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패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신가요?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패션'이라는 말은, '의복'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서 자동차, 건축, 주거 등을 포함하여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양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미시적으로는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복식이나 헤어스타일의 일정한 형식' 정도로 패션을 이해하면 되겠죠.
인류의 역사 속에서 패션은 항상 중요한 문제였고, 사람들의 옷 입는 방식은 사회적인 의미에서도 중요했다고 합니다. 이집트 벽화에서 볼 수 있는 호화로운 옷과 장신구는 외모, 옷에 대한 관심이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패션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 간에 합의된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패션은 '산업'으로서도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소비자 패널 전문 마케팅 리서치 기업인 Kantar에 따르면, 전 세계 패션시장의 규모는 2020년 약 360조 원 규모이고, 이후 매년 4%가량 성장해 2025년에는 약 430조 원 규모의 시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Fashion United는 패션산업의 총 가치가 3,000조 원으로 전 세계 GDP의 2%를 차지한다는 분석을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패션산업의 성장은 단연 SPA가 견인하는 가운데, 성장의 절반 가량을 패스트리테일링 (유니클로), 인디텍스 (자라), 에이치앤엠 헤네스 앤 모리츠 (H&M), TJX 그룹 등 주요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여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패션 유통의 경우는, MZ세대로 대표되는 새로운 핵심 소비자층의 성장,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 여파로 급속한 온라인으로의 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데이터와 신기술을 접목해 고객과의 접점에서 편의성을 강화하고 맞춤화된 Offer를 제공하는 새로운 플랫폼과 스타트업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소셜미디어 이미지들을 분석해서 패션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프랑스의 휴리테크 (https://www.heuritech.com/), 패션 컨텐츠와 트렌드 등 정보를 결합하여 3,500개 이상의 글로벌 및 국내 브랜드를 유통하는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 (https://www.musinsa.com/), 인공지능으로 3초 내에 럭셔리 제품의 '진품 여부'를 판별해 주는 미국의 엔트러피 (https://www.entrupy.com/), 그리고 오늘 이야기해 볼 스티치 픽스 (https://www.stitchfix.com/) 등이 있습니다.
스티치 픽스는 2011년 하버드대학 MBA 학생으로 당시 28세였던 Katrina Lake가 창립한 '맞춤형 의류 구독 서비스'인데, Katrina의 이력을 살펴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스티치 픽스를 설립하게 되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Katrina는 스탠퍼드대학 졸업 후 Polyvore와 The Parthenon Group (미국의 전략 컨설팅펌으로, 2014년 Ernst Young에 의해 인수, 현재는 EY-Parthenon으로 불립니다)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Polyvore는 '커뮤니티 기반의 소셜 커머스 서비스'로, 'Virtual Mood Board'라는 기능으로 커뮤니티 회원들이 좋아하는 의류, 잡화, 인테리어 제품 등을 모아 Board에 'Set'라는 이름으로 이미지 콜라주를 만들고, 이 콜라주를 공유하거나 코멘트를 달고, 서로의 콜라주를 비교, 경쟁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조사들도 이 보드에 연결하여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기능도 제공했습니다. Polyvore를 못 들어보셨던 분들도 SSENSE는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2018년 SSENSE가 Polyvore를 인수하면서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이렇게 (의류) 온라인 커머스 경험과 컨설팅펌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버드 MBA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알고리즘과 휴먼 스타일리스트를 결합, 사용자가 원할 법한 의류 모음을 구독 형태로 제공'하는 스티치 픽스 모델을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티치 픽스의 'Fix' - 구독 회원에게 배송되는 박스 안의 의류들을 칭하는 용어 - 와 Polyvore의 'Set' 사이의 유사성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SurveyMonkey 서비스를 이용해서 고객의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는 데이터를 모아가면서 고객이 원할만한 의류들을 골라서 배송했고, 매월 고객으로부터 직접 - 인터넷 결제 기능도 없었다고 합니다 - 구독비용을 받았는데, 2012년에 당시 넷플릭스의 Data Science & Engineering 임원이었던 Eric Colson을 만나 긴 설득 과정 끝에 스티치 픽스의 Chief Algorithms Officer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스티치 픽스에 가입을 하게 되면 먼저 각자 기본적인 몸의 수치, 직업,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과 취향, 가격대 등에 대한 온라인 서베이를 거치고, 이후 분석 알고리즘이 추천한 'Fix' (의류 세트)의 선택지들, 그리고 고객의 소셜 미디어 자료들을 기반으로 휴먼 스타일리스트 - 앞으로 스타일리스트라고 하겠습니다 - 가 선정한 다섯 가지 아이템을 정기적으로 받게 됩니다. 물론 고객이 배송 주기를 2주마다, 매월 1회, 매 2월 등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고, 배송과 반품은 무료이나 매 Fix 배송 시마다 USD 20의 스타일링 수수료를 부과합니다.
Fix가 고객에게 도착하면, 3일 내로 받은 의류들을 그대로 구매할지 아니면 일부 또는 전부를 반품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의류를 하나라도 구매한다면, 스타일링 수수료를 의류 가격에서 빼 주고, Fix 내 의류를 모두 구매한다면 추가로 전체 금액의 25%를 할인해 줍니다.
고객은 자신이 받은 Fix에 대한 피드백뿐 아니라 이후 받을 Fix에 대한 요청사항 (e.g., "다음 달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그에 어울리는 치마 투피스를 추천해 주세요")을 노트로 남길 수 있고, 이를 스타일리스트가 받아서 읽고 다음번 배송할 Fix와 고객의 정보에 반영하게 됩니다. 이런 피드백 루프를 통해서, 다시 '알고리즘~스타일리스트'의 협업이 지속적으로 선순환하며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Katrina와 Eric Colson의 공고한 협업 아래, 스티치 픽스는 데이터 사이언스, 엔지니어링, 그리고 알고리즘의 프랙티스를 지속적으로 확충하면서 사업의 전 영역에 혁신적 기술이 유기적으로 녹아들게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과제로 추진했습니다. 스티치 픽스의 기술과 혁신에 대한 시도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Personal Styling 뿐 아니라 Warehouse, Merchandising, 그리고 Client Experince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스티치 픽스의 서브 사이트 'Multithreaded'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한 번 방문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특히, 'Multithreaded' 내의 'Cultivating Algos' 섹션에 스티치 픽스가 정말 데이터 기반의 혁신을 빠르게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조직, 역할, 업무 절차를 일반적인 회사들과 어떻게 다르게 구성했는지를 하이레벨 하게나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Katrina가 '쇼핑은 근본적으로 아주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활동이며, 그 때문에 때로 알고리즘이 추천한 결과를 스스로의 판단으로 변경하거나 거절할 수도 있는 스타일리스트와의 적절한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 따라 조직과 사업을 운영했다는 것입니다. 201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Katrin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t's simple: A good person plus a good algorithm is far superior to the best person or the best algorithm alone."
이런 독특한 강점을 가진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스티치 픽스는 2014년 영업이익을 실현하면서 빠르게 성장, 2017년 약 220만 명의 활성 사용자, 약 10억 불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그 해 11월 성공적으로 나스닥에 상장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IPO 이후 스티치 픽스의 사업 성과는 이전과 같은 고성장세를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스티치 픽스의 FY20 Investor Presentation을 살펴보면:
우선, 전체적으로 활성 고객 (1년 내에 제품 구매를 한 번이라도 한 고객)과 매출은,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다른 거대 의류 브랜드의 매출이 두 자릿수 이상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2019년 18%였던 활성 고객 증가율이 2020년 9% 이하로 절반 이상 떨어진 점, 전체적인 매출 규모뿐 아니라 활성 고객 당 매출액도 전년 대비 하락했다는 점에서, 2017년 IPO 당시의 기대치를 크게 하회하는, 즉 투자자들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고려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2020년 중반 스티치 픽스의 주가가 USD 10대로 떨어지면서 'Broken IPO'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 물론 코로나 팬데믹 영향의 한가운데 있던 시기라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스티치 픽스가 맞닥뜨린 이런 위기의 이면에는, 몇 가지 내재적인 리스크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혁신기술 기반의 경쟁 심화
우선,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경쟁 환경'의 관점입니다.
창업 당시에는 스티치 픽스의 사업모델이 상당히 차별화되고 독특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팬데믹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뒤집어진 이후에는 전통적인 의류 유통사업자들도 빠르게 온라인에서의 사업 역량과 규모를 확장하면서 스티치 픽스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Macy's의 의류 구독 서비스, Nordstrom의 Trunk Club, Amazon의 Prime Wardrobe 등이 그 사례이죠.
특히, Recurly Research의 벤치마크를 보면,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교육 컨텐츠와 서비스, 일반 소비재, 식료품 등 여타 카테고리의 구독 서비스 대비 '이달의 박스 (Box of the Month)' 형 구독 서비스는 이탈률이 10.5%로 매우 높아, 평균의 두 배에 달합니다.
결국, 기존의 전통적인 브랜드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대거 출시하면서 신규 고객 유치 비용의 증가와 사업 성과의 하방 압력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됩니다.
스티치 픽스 서비스 모델의 Scalability & Effectiveness
두 번째는, 언뜻 보기에 '이상적'으로 보이는 스티치 픽스의 서비스 모델 - 알고리즘과 휴먼 스타일리스트를 결합하는 - 이, 의류 유통이라는 사업의 맥락에서 Scale과 Effectiveness에 이슈가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기는 한데, 미국 시장의 경우 온라인 커머스의 반품률은 25~3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 대비 3배에 이르는 수치인데요. 이들을 품목으로 나눠보면 Commodity에 가까운 식음료 등은 반품률이 낮은 쪽에, 패션/의류는 반품률이 높은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구독 서비스에 있어서도 유사한 패턴으로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 물론 '반품률'이 높다고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전략적으로 '반품'을 고객과의 관계를 심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특히 트렌드와 시즌 등에 민감한 의류 산업의 특성을 놓고 보면 '높은 반품률'은 '재고 부담'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런 구조 하에서, 평균 단가 USD 30 ~ 50가 주종인 의류를 알고리즘의 추천과 (대부분 파트타임인) 휴먼 스타일리스트의 선택을 거쳐 구독 서비스로 배송하고, 다시 피드백을 받아 업데이트하는 서비스는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Scalability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의류' 시장에서 '구독' 모델 파급력의 한계
구독 서비스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오긴 했지만, 사실 전체 의류 시장에서 구독 서비스의 존재감은 아직도 미미합니다. 미국 시장에서 전체 의류 시장 규모 대비 1%에 불과하거든요. 이 중 절반 정도 (~0.5%)를 스티치 픽스가 차지하니, 의류 구독 서비스 시장 내에서의 명실상부한 리더라고는 볼 수 있겠지만, 타인의 판단이 어려운, 미묘한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는, '의류 구매'라는 행위의 어느 정도가 과연 '구독' 서비스로 이동할까요?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카카오 선물하기가 생각납니다. 카카오톡과 채팅이라는 맥락에서, 친구 (내지는 가까운 사람)에게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의 선물을 한다는 독특한 서비스인 '카카오 선물하기'는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고, 빠른 성장을 거쳐 2020년 기준 3조 정도의 매출을 거두었지만, 160조 이상에 달하는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 비하면 여전히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구매'의 맥락을 '선물하기'가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요?
결국, 스티치 픽스는 이 위기를 타개하고 시장의 분위기에 반전을 끌어내기 위해서 사업모델의 전환을 꾀하게 됩니다.
사실, 스티치 픽스는 창립 이후 성장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서비스 모델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2018년 시도된 것만 해도,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던 사업에서 고객군을 남성, 아동 등으로 점차 확대하고, 시장을 미국 외의 영국으로도 확장하고, USD 49만 결제하면 연간 스타일링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Styling Pass를 도입했으며, 스타일리스트가 추천한 Fix에 원하는 소품을 추가할 수 있는 Extras라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죠.
그러나 무엇보다 큰 사업모델의 전환은, '구독' 모델 중심에서 '고객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옷을 고를 수 있게 하는' 모델을 추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019년 'Direct Buy'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함으로써 이 전환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 'Direct Buy'는 스티치 픽스의 기존 고객이 등록된 자신의 취향과 구매 이력 등을 기반으로 추천된 의류를 스스로 - 스타일리스트가 보내주는 Fix를 통하지 않고 - 살 수 있도록 하는, 전형적인 온라인/모바일 커머스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 'Direct Buy'는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거치면서 안정적 성장을 거듭하게 되어, 경영진의 주요 사업 전략으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2021년 'Freestyle'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 사업모델의 전환을 알리게 됩니다.
'Freestyle' 서비스는 기존 Fix 서비스 가입자가 아니더라도 사용할 수 있으며, 당연히 스타일링 수수료가 없습니다. 반품이나 교환 시에도 추가 비용이 들지 않으며, 최소 주문 금액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Freestyle' 서비스는 스티치 픽스에서 보유한 제품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쇼핑할 수 있는 기능들을 제공합니다:
'Trending for You' : 최신 트렌드 기반의 개인화된 스타일 추천
'Complete Your Looks' : 고객이 스티치 픽스에서 구매한 제품들을 기준으로 한 의류 추천
'Featured Brands' : 고객의 선호 브랜드 모음
'Categories' : 고객의 사이즈에 따라 맞춤화된 제품 셀렉션
'Fresh Finds' : 트렌드와 시즌별로 구성되는 맞춤화된 개인 샵
'Expert Picks' (곧 오픈 예정) : 인플루언서, 셀럽, 스타일리스트, 또는 다른 고객의 독특한 스타일을 참고하여 전문가가 큐레이션 한 컬렉션
'Freestyle' 서비스의 준비 및 개시 과정에서 CEO의 교체가 있었는데, 스티치 픽스의 창업자였던 Katrina Lake가 CEO의 자리에서 물러나 회장 (Executive Chair)이 되고, 컨설팅펌 Bain & Co.의 파트너였던 Elizabeth Spaulding이 새로 CEO가 됩니다. 유통/패션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일리스트의 색깔을 서비스의 핵심으로 강조해 왔던 Katrina가 물러나고, 컨설턴트 출신의 Elizabeth가 회사의 조타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알고리즘 기반 Operation'의 색깔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스티치 픽스가 이렇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사업모델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과거 '알고리즘과 스타일리스트의 협업'을 중심에 두었던 구조가 무너지고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구조로 조직의 무게추가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스타일리스트는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됩니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2020년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던 1,400여 명의 스타일리스트를 정리해고, 대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싼 달라스, 미네아폴리스, 오스틴, 텍사스 지역에서 인력을 충원한 바 있고, 2021년 8월, 'Freestyle'의 출시가 가시화되던 시점, 새로 부임한 CEO, Elizabeth Spaulding은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 사이의 시간 중에, 매주 최소 20시간 근무할 수 없는 스타일리스트는 앞으로 스티치 픽스에서 일할 수 없다. 새로운 계약 조건을 2주 내에 받아들이고 사인을 하든지 아니면 USD 1,000을 받고 사직하라'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순식간에 근무하던 스타일리스트들 중 3분의 1 정도가 사직을 하게 되면서, 이 사건이 잠시 뉴스 지면을 장식하게 되었는데요.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유연한 근무 스케줄과 부수적 수입을 제공하여 풀타임뿐 아니라 많은 파트타임 직원을 두었던 스티치 픽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에서 스타일리스트를 구조 조정'한 것으로 보이는 이면에 업무를 둘러싼 '알고리즘' 대 '인간'의 갈등 구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알고리즘과 휴먼 스타일리스트를 결합'하는 구조의 스케일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런 관점에서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을 '고객'과 '알고리즘'에 분산하는 Freestyle 서비스에 힘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스타일리스트의 규모나 역할을 정비해야 할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쌓아온 각종 '데이터'를 가지고 알고리즘 중심의 서비스 운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스타일리스트들의 관점에서는, 회사가 '알고리즘'의 역할에 더 무게를 두고 Freestyle 서비스에 힘을 주는 것이 보이고, 이 과정에서 본인들이 '고객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그들에게 어드바이스를 주는 스타일리스트'로서가 아니라 '알고리즘'을 훈련시키는 역할 - 즉, 미래에 자신들의 일자리를 없앨 것 같은, 호랑이를 키우는 일 - 에만 투입된다는 생각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전직 스티치 픽스 스타일리스트들이 '이미 Fix 서비스의 경우에도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알고리즘이 추천한 Fix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쓸 노트를 작성하는 것만 열심히 하도록 가이드를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새 CEO인 Elizabeth도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훈련하는 역할'로서의 스타일리스트를 여러 인터뷰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Elizabeth를 비롯한 스티치 픽스의 경영진도, 이 모든 구조가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티치 픽스의 Fix 및 Freestyle에 사용되는 알고리즘을 훈련하는 역할 외에, 스타일리스트가 앞으로 더 고부가가치의, 차별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곧 출시될 Freestyle 내의 'Expert Picks' 기능입니다.
한 명 한 명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개별 스타일리스트가 실행하고 관리하는 구조는 현재 스티치 픽스 Fix 서비스의 사업구조로 보았을 때 변화해야 하고, 그런 관점에서 스타일리스트가 셀럽, 인플루언서의 복장, 패션 트렌드 등을 바탕으로 스타일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을 수집하고 매출로까지 연결시키는 구조가 어느 정도 작동하는지 지켜볼 만합니다. 물론, 이런 방식의 '업무 전환'은 스타일리스트의 업무 환경과 수익 구조나 확보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서, 스타일리스트들에 대한 재교육과 마인드셋 변화를 어떻게 도와줄지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스티치 픽스 회사의 관점에서도 앞으로의 2년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Freestyle이 '구독' 서비스의 한계를 벗어나서 스티치 픽스의 Addressable Market을 확장시켜줄 것은 분명하지만, 그 시장은 또 그 나름대로의 강력한 사업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다른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지난 10년 동안 축적해온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얼마나 다른 패션 커머스 사업자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Fix와 Freestyle 모두에서 고객의 반응을 수집, 검증해서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트레이닝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모드로 고객과 스타일리스트의 상호 작용을 스케일 있게 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냐가 성패를 가를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스티치 픽스의 정체성, '휴먼 터치를 결합한 패션 스타일 서비스'가 아닐까요.
아직 시장은 Elizabeth만큼 스티치 픽스의 미래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Freestyle이 아직 초기이기는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스티치 픽스에 신규로 유입된 활성 고객은 58,000명뿐이고,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FY2022의 남은 기간에도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는 것 같네요.
또 FY2022 매출이 전년 대비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스티치 픽스 자체적인 예상을 하고 있는데, Freestyle의 성장을 위해 쏟고 있는 마케팅 투자를 고려했을 때, 과거 스티치 픽스가 달성해 왔던 YoY 20% 성장에 비하면 그리 눈에 띄는 수치는 아닙니다.
스티치 픽스가 Freestyle과 Fix의 두 축을 중심으로, '알고리즘과 사람이 협업'하는 새로운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내게 될지, IPO 이후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성과를 털어내고 새로운 모멘텀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