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라는 유일한 우리의 공감대
딸이 자랄수록 친정엄마의 마음을 더 헤아리게 되는 것처럼, 아들이 자랄수록 나는 시어머님의 마음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이것은 정말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다.
뒤엉킨 모자 관계에 대한 경계심을 늘 주의함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언젠가 저 멀리 닿지 않을 곳으로 떠나보낼 아이로 바라보니, 더 애틋하고 한번 더 쓰다듬게 되는 게 솔직한 나의 마음인 것 같다.
딸은 같은 여자라는 공감대가 있어 멀리 떠나도 늘 가까이에서 응원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지만, 그에 비해 아들은 가까이에 있어도 언젠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서 가는 것을 한 발치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지금 그를 향한 나의 애틋함의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아이들의 독립이 곧 육아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며 아이들의 독립 후 각자도생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항상 다짐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그 시간을 상상해 보았을 때 현실적으로 그것을 감당해 내는 것은 도리어 현재의 육아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과연 아이들을 각자의 삶으로
떠나보낼 수 있을까?
특히,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서게 될 아들을
나의 품에서 온전히 떠나보낼 수 있을까?
물론, 이 긴 육아의 시간을 지나가며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각자의 내력이 생길 것이라 믿지만, 나의 현재의 이 어설픈 엄마의 단계에서는 정말 어려운 문제다.
언제나 아이들에 대한 이런 긴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현재의 나와 남편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는 온전히 나의 부모로부터 떠나왔는가?
그리고 나의 남편은 어떠한가?
우리는 오롯이 우리의 가정으로 서 있는가?
이런 생각의 끝에 어느 날, 용기 내어 시어머님께 진심으로 고백했다.
어머님의 아들을 잘 키워주시고 저에게 온전히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윤후를 키워보니 품에 있어도 그리운 게 아들인데, 내색 한번 안 하시고 늘 아들을 한 가장으로 온전히 믿어주시고 또 아내의 몫으로 저에게 다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부디 계속해서 그렇게 우리를 독립된 가정으로 인정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부디 나도 나의 아들을 그렇게 누군가에게 떠나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론, 나는 시어머님의 진짜 속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어쩌면 어머님은 여전히 속으로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셨을지도, 며느리가 탐탁지 않고 아들이 못 미더워 늘 속마음을 애태우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들을 둔 나 역시 언젠가는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이기에, 그리고 어머님도 나도 비록 시간은 다르지만 우리의 방향은 같기에, 조금 이르지만 미리 공감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힘을 조금이라도 더 드리고 싶었다.
"(힘드시겠지만, 계속 그렇게 저희를 떠나보내주세요.)"라고.
"어머님, 아들은 나중에 어른되면 옆에서 재우고 싶어도 못 재운다고 해서 요즘 윤후를 옆에서 재울 때마다 얼마나 애틋한지 몰라요.
그렇게 생각하니 어머님도 그러지 않으실까,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에 시간 되면 유주아비만 어머님 댁으로 보낼 테니, 하룻밤 편하게 먹이고 재워주세요!"
라고 덧붙였는데, 어머님은 좋으신 건지, 싫으신 건지(?) 그저 웃고 지나가셨다.
아들을 둔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보낸 나의 러브사인이 부디 어머님께 전달되었길 바라며,
우리 고부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이자 공감대가 현재 우리 각자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