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리, 잊힌 자리, 지켜야 할 자리

아니 에르노의 『자리(La Place』를 읽고

by BY SY
oD6lPI_-2jDck42lAgoDmJeqrds0qlmZtMWIcYMRmaxbU3Y0Z8E33A5DCjAdaTO79kufJh1C2YNG35WsBkE81U5YqQ8_A9Etyt84mKL_CiAzKiI9xhh7jovqsJB41qj3K4s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1940~),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La Place> - Annie Ernaux


언젠가 우리는 모두 부모의 삶을 이해하려 애쓰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는 여러 편의 책들로 부모의 삶을 '온전히' 저장하길 시도한다. 에르노의 《한 여자(Une Femme)》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Je Ne Suis Pas Sortie De Ma Nuit)》를 읽고 그녀의 어머니를 기록으로나마 간직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내게 큰 여운을 남겼다. 치매 환자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돌보며 죽음의 순간까지 ‘관찰 일기’의 형식으로 기록한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머니’라는 존재 자체에 대하여 온전히 기록하려고 한 《한 여자》까지, 작가는 ‘기억’에 매달린다. 그녀를 잉태한 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한 소녀 에르노, 그리고 성인이 되어 바뀌어버린 그녀의 사회적 ‘자리’, 그에 따른 어머니와의 미묘한 갈등까지 《한 여자》에서는 솔직하게 그려진다.


한편, 그 ‘자리’를 중심으로 빚은 불가피한 갈등에 대해서 에르노는 일종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떠안은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비롯된 그녀의 선택은 바로 글쓰기다.


“나는 9월에 태어날 거다.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내어놓기 위해서 그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가 보다(41쪽).”, “그녀는 받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109-110쪽).”


라며 에르노는 자신의 글을 어머니, 즉 자신을 세상으로 ‘내어놓은’ ‘한 여자’에게 바치고 있다. 에르노의 글이 울림을 주었던 지점은,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이 제삼자인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에르노는 스스로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라고 밝히며, 자신의 이야기가 단지 사적인 경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글쓰기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전기도, 물론 소설도 아니다.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p.110).”라는 문장에서 특히 자신의 글쓰기가 ‘전기’(개인에 매몰된 글쓰기)나 ‘소설’(허구의 글쓰기)로 불리기 싫어하는 에르노의 문학적 주관이 드러난다.


《남자의 자리(La Place)》에 대한 글인데 《한 여자》에 대한 서술이 이렇게 길었던 이유는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작가의 글쓰기 목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 여자》는 어머니의 일생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남자의 자리》는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기억 욕망이 드러난다. 특히 앞서 ‘자리’라고 언급되었던 사회적 계급 문제가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글쓰기의 주제가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글쓰기의 동기부터 살펴보자.


“일요일, 돌아가는 기차에서 아이가 얌전히 있도록 놀아주려 애를 썼다. 일등석의 승객들은 시끄러운 것과 아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불현듯 «나는 이제 정말 부르주아구나»라는 생각과 «너무 늦었다»라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나중에 첫 발령을 기다리며 여름을 보내면서 «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18쪽)”


어느 순간 그녀는 ‘부르주아’가 되어 버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아버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그녀와 그 사이의 ‘거리’는 한참 전부터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에르노는 ‘자리’의 이동을 겪은 것이다. 이어서 그녀는 말한다.



“나는 곧바로 그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간쯤에 이르자 거부감이 찾아왔다.

최근에서야 나는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적인 것,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 혹은 «감동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제스처, 취향, 아버지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나 역시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모아보려 한다.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단조로운 글이 자연스럽게 내게 온다. 내가 부모님께 중요한 소식을 말하기 위해 썼던 글과 같은 글이.(18-19쪽)”


이 대목에서 에르노의 글쓰기 방식과 아버지의 삶의 궤적이 드러난다. 에르노의 아버지는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삶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가 한계였던 것이다. 꾸며낸, 허구적 글쓰기 대신 그녀가 택한 방식은 결국 ‘단조로운 글’이다. 부모님께 급한 전보를 보낼 때의 글쓰기처럼, 동시에 최소한의 맥락을 갖춘,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밋밋한 글쓰기(écriture plate)’. 실제로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그녀의 아버지와 관련된 정보를 이런저런 사족을 붙이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어투로 풀어간다. 예컨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버지의 처지를 연민하기보다는, 그러한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요인에 주목한다. 결국 에르노는 밋밋한 문장으로 삶을 말함으로써, 오히려 감정과 수사에 가려지기 쉬운 피지배 계층의 진실한 삶을 드러낸다. 단조로움은 곧 그들의 언어였고, 그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사람들은 ‘마신다’ 또는 ‘먹는다’처럼 그냥 배운다고 말했다). 사람 얼굴이나 동물도 그렸다. 열두 살에는 초등 교육 수료증 준비반이 됐으나 할아버지는 그를 학교에서 빼내어 자신이 일하는 농장에 집어넣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더 이상 먹여 살릴 수는 없었다.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땐 모두가 그랬으니까.»(24쪽)”



이 인용구에서도 알 수 있듯, 아버지가 교육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에르노의 어떠한 감정 표현도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땐 모두가 그랬으니까’라는 아버지의 말을 빌려 ‘배우는 것을 좋아’해도 배움의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사회상을 아버지의 언어로써 객관적으로 그린다. 이렇게 에르노는 ‘생존의 자리’를 지킨 아버지의 삶을 사회적 배경과 함께 집요하게 추적해 나간다. 아버지가 읽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숭고한 교훈을 남긴 책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하고(24-25쪽) 1차 세계 대전으로 발생한 아버지의 직업의 변화를 그리기도 한다.



“제대 후에 그는 다시 농사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땅으로 먹고사는 일을 그렇게 불렀는데, 농사일(culture)이라는 단어가 가진 또 다른 의미, 정신적인 의미는 그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공장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전쟁이 끝나자 Y시에 산업화가 시작됐다. 아버지는 소년들과 열세 살 된 여자애들을 채용하는 끈 제조 공장에 들어갔다. 악천후를 피해서 할 수 있는 청결한 노동이었다. (...) 아버지는 건실했다. 그러니까 노동자치고 게으르지도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방탕한 생활을 즐기지도 않았다.(28-30쪽)”


아버지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농장의 인부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었지만, ‘먹고사는 문제’, 즉 ‘생존’을 위한 그의 치열한 삶의 모습은 이어진다. 끈 제조 공장에서 에르노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며, ‘우리 남편은 절대 노동자 같지 않았어(30쪽)’라는 일종의 자부심과 함께 공동의 자리를 만들어 간다. 결혼 생활을 하며 아버지는 ‘부모의 가난을 답습하지 않는 데 필요한 것, 즉 여자한테 홀려 넋을 빼놓지 말아야 함(32쪽)’을 배운다.


그들은 생활 기반을 다져가며 원하던 셋집도 얻게 되고 많은 것을 갖추어 간다. 이때 그들은 나름의 계급 이동을 겪게 되는데, 바로 가게를 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사기를 당하거나 모든 것을 다 잃고 다시 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을 두려워했다.(33쪽)” “그들이 장식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했을 뿐.(34쪽)” “끊임없이 원금을 까먹을까 봐 두려움을 느꼈다.(35쪽)” (본문의 볼드체는 원문의 고딕체 표기)



에르노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상대적으로 계급 이동, 혹은 ‘자리 이동’에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해, 아버지는 더욱 굳건하게 ‘먹고사는 문제’에 천착한, ‘비(非) 부르주아’로서의 자리와 언어를 지켰던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군대에 있을 때부터 가지 않게 됐다는 미사에 다시 보내기 위해, 아버지의 나쁜 버릇(말하자면 농부와 노동자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그와 전쟁을 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주문과 매출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그녀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여자, 그러니까 사회적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여자였다. 그는 어머니를 대단하다고 여겼지만, 어머니가 «배에서 가스가 샜네»라고 말할 때 어머니를 비웃기도 했다.(38쪽)”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했다. 노동자보다는 상인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 정유 공장에서 그는 반장으로 승진했다.(39쪽)”


이처럼 아버지는 더욱 굳건하게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하는,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는 ‘피지배자’로서의 자리, 동시에 노동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상인’으로서의 자리를 지키려 했다. 그것이 그의 계급의 위치이자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작품에서는 에르노의 자기 성찰적 면모가 계속 나타나기도 한다. 에르노는 ‘사실’과 ‘감정’ 사이 미끄러지는 기억을 붙들려 시도한다. 또한, 회고의 대상은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에르노는 ‘개인성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한 명의 노동계급 남성의 생애, 곧 집단적 이야기의 일부로서 그 내용을 확장한다. 자신이 느낀 감정보다는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려는 사회적 글쓰기를 추구했던 것이다.


이처럼 개인과 사회 사이에 서 있는 에르노의 글쓰기는 언어 선택에 대한 극도의 자의식으로 이어진다. 그녀가 ‘아버지의 언어’를 재현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태도는 곧 글쓰기에 대한 윤리 의식을 반영한다. 즉, ‘책임 있는 글쓰기’로 귀결된다. 특히나 계급적 현실을 증언한다는 점에 있어 그녀의 ‘밋밋한 글쓰기’는 무척이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글쓰기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글쓰기의 과정은 에르노에게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다가온다. 에르노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노동인 것이 아닐까. 다음 인용구들은 글쓰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에르노의 성찰이다.


“나는 천천히 쓰고 있다. 사실과 선택의 집합에서 한 인생을 잘 나타내는 실타래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면서, 조금씩 아버지만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글의 초안이 온통 자리를 차지하고, 생각이 혼자 뛰어다닌다. 반대로 기억의 장면들이 슬며시 미끄러져 들어오게 두면, 아버지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보인다. 그의 웃음, 그의 걸음걸이, 그가 내 손을 잡고 장터에 데려가고, 나는 놀이 기구를 두려워한다. 다른 이들과 나눴던 상황의 모든 조건들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는 매번 개인적이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온다.



물론 들었던 단어와 문장에 최대한 가깝게 써야 하는 이런 작업에서 글쓰기의 행복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때때로 고딕체로 강조했던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중의적인 의미를 나타내거나, 내가 모든 형식에서 거부했던 향수, 감동, 조롱을 공모하는 쾌락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단어와 문장이 아버지가 살았던 세계이자 내가 살았던 세계이기도 한 곳의 한계와 색깔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다.”(40쪽)


“가게 근처에는 여러 카페가 있었지만, 넓은 반경 안에 다른 식료품점은 없었다. 오랫동안 중심가는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고, 전쟁 전 좋았던 식료품점들은 누런 가건물에 임시로 자리를 옮겨간 상태였다. 그들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많은 표현들이 그렇듯이 이 표현 역시 내 어린 시절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나는 성찰하는 노력으로 이 표현 안에 내포된 위협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46쪽)


“글을 쓰며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그에 따른 소외를 고발하는 일 사이에서 좁다란 길을 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 행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살던 환경의 수치스러운 장벽들(«우리 집은 잘살지 못한다»는 인식)이기도 했으니까.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이 모순 사이에서 흔들리는 느낌이다.” (48쪽)


에르노는 어떤 언어를 선택했을까? 그녀가 고딕체로 표기한 아버지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언어에서 무엇이 보일까?



필요한 것은 모두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실컷 먹었고(그 증거로 정육점에서 고기를 일주일에 네 번 샀다), 우리가 생활하는 주방과 카페는 따뜻했다.” (50쪽)


“이 행복 속에는 간신히 얻게 된 여유로운 생활에 대한 긴장감이 있었다. 나는 팔이 네 개가 아니야.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나는 몸살도 걸어 다니면서 앓아야 한다니까! 등등, 매일 불평을 했다.


모든 것이 비싸기만 했던 세계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 «이 계집애는 아끼는 법이 없어!» 물건들을 신성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 분수를 알아야 해, 그가 늘 하던 말이다.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51-53쪽)


“강박 관념: «사람들은(이웃, 손님들, 모두)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 나는 지금 줄곧 «우리»라고 말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해 왔고, 언제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그만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 조부모의 유일한 언어는 사투리였다. «사투리의 생생함»과 서민적인 프랑스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프루스트는 프랑수아즈의 부정확한 표현들과 옛날 말들에 황홀해하며 그것을 강조했다. 그가 오직 사투리의 미학적인 것만을 중요시했던 것은 프랑수아즈가 그의 하녀이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그 자신도 입에서 이런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사투리는 낡고 추한 어떤 것이자 열등의 표식이었다. 그는 일부를 떨쳐 버렸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54-56쪽)


이 글쓰기에서 작가의 위치는 아버지의 언어를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있다. 이로써 작가는 독자에게 자발적 해석의 기회를 제공한다. 에르노가 선택한 언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의 아버지의 ‘자리’가 보이는 듯하다. ‘낡고 추한 어떤 것이자 열등의 표식’ 일뿐인 사투리를 벗어던진 아버지는 자신이 구사하는 표준어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카페에서나 가족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았지만, 말을 잘하는 사람을 만날 때에는 말하기를 주저한다. 실수로 방귀를 뀐 것만큼이나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는 잘못된 단어를 쓸 거라는 걱정.


“그렇지만 그는 «별 의미 없는» 거창한 문장이나 새로운 표현들을 매우 싫어했다. (...) 진보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전혀 확신이 없어도 자신이 듣거나 읽었던 말을 시험 삼아 써보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자신의 언어가 아닌 말들을 쓰는 것을 거부했다.(57쪽)”


그는 알았을까, 자신의 딸이 그가 머무르는 ‘자리’와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고상하게 예의를 차린 언어를 사용하는 ‘부르주아’가 될 것을. 이러한 자리의 이동을 겪은 에르노는 아버지와 그의 자리를 배신한 변절자(transfuge)로서 스스로 죄책감을 떠안게 되었던 것이고, 그의 자리를 온전히 여기는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공부는 평범한 삶과는 먼 것이었다. (...) 식사를 하던 중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움이 터지고는 했다. 그가 대화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내가 옳다고 믿었다. 나는 그가 음식을 먹는 태도 혹은 말하는 방식을 지적했다. 그에게 바캉스를 보내 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면 나 자신이 부끄러웠을 테지만, 그의 태도를 바꿔주려고 했던 것이라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딸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말했다. «책, 음악, 그런 건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내가 살아나는 데는 필요 없어.»”(74-75쪽)


“나는 처음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 달 동안 살았다. 젊고 자유로운 세계에서. 아버지는 늙었고 오그라들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내게 대학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78-79쪽)


계급을 넘어선 에르노가 돌이켜 본 아버지의 말이 인상 깊다.



“«아이고, 우리 딸 왔네.» «나 너무 배고파!» «그건 좋은 병이야. 먹고 싶은 걸 가져가라.» 적어도 나를 먹여 살린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우리는 오래전에, 내가 어렸을 때 했던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단지 그뿐이었다. 나는 그가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76쪽)


여전히 피지배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와 자리를 옮긴 딸과의 대화가 어려워졌다는 것도 에르노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에르노가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기 위해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무엇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떻게 지냈수?»라고 말하며, 내 친구들이 어쩔 수 없이 알아차리는 열등감을 드러냈다. 어느 날 그가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절대 널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다.»”(86쪽)


유년 시절의 자리를 벗어나, 다른 자리에서 생활하던 에르노는 더더욱 부모와의 만남이 드물어지고, 그녀의 남편과 자신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도 꺼린다.

“어머니는 집에 쉬러 오라고 편지를 썼다. 그들을 보러 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나는 혼자 갔다. 진짜 이유, 그들의 사위의 무관심이나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그와 나 사이의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입을 닫았다. 고학력자,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라서 늘 «빈정거리는» 말투를 쓰는 그가 어떻게 이 용감 무식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겠는가.”(89쪽)

또한, 에르노는 자신의 부모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을 때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느낀다.



“파리에서 출발한 기차에서 내리면 늘 어머니가 출구 옆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 멀리서, 나는 내 부모를 그들의 몸짓과 말, 영광스러운 몸으로부터 정제했다. 나는 그들이 «엘(그녀)»이라고 발음하는 대신에 «아»라고 발음하고, 큰 소리로 말하는 방식을 새롭게 들었다. 이제 내게 자연스러워진 그 «점잖은» 몸짓과 올바른 언어 없이 그들의 원래 모습 그대로를 다시 만나게 됐고,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89-90쪽)


이미 ‘나(에르노)’는 바뀌었다. 유년 시절, 당연하게 머물렀던 피지배자 계급의 자리에서 벗어나 지배계급의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다. 다른 자리에 안착한 그녀는 어떻게 예전 자신의 자리, 즉 아버지의 자리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에르노가 주목한 것은 ‘타인’이다. 타인의 말, 행동, 기록 등을 통해 비로소 개인성의 함정에서 벗어나 그녀가 복원하고자 하는 타인의 기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 색깔도, 가까운 우아즈강에 비친 포플러 나무도 내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대합실에서 앉아 지루해하거나, 아이들을 부르거나, 기차역 플랫폼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는 방식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았다. 나는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익명의 존재들이자 자신도 모르게 힘 혹은 굴욕의 징표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서 아버지가 살던 환경의 잊고 있던 현실을 되찾았다.”(93쪽)


아버지가 죽음의 순간과 가까워졌을 때도, 그는 삶에 대한 의지 혹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한 모습, 아버지로서 생의 자리에 굳건하게 있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낯선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매트리스를 다시 깔 거야, 이건 네 엄마가 이미 깔았고.» 그는 내게 매트리스를 보여 주기 위해 이불을 잡아당겼다. 그가 쓰러지고 나서 처음으로 주변에 있는 무언가에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그 순간을 떠올려보면, 나는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이 위독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말뿐이었지만, 세상에 매달리는 그의 노력이 그가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99쪽)


그렇게 에르노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에르노는 죽음의 순간을 절대 감정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작품에서의 서술은 “어머니는 계단을 돌자마자 조용히 말했다. «다 끝났다.»”(102쪽)라는 말뿐이다. 결국 이 작품은 에르노의 할머니, 할아버지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탄생부터 삶에 대한 의지를 끝까지 보인 아버지의 죽음까지, 아버지가 머물렀던 ‘자리’에 대해, 변절자로서의 딸의 입장으로 서술하였다. 계급 이동, 일종의 배신의 죄책감으로 비롯된 이 글쓰기는 어느 자리에 머무르게 될까. “내가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돌아갈 때, 그 문턱에 두고 가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일을 마쳤다.”(103쪽) 결국 아버지에 대한 에르노의 글쓰기는 단순한 기억 회상도, 일기장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때 자신의 자리이기도 한 아버지의 자리, 사회 속 주류가 아닌 피지배자의 자리를 기억하는 유산이었던 셈이다. 에르노가 택한 책의 제사(題辭)로 장 주네의 다음 구절이 인용된다. “나는 감히 이렇게 설명해 보려 한다. 글쓰기란 우리가 배신했을 때 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그와의 기억이 특징적이다. 다음 인용구는 피지배자로서의 ‘자리’에 머무르면서 겪은 사회 속 비가시화된 차별을 그린다.


“어느 일요일, 미사가 끝난 후, 열두 살이었던 나는 아버지와 함께 시청의 커다란 계단을 올랐다. 우리는 시립 도서관의 문을 찾았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이었다. 나는 너무 신이 나 있었다.”(103쪽)


평소 도서관이라고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버지, “분수를 알아야 해”(52쪽)라며 끊임없이 자리를 지키려던 아버지는 낯선 공간, ‘다른 자리’에 머무르는 자들의 공간인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것도 어린 딸과 함께.


“문 뒤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문을 밀었다. 그곳은 조용했다. 교회보다 더, 마룻바닥은 삐걱거렸고 무엇보다 그 오래되고 낯선 냄새가 있었다. 두 명의 남자가 서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높은 데스크에서 우리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내가 질문을 하는 동안 잠자코 있었다. «책을 빌리러 왔어요.» 둘 중의 한 남자가 바로 대답했다. «무슨 책을 원하십니까?» 우리는 집에서 원하는 책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비스킷 상표를 대듯 쉽게 책의 이름을 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우리 대신 내게는 콜롱바를, 아버지에게는 모파상의 가벼운 소설을 골라줬다. 우리는 도서관에 다시 가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반납 기한이 지난 책들을 돌려주러 갔을 것이다.”(103-104쪽)


이 대목에서 자리의 거리를 체감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그 거리는 시청 계단의 높이이자, 데스크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서의 시선이고,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두 사람의 정적이었다. 사서는 높은 자리에서 아버지와 어린 에르노의 자리를 내려다본다. 내려보는 시선의 압박 속 어떤 책을 원하는지를 묻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정적은 아버지와 딸에게 날카로운 공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사서가 골라준 ‘가벼운’ 책들만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기억이 에르노에게는 매우 무거웠던 모양이다. 책을 반납하러 다시 가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계급의 간극.


이러한 피지배 계급의 이야기는 잊히기 쉽다. 무언가가 우리에게 기억되려면 마땅히 기록돼야 하는데, 그 기록은 지배 계급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허나, 성인이 된 에르노는 교육받았고 지배계급의 자리로 이동했다. 더 이상 피지배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반면, 그녀의 아버지는 평생 ‘그의 자리’를 지켰다. 누구에게나 읽히기 어려웠던 그 자리를, 변절자인 딸로서 기어이 써 내려간 것이 아닐까.


책의 원제는 《La Place》, 정관사 ‘La’가 붙은 ‘자리’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어로 《남자의 자리》로 번역되었다. 아버지의 일생에 관한 글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말이 에르노가 글로써 지키려 한 ‘자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리’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든다.


에르노가 말한 ‘자리’는 단지 ‘남자’나 ‘아버지’의 자리가 아니다. 정관사 ‘La’에는 어떤 보편성과 대표성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한때 작가 자신의 자리였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자리일 수 있다. 그녀가 기록한 것은, 바로 그 누구에게나 있었고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자리에 대한 증언이다. 어느 자리든 증언될 만한 가치가 있음을 몸소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정말 단순하고 밋밋한 글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묵직했다. 《자리》를 읽으며 나는 문장들 사이, 고된 정제를 통해 마련된, 침묵하는 ‘의미’의 자리를 떠올린다. 그 침묵의 자리는 우리가 오늘 마주하고 있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윗글의 인용 쪽수는 다음 번역본을 기준으로 한다.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신유진 역, 1984BOOK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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