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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뵤뵤리나 Nov 24. 2024

글쓰기는 필연적일 수밖에

글로써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는 일

인간관계를 징검다리로 비유하자면 돌계단의 폭이 잰걸음만 디뎌도 건너고 남을 정도로 좁은 지역.

그런 곳에서 생업을 일구며 살아간다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말'이지 않을까.


호텔에서 같이 근무했었던 과장님이 참으로 별스럽도록 오래간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스카우트된 곳이 나 또한 이직했다가 3개월도 못 채우고 나와버린 바로 그 호텔이었다.

새로 다니게 될 직장의 사전 정보 수집을 위해 

평소 안부 연락조차 나누지 않던 사이인 내게 굳이 1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 호텔의 책임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온 전화에 쉽사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꽉 막히고, 호흡은 불규칙해지고, 등에 식은땀이 났다.

정신적으로 미지를 입고 혼이 나간 사람처럼 부유하는 내 영혼의 지옥 같았던

그곳, 그 사람을 말끔히 극복하고 살고 있다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나 보다.

굳이 이런 내밀한 속사정을 털어놓을 없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말'.

있는 그대로 말해줬다가 입이 가벼운 그녀에 의해 입방아에 오른 채

나는 또 그곳에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철없던 어린 시절, 소심한 마음에 앞에서 털어놓지 못했던 진심을 뒤에서 다른 이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서운하고 속상했던 일을 당사자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고 뒤끝 없이 해결할 담대함과

이후 관계를 매끄럽게 이어나갈 용기가 부족했다.

상대방이 내 서운함을 속상함 없이 들어줄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싫은 소리 못하는 여린 성격이란 말로 에둘러 포장하지만, 그냥 냉정하게 말하자면 비겁했던 거 같다.    

그래서 뒷담화의 힘을 빌려 속풀이 하기도 했다.

라면 수프 속 MSG의 강렬하고도 중독적인 첫맛과 같이 뒷담화는 공범자와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짜릿한 쾌감을 제공하지만, 그 뒷맛은 결코 개운하지 않았다.

훗날 언제고 마주하게 된 험담 속 주인공의 얼굴을 보기에도 떳떳하지 못하고

상대는 눈치챌리 없는 심리적 부채감에 굳이 베풀지 않아도 될 친절까지 베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이란 것이 화살이 되어 내게로 날아와 꽂힐 때 그저 많이 아팠다.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에 있어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치료법은 바로 거울 치료다.

내가 이토록 아프면 다른 사람은 얼마나 아프겠나 싶어 말로 죄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두렵다. '말'이.

우리 동네와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생면부지인 아이 엄마가

내 남편의 직장과 아이의 실명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아연실색했다.

진원지는 아이가 돌쟁이 아가였던 시절, 문화센터에 같이 다니다 친하게 지내던 언니였다.

각자의 연유로 소원해진 언니가 새로 맺은 인연에게 굳이 내 남편과 아이 실명까지

거론하며 꺼낸 얘기가 결코 좋은 내용은 아닐 것임을 직감했다.

나로 인해 우리 가족의 명예가 더럽혀진다는 얘기는 조선시대 고지식한 양반 가문의

변절한 자식들이나 하는 얘기인 알았는데, 그 비스름한 감정을 공감할 일이 오다니.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내 남편이, 아무것도 모르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내 아가가,

왜 누군가의 구전으로 떠돌아야 하나.

무얼 그리 서운하게 했길래. 잘못이 있다면 나와 풀었어야 얘기다.

이야기가 돌고 돌아 결국 내 귀에 꽂히던 그날,

나는 마음속 빗장을 걸어 잠갔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든, 직장 동료든, 적당히 소문으로 돌아도 무방할만한

지극히 무난하고 평범한 일상 얘기들만 주변을 맴돌았다.

한때 잘 공감하고 들어준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했다가

나를 놓칠뻔한 경험이 있기에, 타인에게는 고통을 전가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고민 끝에 어렵게 말로 털어놓은들, 밑 빠진 독에 물 부은 듯 헛헛한 마음에 후회되었다.     

그러나,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다. 머릿속이 꽉 들어차 지끈거릴 정도다.

말로 내뱉으면 가벼워질까? 생각의 무게가 덜어질까?

머릿속을 맴도는 언어는 수백, 수천 가지인데 그중 어떤 말이 수면 위로 떠올라도 좋을지

검열에 검열을 더해 체에 거르고 보니, 남은 말이 없다.   

입으로 뱉어도 좋을 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할 말이 없고, 말을 해도 공허하다.




'말'이란 것에 회의감이 밀려온다.

말은 옭아맬 수 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의미가 변질되고 그 속에 담긴 내 진심은 퇴색되기 쉽다.

진심이 담긴 언어를 말하는 법을 이러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온전한 마음의 형태를 해치지 않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말이 아니라, 글이라서 좋다.  

그래서 쓰기로 한다.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에 켜켜이 쌓인 해묵은 진흙은 파도에 씻겨 보내고

반짝이는 진주처럼 글을 남기고 싶다.

영롱한 빛깔 한 자락이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면 좋겠다.    





바람에 실려오는 귤꽃향을 맡고서

"귤꽃향이 향긋하네요. 혹시 시트러스향 좋아하세요? 향수 어떤 거 쓰세요?"


위축된 마음으로 쓸쓸한 눈빛과 축 처진 어깨를 한 당신에게

"힘든 일이 있으신가 봐요. 어? 저도 비슷한 일 있었어요. 많이 힘들죠?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구름 한 점 거리낌 없이 깨끗한 하늘에 우아한 능선을 오롯이 드러낸 한라산의 자태를 보고는

"우와, 오늘 날씨 오름 가기 좋은 날씨다. 시간 되시면 저랑 같이 가실래요?"


오늘도 글로써 당신의 마음에 말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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