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뵤뵤리나 Nov 13. 2024

추구미 vs 도달가능미   쭈꾸미 아니면 다행이지

이상과 현실의 갭을 인정하는 메타인지


 '추구미와 도달가능미'라는 MZ세대 단어의 등장은 나의 심금을 울렸다. 이상은 높고 실행률은 현저히 낮은 INFP에게 마치 "꼭 추구한 대로 다 이루지 못해도 괜찮아! 도달 가능한 것도 어디야. 그냥 해보는 거지."라는 주문과 같았달까. 확실히는 추구미보단 '도달가능미'에 더 꽂혔다는 게 맞겠다. 도달가능미에 첫 발이라도 도달하려면 무엇보다 현실 직시가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 보는 이상과 현실의 갭을 내 자아에 따라 요목조목 따져보았다.



1. 엄마로서의 나

추구미: 호수 위의 고고한 백조처럼 어떠한 상황에도 욱 하거나 짜증 내지 않는 평정심을 가진다. 뚜렷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훈육을 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내 아이의 장점과 사랑스러움을 보고 나를 닮은 단점마저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현실: 때때로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 피로감이 큰 날이면 허용 범위가 좁아지고 엄격해진다. 감정기복이 심한 탓에 다정한 엄마와 예민한 엄마의 갭이 크다. 나도 고치지 못한 나쁜 자세가 아이에게서 보일 때면 잔소리 폭탄을 발사한다.   

도달가능미: 고고한 백조는 못 된다는 것을 인정하자. 평정심은 태생적으로 일희일비와 부화뇌동을 탑재한 나에게 거리가 먼 단어일 뿐이다. 대신, 좋은 기분과 태도를 유지해 줄 체력을 기르자.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질까 불안함에 아이를 닦달하지 않도록 독서를 틈틈이 하자. 눈에 거슬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나부터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100번의 말보다 1번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엄마가 되자.


2. 주부로서의 나

추구미: 가족들의 건강과 외식비 절감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주 식단표를 계획해 둔다. 퇴근길과 주말 주 2회 장을 보고 찌개, 국, 고기반찬을 밀프렙 해둔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샐러드, 과일, 요구르트, 그래놀라 등 첫 끼로 먹기에 부담 없는 영양가 있는 식사를 차린다.  

현실: 매주 식단표 짜기는 일단 할 줄 아는 반찬과 국, 찌개의 가짓수가 한정적이라 결국 2주 간격으로 그 나물에 그 밥의 형태가 돼버린다. 이미 외식의 맛에 길들여져 버린 부녀는 똑같은 반찬이 2일 연속으로 등장하면 젓가락이 가질 않는다. 결국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 마법 같은 최면에 먹고 싶은 거 먹자며 배달 앱을 들여다본다. 아침 식사는 빵, 떡 등 간편하면서도 혈당스파이크에 최적화된 메뉴로 잠을 깨운다. 샐러드와 과일을 가뭄에 콩 나듯 내놓을 땐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제발 한 입만 먹기를 애걸복걸하다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식탁의 날씨가 찌뿌둥해진다.    

도달가능미: 건강식=맛이 없다는 공식이 성립하는 부녀에게 절대 "이거 몸에 좋은 거야(그르니까 남기지 말고 싹싹 긁어 므그르)."라고 복화술로 종용하지 않는다. 건강식 먹은 만큼 외식으로 도파민 충전할걸 안다. 그러므로 너무 클린한 식단에 강박을 가지진 말자. 다양한 식재료를 섭취하기 위해서라면 제철재료로 만든 밑반찬을 반찬가게에서 소량씩 자주 구입한다. (요즘 반찬가게도 많이 비싸다. 허나 내 노동력과 시간을 돈으로 샀다고 해두자) 아침식사로 빵은 통밀빵, 떡은 현미가래떡 등 잡곡이 들어간 복합 탄수화물 식품으로 대체한다. 단, 맛있어야 한다. 맛없으면 내가 다 먹어야 한다.  


3. 브런치 작가로서의 나

추구미: 김이나 작사가님의 '보통의 언어들' 속 서정적이고 몽글몽글한, 섬세한 감성을 톡톡 일깨우는 글을 쓰고 싶다. 옆구리 콕 찌르면 영롱한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들이 청산유수로 써지는 경지에 이르고 싶다. 점심 도시락에 무심히 건져 올린 김치 한 조각만 봐도 글감이 떠오르는 작가의 '뇌'를 갖고 싶다.   

현실: 초보작가 티가 팍팍 난다. 현실 투머치토커인 만큼 글에서도 미사여구가 많아 문장이 늘어질 때가 있다. 쓰고 보면 단문보다 장문의 비중이 높다. 감성은 엿 바꿔 먹었는지 직설적이고 딱딱한 문체에 문장에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읽는 맛이 없다. 쓰는데 시간은 또 왜 이리 많이 걸리는지, 쓰레기 같은 초고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포장지로 덕지덕지 모나고 구멍 난 데를 메우느라 급급한 퇴고, 퇴퇴고, 퇴퇴퇴고의 연속.  

도달가능미: 그럼에도 솔직하다. 솔직하고자 한다. 글을 쓰는 본질은 애당초 잘 꾸며진 나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듬기 위해서였다. 내뱉으면 공허해지는 말보다, 어지러이 흩어진 상념들을 그러모아 정제된 글로 기록하고 싶었다. 글로써 생각을 비워내고 마음을 채우고 싶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첫 술에 배부른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발을 들였으니 정진해서 나아갈 수밖에. 작가의 서랍 속에 비록 쓰레기일지언정 그 언젠가 보석같이 발굴되기만을 기다릴 글들을 하염없이 쌓아갈 것이다.     


오른손엔 펜, 왼손엔 프라이팬. 소리가 같은 팬인데 왜 이리 다른건지




 경상도 말로 '갸는 갸고, 내는 내지'라고 한다. 표준어로 번역하면 '걔는 걔고, 나는 나야'이다. 추구미를 이루지 못한 나를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 지옥에 몰아넣던 시간들이 있었다. 자기 혐오의 시간동안 그럼에도 주어진 여건 안에서 부단히 발버둥치던 나를 돌보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의 내가 버텨줬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위안삼는다.

 2024년 11월 현재, 나의 추구미는 현실적으로 이루기에는 체력과 정신력을 다 쏟아부어도 시간이 모자랄 것만 같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INFP는 아예 시도조차 못 볼 추구미가 아니라, 도달가능미에 엄두 내보려고 한다. 그것도 조금씩 차근차근 말이다. '엄두라도 내보는 나 자신 칭찬해'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일상 속에 긍정적인 변화를 단계별로 길들여가면서. 그러다 보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겠지. 미비한 속도와 변화라도 나아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추구미가 되지 못할 바엔 아예 하지 말지라는 마음으로 쭈꾸미처럼 움츠러들진 않기로 하자. 과거의 내가 그랬던 거처럼 말이다.











※ 메인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 '주꾸미'가 표준어이나, 글맛을 살리기 위해 구어체인 '쭈꾸미'로 표기하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