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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병찬 Mar 07. 2020

알파고 대 이세돌 대국의 기억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힌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에서의 이세돌 9단


'바알못'이었던 - 지금도 바알못인 - 나


개인적으로 국민학교 -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죠 - 에 들어가기 전부터 중등,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저와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공간에서 성장했던 분들은 공감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부모님의 지원과 배려 덕분에 많은 과외 활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피아노, 태권도, 스케이트 등 많은 것들을 배우기 시작해서,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해마다, 철마다 테니스, 탁구, 스키, 미술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꽤 오랜 기간 했었습니다. 워낙 부족한 재능 탓에 그중 어느 하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이르거나 업으로 삼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도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음악, 미술 등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또래 친구들이 꽤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바둑, 장기의 경우에는 그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습니다. 특히 '바둑'의 경우에는, 그 이미지가 뭔가 '영재'들만이 꾸준히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서 그랬는지, 부모님도 '바둑' 한 번 배워보겠느냐는 말씀은 한 번도 하시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 과방, 동아리방에 가끔 - 제가 그렇게 학교에 열심히 다니던 편은 아니었습니다 ^^; - 들를 때면 선배, 동기, 그리고 후배들이 모여서 바둑을 두던 모습을 많이 보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나도 바둑을 둬 볼까'라든가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 번 배워볼까'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도, 제게 '바둑'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저 때로 뉴스나 신문 지면을 장식하던,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의 기사 조훈현, 이창호 등의 이름 정도였고, 그 이상의 관심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바둑'이 하나의 문화로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과 친숙했던 모양입니다. 2016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거의 1,000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이 바둑을 둘 줄 안다고 답하고 있고, 우리나라 국민들 중 80%는 바둑이 자녀 교육에 유익하다고 본다고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아도,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상 일이라든지 회사 일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바둑을 두는 상황에 비유해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복기하다', '포석을 두다', '정석', '자충수', '대마불사' 등등 시사용어로 쓰이는 바둑 용어도 꽤 되고요.



2016년, 알파고 vs. 이세돌 9단의 대결


이렇게 바둑과 여러 모로 가장 친숙한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아마도 2016년 3월에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정식 명칭은 '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 https://en.wikipedia.org/wiki/AlphaGo_versus_Lee_Sedol)은 '자신감',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충격', '혼란'으로 끝난, 어쩌면 감정의 롤러코스터 같은 이벤트였을 것입니다.


알파고 - 이세돌 9단 대국 시 해설자들의 복잡한 감정


저도 이 당시에 이미 '인공지능'이라는 토픽에 꽤나 관심을 - 표피적인 관심에 불과했지만 - 가지게 되었던 터라, 전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대국까지의 충격적인 3연패 후, 흰돌을 쥔 이세돌 9단은 많은 사람들이 '신의 한 수'라고 부르는 78수를 두면서 승기를 잡아, 결국 네 번째 대국에서는 승리하게 됩니다. (당시 이세돌 9단은 그 수를 둔 이유를 묻자 "그 수 외에는 둘 수가 없었다. 둘 수밖에 없었던 수를 뒀는데 찬사를 들으니 의아하다"라고 말했는데, 2019년 11월 바둑계 은퇴 발표를 하면서 했던 인터뷰 중에 "사실 78수는 꼼수였다. 정확히 받으면 먹히지 않는 수라서, 지금도 중국 AI인 '절예'에 버그가 생기듯 일종의 알파고에 있는 버그가 아니었나 싶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세돌 9단의 이 승리는 지금까지도 바둑에서 인공지능을 대상으로 사람이 거둔 유일한, 마지막 1승으로 남아 있죠. 마지막 대국에서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다가, 경기는 결국 이세돌 9단의 패배로 끝납니다.


이 역사적인 인공지능과 인간 간의 바둑 매치가 4:1이라는 극적인 스코어로 마무리된 후, 여러 언론, 미디어, 전문가들이 이 매치의 의미에 대해 매우 다양한 의견을 앞다투어 내어놓았고, 지금까지도 종종 인구에 회자되는, 인공지능 발전의 역사에 기록될 사건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세돌 9단으로부터 배운, 인공지능을 대하는 오늘의 태도


그 이후에 우연한 기회에 넷플릭스에서 '알파고'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차분히 다시 보면서 과연 인간인 이세돌 9단을 대상으로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바둑에서 승리한 것, 그리고 앞으로 인공지능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던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세돌 9단이 다섯 번째 대국까지 모두 마친 후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남긴 커멘트로부터였는데요.


알파고의 제 2 대국 37수 이후 생각에 잠긴 이세돌 9단


"(두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둔 37수를 보고 나서의 느낌은) 알파고는, 사실은 확률적 계산을 하고, 그냥 이기기 위한 머신에 불과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수를 보는 순간, '아니구나, 충분히 알파고도 창의적이다. 정말 바둑의 아름다운을 잘 표현한 수고 굉장히 창의적인 수였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굉장히 놀라운 점은, 우리가 생각했던, 바둑에 있어서의 창의성도 결국은 어느 정도의 틀 안에 있지 않았었나, 바둑계에 상당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고. 이번 경험을 통해서 조금 더 성숙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 정리해서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알파고와의 경기 이후) 바둑 두는 이유를 (새로이) 찾았다는 느낌, 더 나아가자면, 정말 바둑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잊지 못할 순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게임 결과 자체에 대한, 그리고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수많은 분석 기사들이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라는 틀 안에서 인간의 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관점의 기사를 양산해 내거나, 또는 '그래도 이세돌 9단의 1승은 아직 인공지능이 인간을 압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는 식의 대중을 위로하는 글을 내보내던 중에, 정작 이 대국의 '당사자'이자 '패배자'라고 할 수 있는 이세돌 9단의 말은 제게 큰 충격이자 자극으로 다가왔습니다.


과학기술의 역사에 대해 깊은 통찰은 없지만, 큰 흐름에서 보자면, 기술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각종 물리적, 정신적 제약 조건을 타개하면서 인류의 번영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 19세기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개발된 기술을 통해 인간의 물리력을 대체해 왔고, 20세기부터 현재까지 3차 산업혁명기와 그 이후 수많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물리력뿐 아니라 지력의 한계도 엄청난 확장을 이루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은 과거의 어떤 기술들과도 다른,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여겨져 왔던 예측, 판단, 창의성 등의 영역에서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시각,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바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997년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딥블루에 패배한 이후에도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없다'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었던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대상으로 승리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가르침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인간과 진정한 의미에서 '협업'할 수 있는 최초의 기술이 등장했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개리 카스파로프는 "좋은 사람과 기계가 힘을 합친다면 그것이 가장 최선의 조합이다 (a good human plus a machine is the best combination)"라고 말했습니다.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에서 알파고의 37수가 이세돌 9단의 78수를 이끌어내고, 다시 이세돌 9단으로 하여금 바둑이라는 게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지평을 고민하도록 한 것과 같은 경험이, 앞으로 인공지능과 함께 하게 될 여러분과 우리 모두에게도 주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P.S. 제 친구이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형섭 교수의 알파고 vs. 이세돌 9단 대국에 대한 글 (AI의 한 수, 인류가 나아갈 또 다른 시작점을 놓다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2017년 TED Talk에서 개리 카스파로프의 강연 (Don't fear intelligent machines. Work with them), 그리고 AlphaGo 다큐멘터리 도 한 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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