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페렉, 『사물들』, 김명숙 역, 웅진지식하우스, 2024.
조르주 페렉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작가다. 그는 소설가이면서 실험가였고,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구조에 집요하게 매달린 관찰자였으며, 동시에 20세기 프랑스 사회의 균열을 가장 섬세하게 기록한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었고, 전쟁과 상실의 기억 속에서 성장했다. 이러한 개인사는 그의 작품 전반에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다는, ‘부재’, ‘결핍’, ‘사라짐’이라는 형식으로 스며든다. 페렉은 말해지지 않은 것, 빠져 있는 것, 결여된 것에 주목하며 세계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은 훗날 그의 독특한 문학적 방법론으로 이어진다.
그는 울리포(Oulipo) 그룹의 일원으로서 제약 글쓰기, 형식 실험, 목록화 같은 실험적 기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그 형식적 실험은 결코 놀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페렉에게 형식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기능한다. 『실종』이라는 작품에서는 프랑스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알파벳 'e'를 쓰지 않고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들을 창작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매우 신선한 관점을 가진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특징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사물들』이다. 이 소설에서 페렉은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 대신, 한 젊은 커플의 생활 방식과 취향, 소비와 욕망을 따라간다. 그들의 삶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평범함 속에서 당대 사회의 구조와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물들』은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사회에 의해 형성되고, 어떻게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굳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텍스트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풍속 소설이 아니라, 소비사회와 주체 형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글로 읽힌다.
이 글에서는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중심으로,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그 욕망이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거나 고착시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을 매개로 작동하는 욕망의 구조에 주목하며,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어떤 접점을 갖는지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페렉이 묘사한 1960년대의 풍경은 과거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질문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작은 방 안에서, 제롬과 실비는 끊임없이 어떤 삶을 꿈꾼다. 더 나은 가구, 더 세련된 취향, 더 안정된 생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은 이처럼 “무언가를 추구해야만 하는(p.28)” 두 인물을 통해, 1960년대 소비사회가 개인의 욕망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욕망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내면의 충동이라기보다, 이미 주어진 기준을 따라가며 학습된 태도에 가깝다. 제롬과 실비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 욕망은 끝내 자신들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구축하려는 정체성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려 하지만, 그 정체성은 늘 공허하게 미끄러진다.
이들의 욕망은 철학자 르네 지라르가 말한 ‘모방 욕망’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욕망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직접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제3자의 매개를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사물들』 속에서 그 매개자는 주변 인물들이며, 동시에 도시 그 자체다. 제롬과 실비는 친구들과 “서로 닮아가며 취미와 취향을 공유(p.45)”하고, “서로의 레퍼토리가 똑같은 것”에 오히려 안도한다(pp.46–47). 그러면서도 은근한 경쟁과 질투 속에서 “서로에게 적대적인 쾌락(p.55)”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욕망을 확인하고, 동시에 서로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정체성은 자율적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을 거울처럼 반사한 결과인 것이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도시, 특히 파리라는 공간이다. 파리는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광고, 잡지, 진열장, 거리의 이미지들은 ‘현대 문명의 법칙’에 순응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은근한 굴욕감을 안긴다(p.53). 사회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p.73)”는 약속을 흘리며, 동시에 타인의 불행을 지워버림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만든다(p.75). 제롬과 실비는 이 세계 속에서 ‘완전한 동시대성(p.67)’을 누리며 안도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현대사회의 모범적인 소시민, 혹은 반영웅(anti-hero)이 된다. 이들은 체제에 저항하지도, 벗어나지도 못한 채 그 안에 편안히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 모방적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제롬과 실비는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상상과 도피로 보충하려 한다. “이상하리만치 달콤하게 부푼 몽상(p.26)” 속에서 자신들이 부자가 될 것이라 믿고(p.21),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현실을 “함께 잊고(pp.56–57)” 미래를 공상한다. 직업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막연히 다른 것(p.98)”을 꿈꾸고, 사회 문제 역시 “피상적(p.86)”으로만 바라본다. 이러한 태도는 실존주의적 의미에서의 자기기만에 가깝다. 현실의 불안을 직시하고 선택의 책임을 지기보다는, 상상과 환상 속에 자신을 머무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 도피는 결국 튀니지로의 이동으로 이어진다. 파리에서의 삶이 주는 피로와 불안을 피해 선택한 공간이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탈출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낯선 환경 속에서 그들은 더 깊은 고독에 빠진다. “그들은 지표를 상실했다(p.150)”는 문장은, 더 이상 자신을 비춰줄 비교의 기준과 모방의 대상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욕망의 좌표가 무너진 자리에는 방향 상실만 남는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 채(p.150)” 모든 것을 잃었다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이 지점에서 『사물들』은 욕망의 비극을 분명히 드러낸다. 제롬과 실비의 욕망은 처음부터 타인에 의해 구성된 것이었기에, 스스로를 지탱할 힘을 갖지 못한다. 그들이 겪는 공허는 우연한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인 결과다. 튀니지에서 마주한 ‘무(無)의 상태(p.143)’는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더 이상 욕망을 투사할 대상조차 잃은 상태를 가리킨다. 작품 전반에서 반복되는 ‘불확실성의 지옥(p.125)’이라는 표현은, 이들이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공허한 소비의 굴레를 정확히 짚는다.
제롬과 실비는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기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경로에 자신을 맡긴다. 그들은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직업을 선택(p.32)”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설계하기보다는 “삶을 기다린다(p.31)”. 시간이 흐르지만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정체된다. “삶 전체가 그들 안에서 멈춰버릴 것 같았다(p.140)”는 문장은, 이들의 정체성이 고착되는 순간을 잘 보여준다. 변화 없는 반복 속에서 욕망은 점점 비어가고, 행복은 잠깐의 안정감이나 위안으로 축소된다.
결국 『사물들』이 보여주는 것은 소비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허상의 정체성이다. 제롬과 실비는 삶을 ‘향유’하기보다 ‘소유’하려 하고, 그 결과 끝없이 결핍을 재생산하는 구조 안에 갇힌다. 페렉은 사물들로 가득 찬 세계를 통해,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자기기만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욕망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회가 제시한 모델을 반복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형성된 정체성의 실상 역시 공허 위에 세워진 구조물에 가깝다.
『사물들』은 결국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 욕망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은 1960년대의 젊은 커플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소비와 비교, 자기 연출이 일상이 된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페렉이 그려낸 허상의 욕망과 공허의 정체성은 특정 시대의 초상으로 한정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반복되는 '공허한 소비'의 생활을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지금도 여전히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불편할 만큼, 우리의 얼굴을 닮아 있다. 페렉은 직접적으로 소비사회를 비판하거나,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투사로서의 역할을 맡지 않는다. 그저 사회 구조를 그릴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수많은 사물들의 묘사로 숨이 막혀 가는 자기자신을 보면서, 이 사회 자체가 갖고 있는 허상의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무'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을 질식시키는 파리의 사물들이 엿보이는 대목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해, 파리를 끝도 없이 돌아다녔다. 골동품 가게마다 발을 멈췄다. 온종일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놀란 낯으로 지레 겁을 집어먹기도 했지만, 감히 그 같은 심경은 입에 담지도 못했다. 앞으로 자신들의 운명과 존재 이유, 행동을 결정지을 유치하고 맹목적인 추구 앞에서 이를 감히 제대로 응시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욕망의 크기에 압도당해, 눈앞에 펼쳐진 부와 주어진 풍요로움에 질식해갔다."(p.43)
추신: 프랑스어를 공부한 독자라면, 이 소설을 프랑스어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직설법 단순미래 시제, 조건법 시제 등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로 작가는 글의 분위기를 조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