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39일 차
학창 시절, 일요일 한낮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날따라 해가 중천에 뜨도록
지속된 머무름이 낯설었던가요.
당신이 주로 부재했던 시간이기에 말입니다.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앉아 말없이 티브이 채널을 돌리던 당신은 흡사 외딴섬과 다름없었습니다.
'숨 막힐 듯 어색하다...... '
머릿속을 맴맴 도는 문장이 신음처럼 내뱉어질까 입술을 꾹 다물고 말았습니다.
바쁜 일이 없지만 분주함을 연기했습니다.
여느 때완 다른 집안공기,
생경한 풍경을 견디지 못한 저와 동생은
저마다 지킬 게 있다는 듯 각자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올 줄 몰랐습니다.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들의 차원은
둘이 되었습니다.
용기 내어 건넨 한 마디가 여러 마디의 간섭이
되어 돌아올까 두려웠던 걸까요.
어느 순간 당신과의 대화에서 미리 실망할 준비를 하는 저희를 보았습니다.
적막을 가르고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먼저 두드린 사람은 당신이었습니다.
"아빠랑 등산하러 가자."
느닷없기 그지없었습니다.
제법 머리가 커져서 각자의 계획이 생겨버린
딸들 입에서 흔쾌한 대답이 나올 리 없습니다.
등산이 싫었을까요.
'당신과 함께'가 싫었던 걸까요.
난색을 표한 저희는 눈빛으로 투덜대기 시작합니다.
'웬일로 만날 친구가 없으신가 보네.'
'오늘따라 왜 이러시는 거지.'
당신의 용기가 거절당한 탓이었을까요?
퍽 기분이 상해버린 당신은 관성처럼
비교와 지적을 쏟아냅니다.
"너희는 운동 좀 해야 하는데 큰 일이야.
그렇게 게을러서 어쩔 거야.
내 친구 딸은 어쩌고, 친구 아들은 저쩌고."
또 시작이다.
그러면 그렇지.
눈빛에만 고여있던 불만이 복받치는 목소리로
당신 귀에 꽂힙니다.
끝내 우리는 '좋게 좋게', '둥글게 둥글게'를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서는 당신을 지켜보았습니다.
천천히 닫히는 대문 틈 사이로 작게 사라지던 당신.
빗어 넘긴 머리를 헤어스프레이로 단단히 고정한 말쑥함은 평일에만 유효한 것이었나 봅니다.
부스스하게 떠 있는 뒷머리에서
쓸쓸한 까치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