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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Aug 08. 2023

일상의 조각에서 떠올리는 것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2023


늘 반복되는 하루구나 싶다가도,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문득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더듬 되짚어가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그런 순간들을 담은 영화가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이다. 영화 속에 내 추억도 함께하는 것만 같다.


1986년, '타케'는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늘 책상에서 물고기 그림을 그리곤 했고,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당시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엔 너무나도 쉬운 조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히사'는 그를 비웃지 않았고, 나서지는 못했을지라도 동조하지 않았다. 타케와 히사는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있었지만, 돌고래 여행을 계기로 절친이 된다.


둘이 돌고래를 보기 위해 떠난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알차고 값진 것이었을 것이다. 힘든 언덕을 넘고, 조금은 위험한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의 손길을 받고. 당일치기로 떠난 여행이었음에도 많은 걸 얻었지 않는가! 자전거와 배낭만 가진 채 떠난 여행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경험들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리고 위기 속에서 우정은 더 자라나는 법이다.


타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동생들과 살아가고 있었다. 여러 일을 하느라 바쁜 어머니가 타케를 잘 못 챙겨주었기에 옷도 대충 입고, 최대한 아껴가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타케는 히사를 정식으로 집에 초대한다. 그리고 이때, 히사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초밥을 해준다. 무려 '고등어통조림'으로 만든 초밥을! 늘 덤덤하고 어딘가 무심한 듯한 태도를 취하던 타케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에 대해 얘기했다. '초밥 요리사'가 꿈이라고. 히사는 그의 초밥을 먹고 극찬을 했으며, 아무렇지 않게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모든 표현을 끌어다 쓰는 칭찬보다도, 조금 투박할지라도 본마음을 가득 담은 칭찬이 더 와닿을 때가 있는 법이다.


둘의 우정이 계속 지속될 것만 같았지만, 타케의 작은 말 한마디로 관계가 조금 틀어졌다. 사실 워낙 곁을 내주지 않으려고 하는 타케의 모습을 히사도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쉽게 말하지 마'라는 말은... 상처받기에 딱인 말 아닌가... 히사는 개학 때까지 타케와 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타케의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타케의 동생이 먹고 싶다고 했던 컵케이크를, 일하던 마트의 동료 직원의 배려로 반값에 사들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사고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보호자를, 부모님을 모두 잃은 타케와 동생들은 친척들을 따라가게 된다. 개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점이었다. 히사는 계속 고민했다. 타케와의 마지막은 그 말을 들은 이후 놀지 않았던 것인데, 그럼에도 히사는 마지막을 잡으러 갔다.


정말 갖고 싶었던 로켓을 사기 위해 모았던 돈을 망설임 없이 고등어통조림을 사는 데에 썼다. 기차역에서 떠나기 직전인 타케를 만났다. 만나지 못할까 봐 보는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조마조마했다. '또 만나!'라고 말하는 히사와 타케의 모습이 왜 이렇게 희망적인지. 떠나서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그럼에도 둘의 인사는 왠지 희망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농장 아저씨도 한 상자 가득 귤을 들고 오셨다. 팔리지 않는 신 것만 모았다고 했지만, 삼촌이 먹으며 너무나도 달다고 했다. 둘의 타케를 위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히사가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친한 친구와 이별은 처음 겪는 일이었을 텐데, 어떻게 친구 앞에서 눈물을 삼켰을지 차마 짐작할 수도 없다. 그리고 조용히 히사를 기다려주었던 아버지의 모습도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첫 이별을 맞이한 아들을 기다려주는 아버지는 그 어떤 것보다 든든했을 것이다.


히사와 타케는 이후 마흔이 넘어 다시 만난다. 그 사이에도 계속 연락하고 있었으며, 둘의 우정이 굳건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또 만나자!'는 흩어질 말이 아니었다. 진짜 약속이었다! 히사는 첫 작품을 냈으며, 타케는 초밥집 주방장이 된다. 고등어통조림 초밥 메뉴도 역시 있다. 둘의 작은 고등어통조림 초밥에서 비롯된 많은 감정들은 모두 성장의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밑받침이었을 것이다. 왠지, 나도 고등어통조림 초밥을 먹고 싶어지는 오후다.


202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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