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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thewind Oct 19. 2023

덜 불안한 통역사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고백은 어쩌면 소통하고 있다는 신호

한 가지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일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 부분이 있고, 나는 그대로인데 일이 변한 부분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 주변이 변하는 것이야 그런가 보다 하며 적응하려고 애쓰며 사는데, 내가 변하는 모습과 방향은 문득 깨달을 때마다 재미있다. 전에는 질색을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 것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통역사라는 역할을 맡아 일하게 된 첫 해에는 두려운 것이 많았다. 내가 와도 되는 곳일까,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이 정도면 부족함이 없을까, 나의 언어 실력은 충분할까, 내가 이해한 것이 맞을까, 실수는 없었을까,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을까, 차림새는 자리에 어울리게 하고 온 걸까, 수많은 의문이 쉼 없이 끝도 없이 떠올랐다. 그게 뭐든 완벽하게 증명해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인정받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통역 중에 이런 말을 들으면 당황하기도 했다. “지금 하신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지금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  내가 통역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걸까? 방금 통역한 부분을 한 번 더 해야 하나? 초보 통역사였을 때는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연차가 쌓이고 경험과 여유가 생기면서 요즘엔 이 말을 들으면 그렇게 반갑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입니다, 이런 심정일 때도 있고, 아 그러셨군요, 네 그럼 연사분께 확인 요청을 해보겠습니다, 이런 마음일 때도 있다. 


십 년 전에는 이 질문에서 나를 향한 의심을 들었고, 내 안의 불안이 그에 호응했다. 이미 불안에게 마음을 점령당한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통역사를 향한 신뢰, 소통에 대한 강한 의지, 상대에 대한 믿음, 다시 설명해 줄 거라는 기대가 들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고 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통역을 이어 가면 상대방은 흔쾌히 같은 내용을 다시 설명해 주거나, 다른 사례를 들어 한층 풍부하고 이해하기 쉬운 답변을 해주기도 한다. 자신의 이전 설명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사과로 답변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질문을 흔들림 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된 후에야 알게 된 점인데, 실제로 의심이나 공격의 의도가 있었더라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것이 대개의 경우 최선의 방식이었다. 통역사를 고용할 정도로 원활한 소통이 중요한 모임이라면 더욱 그랬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더라도 서로 이해가 부족하거나 소통에 오류가 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한 번 말해서는 못 알아듣는 사람부터, 개떡같이 말하는 사람, 찰떡처럼 알아듣는 사람, 찰떡처럼 말했는데 개떡처럼 알아듣는 사람까지, 한 언어 안에서도 소통의 능숙도는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물며 참석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두 언어를 연결해 주는 일을 외부에서 고용한 사람에게 맡긴 경우, 그 소통이 쉬울 리 없다.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 다시 설명해 달라는 요청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고,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상황에서는 자주 들리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신호인 것이다. 그렇게 두려운 말은 반가운 말이 되었고, 나는 덜 불안한 통역사가 되었다. 


월간 에세이 통권 436 (2023. 8.)


일기는 오래 썼지만 원고를 청탁 받아 글을 써본 건 처음이다. 2023년 8월 [월간 에세이]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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