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격이 움직이는 원리와 투자 상식
반도체 업계는 근 몇 년 간 불황과 호황의 반복을 겪어 왔습니다. 모든 업종이 그렇지만 불황과 호황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은 가격입니다. 그런데 막연히 반도체 가격이 오를 거 같다는 얘기만 들으면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반도체의 가격은 어떤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지, 반도체 회사들은 어떻게 대응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래서 오늘은 반도체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연관이 깊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의 반도체 가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을 만드는 요인으로 수요와 공급을 말합니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당연히 수요와 공급이 반도체의 가격을 결정짓습니다.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수요 기업에는 자동차 회사, 전자제품 회사, IT 회사 등 엄청나게 많은 회사들이 속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5G, AI,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등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4차 산업을 뒷받침하는 모든 기술은 엄청난 연산량을 필요로 하고, 그에 따라 반도체 수요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죠. 다만 반도체가 점점 많이 필요하므로(=수요가 많다) 앞으로 반도체 가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반쪽짜리입니다. 반도체 수요 기업이 반도체 재고를 미리 쌓아둘 수 있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2020년 중반에는 반도체 수요는 많았으나 많은 회사들이 비축해둔 반도체가 많아 반도체 가격이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공급 측면에서 반도체 시장에는 소수의 공급자만이 존재한다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또한 반도체는 공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공급량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앞으로 잘 팔릴 것 같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공정을 바꾸는데 최소 1~2달이 걸리죠. 거기에다 반도체 공정을 새로 짓거나 늘리기 위해서는 몇 조 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반도체 회사들은 반도체 가격이 올라도 일반적으로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것에 미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괜히 공급량을 늘리는 모험을 하기에는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죠.
메모리 반도체에는 현물가와 고정가라는 두 종류의 가격이 있습니다. 현물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으로, 지금 당장 메모리 반도체 하나를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반면 고정가는 일종의 도매가 같은 개념으로, 회사 간 반도체를 거래할 때 쓰이는 가격이죠. 보통 회사 간 반도체 계약은 3개월마다 갱신되므로 고정가는 3개월마다 바뀐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90%는 고정가로 회사 간 계약에 의해 거래됩니다.
현물가가 지금 고정가보다 높으면 다음 분기 계약 때 반도체 회사가 고정가도 높이려고 하겠죠? 그래서 현물가는 고정가의 선행 지표가 됩니다. 보통 고정가는 2~3개월 전의 현물가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가끔 현물가는 오르는데 고정가는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은 많아지는데, 이 회사들이 실제로 반도체를 구매하진 않거나 미리 비축해둔 재고가 많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고정가가 반드시 현물가의 흐름을 따라가진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식 시장에는 코스피 지수, 코스닥 지수 같은 전체 시장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수(Index)가 있죠? 반도체 시장에서도 지수가 있습니다. DXI(DRAM eXchange Index)는 D램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만든 지수로, 전세계 주요 반도체 가격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지수입니다. DXI 지수는 최근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DXI 외에도 PHLX라 불리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있는데요. PHLX는 나스닥과 뉴욕증시에 상장된 반도체 종목 중 상위 30개 종목을 지수화했습니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수요 측면에서도, 공급 측면에서도 알면 알수록 정말 많은 요소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가격을 형성합니다. 정확한 가격 예측을 하기 그만큼 힘들지만 적어도 어떤 요소들이 반도체 가격에 영향을 주는지, 반도체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파악한다면 조금 더 예측에 도움이 되겠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연산량 폭증", "반도체 공급 조절의 어려움", "현물가와 고정가"라는 키워드를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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