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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Sep 12. 2018

다정하게, 안녕히














다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무겁게 흘러가고 있을 뿐, 실제로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 먼 풍경 속에서 나는 반쯤 눈을 감고 빛으로 그려지는 찰나의 순간들을 포획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별일 없는 하루를 프레임 속에 하나씩 붙잡을 때, 이따금 그 사이에서 무언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사라지곤 했다.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를 지니고, 세상은 잠시 멈춰 선 시선 아래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저마다의 시간을 걷다가 문득 속도를 늦추며 멈출 때 두고온, 혹은 잊고 잃은 것들을 새삼 알아채는 것이다. 그저 익명 속에 숨어지내는 게 좋아서 무작정 떠나온, 그러나 어쩌면 나에게 여행은 내가 지나쳐온 풍경들을 되감는 작업인 셈이다. 

처음부터 다시 보기 위해서, 내 모든 후회를 다시 마주하고 최선으로 아프기 위해서. 



잊혀지지 않는 것, 그건 누구나 바라는 것라고. 나에게 머물고 싶었던 쓸쓸한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어야지. 오늘을 존재하다 내일은 사라질 순전한 것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지. 

다정하게, 안녕히. 



이 세상에서 조건 없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런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 그리고 한낮의 햇살 위로 부는 한줌 바람뿐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것들을 손에 꼭 쥔 채 다시 힘있게 가을을 기다리게 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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