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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서 다시 글을 씁니다.

에필로그

by byspirit

2023년 5월, 봄의 끝자락에서 두 장의 건강검진 통보서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악성 종괴 의심’이라는 말은 나를 깊은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다.


그저 간단한 수술 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암 검진 결과에서 발견된<호르몬양성,허투음성B2기> 의 낯선 단어는 내 삶을 더욱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유방종양제거 수술에 이어 4차 항암 치료와 방사선치료(20회) 이후에도 항호르몬제를 5년 동안 복용 해야 한다. 3개월마다 난소억제(졸라덱스)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진단에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항암 치료 과정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병가를 내기 위해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해야 한다는 현실은 더욱 서글펐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싸움이었다. 홀로 서 있어야만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2024년 3월부터 당진시립도서관에서 시작한 1인 1책 에세이 글쓰기는 소소하지만 나에게 깊은 변화를 선물해 주었다. 글을 쓰며 나의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을 보게 되었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시민기자로서의 활동과 오마이뉴스에 채택 된 글들은 나만의 글쓰기를 더욱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도 기록을 남기고 글을 쓴다.


내가 쓴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모든 암환우들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삶은 서로를 위로하며 이어진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을 글로 쓰고 또 읽히는 순간 다시 힘을 얻는다.


항암 치료 과정을 통해 다사다난했던 삶에 대한 가치관은 새롭게 다듬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기준이 생겼다.


글쓰기는 나에게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내가 경험한 고통과 상처를 글로 풀어내며 조금씩 단단해졌다고.


수술을 받고 1차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연이어 재입원을 했다. 내 몸과 마음에 새겨진 전쟁의 흔적들을 기록하며 나는 소소한 일상으로 다시 걸어가고 있다.


때로는 힘들다는 말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칠흙 같은 날들이었지만, 글을 통해 슬픔 과 아픔은 ‘에세이 책’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나 자신을 위로하듯, 또 누군가의 상처에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지금도 글을 쓴다. 조금 더 괜찮은 나를 지금 잘 찾아가는 중이니까.


내가 남긴 흔적은 이 세상의 수많은 인구 중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흔적이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따뜻함을 나눠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 삶은 무엇보다 특별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나만의 에피소드를 기록한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암 투병의 생활을 보내며,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남겼다. 허점투성인 사람, 오롯이 나 자신을 다시금 발견하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일상의 순간들을 이 책에 담았다.


가지 않는 길,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희미해진다.


지금 내가 걸어온 이 길이, 암 투병으로 싸우고 있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2024년 10월1일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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