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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Mar 04. 2022

행사 중인 마트에 가다니-

 점심은 청국장을 먹고 싶어서 굳이 굳이 옛 직장이 있던 동네엘 찾아갔다. 그 동네 두부집에서 먹었던 청국장이 기가 막혔었다. 슬슬 운전해서 주차를 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예전엔 사람이 너무 많아 옆에 대기실을 두고 번호표를 받아 입장하던 집이었는데, 식사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앉아있는 사람이 듬성듬성 많지 않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청국장과 손두부를 주문하고 뚝딱 한 그릇을 비워냈다. 밥 먹는 시간보다 여기까지 온 시간이 더 길어 민망할 지경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다시 돌아가기 아쉬워 현대인의 삼림욕이라고 불리는 마트 쇼핑(읭?)을 잠깐 하기로.


 사야 할 건 자동차 용품 몇 개. 대단한 쇼핑을 할 필요는 없지만, 매번 가는 대형마트에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게 불만이었다. 브랜드가 다른 대형마트엔 좀 다른 상품이 있겠지 싶어 겸사겸사 매장으로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계산대 앞에 늘어서 있는 사람들. 전쟁 준비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카트 위엔 물건들이 쌓여있다. 방송으론 계산대가 밀려있으니 천천히 쇼핑하라는 말이 반복되고, 줄은 저어기 식품코너까지 늘어서 있다.


 - 줄 장난 아닌데? 그냥 가자.

 -... 설마, 우리 나갈 때까지 그러겠어? 무슨 타임 세일이라도 한 모양이지.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하자. 우리 나갈 때쯤엔 괜찮아질 거야.


 타임 세일이 아니라 종일 세일이라는 것을 안 건 카트에 몇 개의 물건을 넣고 나서부터다. 카트를 밀고 슥슥 지나다 보면 코너 하나가 텅 비어있는 광경이 종종 목격되었다. 닭강정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선반도 텅 비었고, 매대에 쌓여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면도 5개들이 팩이 2-3개 정도 굴러다닐 뿐 비어있다. 거대한 무리가 휩쓸고 지나간 것만 같은 황폐함이 마트 곳곳에 남아있었다. 지금 난 ... 뭔가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신라면 한 봉지를 카트에 넣었다. 인당 2개까지밖에 구매가 안 되는 품절템이다. 난 이성이 있고, 라면을 좋아하지 않으니 1개만 사면 된다. 식빵은 하나 사려고 했으니까 카트에 넣고 옆 냉장고를 보니 사람들이 몰려있다. 뭔데? 하고 슬쩍 다가가 확인하니 50% 할인 중인 빵들이 비워지는 중이다. 단팥빵 세트, 크루아상 세트가 속속 사람들의 손을 타고 카트에 실린다. 내가 지금 식빵 살 때가 아닌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내가 살 빵을 다시 살핀다. 옆에서 들려오는 호군의 한마디. 생크림 모카빵 괜찮네. 이거 해. 그래? 호군이 좋으면 나도 좋아! 하고 얼른 나도 하나 집어넣는다. 그렇게 몽쉘통통을 사고 방울토마토를 샀다. 


 열심히 마트 안을 돌아다녔는데도 계산대 줄은 그대로다. 호군을 먼저 계산대로 보내고 난 다시 마트 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코너를 돌며 이리저리 구경하다 발견한 파스타 코너. 얼마 전 동네 마트에서 사 먹었던 파스타 소스가 맛있어서 똑같은 게 있나 하고 가서 확인하니 내가 산 가격의 2배다. 와우- 내가 샀을 때도 세일이라고 해서 좀 저렴하게 산 편이지만 정말 저 용량에 가격이 5,000원이 넘는다고? 옆에서 행사 중인 파스타 소스는 용량이 2배인데 가격은 같다. 심지어 1+1 행사 중. 갑자기 머리가 띵하다. 


 내가 지금 생각 없이 카트에 넣은 물건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행사하는 상품들은 정말, 확실히 저렴했다. 5개들이 라면 한 팩이 2,500원이었고, 몽쉘통통 6개입 2,590원인데 1+1이니 한 박스에 1,300원꼴이면 정말 저렴한 거지. 그런데 다른 건? 행사 상품이 아니라 내가 필요해서 산 청양고추, 치즈, 자동차용품들은 정말 적당한 가격인 건가? 미끼상품들에 홀려 내가 원래 사려고 했던 상품들에 돈을 더 지불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전화벨이 울리고, 호군이 말한다. 나 계산해. 빨리 와.


 계산대 쪽엔 카트와 사람으로 꽉 차있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비어있는 쪽으로 돌아 겨우 계산대에 도착했다. 하나씩 찍히는 상품들의 가격을 모니터로 확인한다. 청양고추 1,990원?! 원래 얼마지? 한번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니 가격 하나하나가 다 수상하게만 보인다. 계산대 앞에 서서 저 이건 안 살래요! 하고 물건을 뺄 용기도 없으면서 모니터만 노려보는 사람을 보았다면 그건 나입니다. (...) 물건을 정리해 가방에 넣은 뒤 휴대폰을 열어 파스타 소스 가격을 검색했다. 평균 3,500원 정도. 이건 좀 심했다.


 마트마다 사정 다르고 상황 다르고 가격 정책이 다르니 어떤 상품은 비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할인한다고 정신 못 차리고 필요한지 먹을 건지 생각하지 않고 카트에 때려 넣는 나다. 이렇게 구매한 상품 중에서 내가 이번 주에 뭘 만들어 먹을 수 있나. 일관성 없는 쇼핑리스트와 할인상품에 눈이 멀어 묻지 마 쇼핑을 한 내가 한심할 뿐. 한심 한 건 한심 한 거고 뭘 이렇게 잔뜩 사 온 날엔 집에 오자마자 바로 입에 넣어줘야 한다. 냉장고로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니, 제일 신선한 상태에서 생크림 모카빵을 한입. 우물거리며 호군과 내가 하나씩 먹으니 4개가 남는다. 이건 언제 먹지...? 냉동실, 냉동실로 가야겠다.


 결국은 패배한 묻지 마 쇼핑이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한 번씩 정신 차리는 거지- 위로해본다. 다 버리지 않고 맛있게 먹고 잘 사용하는 게 이번 달 나의 목표. 아직 3월은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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