.
이 앨범은 DJ DOC의 김창렬이 김도향을 Respect 하는 마음으로 프로듀서를 자청한 앨범으로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 자주 소개가 되었던 아티스트인 정연준, 윤종신, Windy city(전 아소토유니온)의 김반장, 하림, DJ DOC 등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함께 했다.
참고로 이 노래의 원작자인 윤종신이 2023년 말 월간 윤종신 앨범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는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김도향의 이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감성을 따라가기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 하얀 입김도 아름다운 그대
'하... 얼마나 사랑스러우면 하얀 입김조차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 소절에서 느껴지는 김도향의 애닳픈 감정이 실린 노래는 그저 단순히 뭉클함을 넘어서 진한 감동을 뼛속 끝까지 전달해 준다. 그리고 혹시 내 몸이 이상하게 된 것은 아닐지 걱정될 정도로 심하게 울리기 시작하는 가슴 쿵쾅거림에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다시 그녀에게
연락해 볼까?
그래... 진짜.
참 위험한 노래다.
작사 : 윤종신
작곡 : 윤종신, 이근호
편곡 : 나원주
노래 : 김도향
뿌예진 창문을 지우면 늦은 그대 서둘러 오네
그 하얀 입김도 아름다운 그대
미안해하는 표정이 얼어붙은 뺨 때문에
어색한 그 미소
그대 늦어버린 이유와 목도리를 푸는 손길도
긴 기다림의 사랑스러운 선물
온기를 찾은 얼굴은 이제야 나를 반기네
우리 오랜만이죠
추억들은 그댄 어떤걸 아직도 간직하고 있나요
나에겐 소중했던 그대 이 계절의 그 모습이 너무 그리웠기에
다시 시작일 것만 같아서 여전히 그 미소여서
세월은 묻어있지만 날 부르는 그 모습은 아직도 설레어
찬 바람에 실려온 그대여 소복이 쌓인 눈길들을
다시 함께 걸어봐요 저 반가운 가로등 속 우리의 길 따라서
호호 부는 찻잔 감싸는 그대 두 손 변치 않아서
시간은 그리 많은 걸 빼앗지 않아
내 그리움 속 그대는 사라지지 않았기에
그 느낌을 알기에
다시 시작일 것만 같아서 여전히 그 미소여서
세월은 묻어있지만 날 부르는 그 모습은 아직도 설레어
찬바람에 실려온 그대여 소복이 쌓인 눈길들을
다시 함께 걸어봐요 저 반가운 가로등 속 우리의 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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