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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Jul 29. 2023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

「메타모르포제의 툇마루」, 2023


서점에서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요리 책을 찾으시던 할머니가 계산대에는 BL 만화책을 들고 오셨다. 그것도 무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장르의, 그리고 작가의 책을! 어떤가. <메타모르포제의 툇마루>의 시작 부분이다. 인생까지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도 예상하지 못하는 일은 늘 일어나기 십상이다.


'BL'은 음지의 문화로 치부되곤 한다. 통상적인 지상파, 케이블 채널에서도 BL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런 장르를 소재로 한 만화책을 할머니 유키가 거리낌 없이 집어 들다니!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꽤나 괜찮은 조합이지 않을까 싶어 진다. 오히려 모르고 봐야 진정한 이야기를 습득할 수 있는 책일 것이다. 그러니 이 둘의 만남은... 어쩌면 정말 만나야 했을 만남이지 않을까!


서점에서 만난 이 둘은 금세 BL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절친이 되었다. 같은 걸 좋아한다는 마음은 세대를 넘나들곤 한다. 우라라는 한 만화의 다음 연재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을 추천해 주고, 추천받은 유키는 그에 대한 후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잔잔했던 서로의 일상에 조금씩 활기가 더해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물론 둘의 우정은 BL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꿈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막막한 시기였던 우라라는 유키에게 질문을 받는다. '만화를 직접 그려 보고 싶지 않아요?'. 이 질문은 커지고 커져 우라라에게 만화가로서의 시작을 만들어주었다. 서툰 그림 실력에 짧은 분량이었을지라도, 만화 속에는 우라라와 유키의 순수하고 맑은 애정이 담겨 있다. 


이 만화는 단 3권 팔렸지만, 이들 중에는 BL 만화가가 있었다. 무려 둘의 접점을 만들어준 그 작가다! 슬럼프에 빠져 있던 작가는 이 만화를 읽고 슬럼프를 돌파한다. 이 만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누군가가 볼 때는 비록 허술한 초보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누군가는 이 마음을 느끼고 자신의 원동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둘의 우정은 시간이 흘러도 견고할 것이다. 영화 후반부 유키는 딸이 있는 타국으로 이사가게 된다.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그녀의 집에 우라라도, 인쇄소 사장도 들른다. 이 둘도 물론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보고 난 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라라와 유키는 새로운 BL 만화를 읽어나가고 있을까? 우라라는 신작을 발표했을까? 궁금해지는 오후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에는 한계도, 나이도 없다. 그저 내가 그걸 좋아한다는 걸 인지한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주저하며 흘려보냈던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제는 망설임 없이 잡아볼 때이다.


202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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