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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보는 김집사

교회분들 보시면 안 되는데..

저는 가끔 귀신이 보입니다. 모태 신앙으로 심지어 외할아버지는 목사님으로 6·25 때 순교하신 골수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분도 받았는데, 왜 보이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가끔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헷갈릴 때도 있고, 그래, 이건 사탄이야 하고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귀신을 봤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릴 적, 무당집과 예배당 사이에 끼어있는 중간 한옥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무당집 외손녀가 제 절친이었고, 목사님 아들과 함께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공평하게 친가는 토속종교를 믿으셔서 보름에 한 번씩 우리 집에 할머니가 오셔서 고사를 지내셨고,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서 성가대를 했습니다. 왜 우리가 이런 얄궂은 신들의 전쟁에 끼어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회를 전혀 다니시지 않을 것 같던 친할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우리 집 장손인 제 남동생이 크게 다쳐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신이 겹쳐서 그런다며 기독교로 귀의하셨답니다. 할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신 후 할머니는 종교가 달라 함께 살 수 없던 큰아들을 본가로 들이셨습니다.

본가인 장충동은 성 베네딕토회 서울 분도 수도원 앞집이었고, 매일매일 신부님들의 기도와 찬미가 소리가 들리는 집에, 처음 기독교를 접하고, 불붙으신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거의 매일 목사님들이 오셔서 예배를 보시고, 안수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예언하는 권사님부터 귀신 쫓는 전도사님, 병을 고쳐주시는 목사님들까지 성경책에 쓰여 있는 것들 인용했다 뿐이지 할머니가 믿으시던 토속종교와 그다지  다를 것 없으신 분들이 뻔질나게 드나드셨습니다. 가끔은 귀신을 쫓는다며 퇴마 기도를 하시는데 옛날 옆집 무당집에서 가끔 보이던 까만 아저씨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나에게만 보이곤 했으니, 저는 어릴 적부터 귀신과 무척 가까이 지냈던 듯합니다. 특별히 은혜를 받아 방언이나 전도를 하는 할렐루야 키드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들이 대학 때 심심풀이로 점을 보러 가자 할 때 함께 갈 용기도 없이 그저 그렇게 이름만 기독교인으로 성장해서 집사까지 된 제가, 처음으로 귀신을 본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게 해 준 것은 약 20여 년 전, 성인이 된 후 처음 귀신을 본 후였습니다.



    

목욕탕 위 오피스텔: 나의 첫 스튜디오

 외국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서울에 귀국해서 입시 선생님으로 한참 이름을 날릴 때, 저는 공중목욕탕이 지하실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에서 개인지도를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오피스텔은 주거가 아닌 사무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기에, 제가 개인지도를 시작하는 오후 5시 즈음에는 많은 사무실이 일을 마무리하고, 제가 개인지도를 끝나는 10~11시쯤이면 저밖에 없는 데다가 복도 불까지 꺼져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저도 연주할 일들이 많아, 개인지도가 끝나고 연습을 하고 스튜디오를 나오곤 했습니다. 바이올린 교습을 하였기에 커다란 거울이 있어 거울 앞에서 제 연습을 하곤 했는데, 가끔 오싹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뭐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몇 년을 그 스튜디오에서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또 성과를 내서 이름도 날리고 학생들도 많아지고 하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개인지도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전 시간에 개인지도 한 학생이 거울 속에서 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무섭다 싶은 학생이었는데, 아, 내가 그 학생 가르치는 게 너무 힘이 들었구나 하고 가려는데, 갑자기 거울 속의 그 학생이 저를 보고 씩 웃는 것 같더니, 갑자기 옷이 까만색으로 변하는 겁니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도 저는 알았습니다. 거울 속의 귀신이 나를 해하려는 귀신은 아니라는 것을. 저를 오라고 부르거나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목욕탕 위 오피스텔이라 물 나오는 곳에 귀신하고 돈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선배들이 제 스튜디오를 와보고는 하는데, 어휴, 돈도 좋지만, 기분이 섬찟하더라고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내가 거울 속에 본 학생의 집안은 토속신앙을 맹신하는 집이라, 제가 입시를 담당하고 있으니, 저 몰래 제 스튜디오 한쪽 구석에 부적을 살짝 숨겨놓았다는 것을. 부적 덕인지, 그 학생은 원하는 대학을 아슬아슬 합격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털어놓더군요. 그래도 저는 얼마나 놀랐는지, 당장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야 말았습니다.     

내가 살던 아파트

 제가 성인이 되어 두 번째로 귀신과 만난 것은 제가 바이올린을 배우던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남편은 출장 중이고, 딸아이는 외갓집에 갔기에 혼자 집에 있던 제가 잠을 청하는데, 침실과 화장실로 통하는 작은 통로에서 저는 귀신의 눈이 보였습니다. 어릴 적, 무당집 외손녀에게 까만 아저씨는 봐도 눈은 보면 안 된다고, 데리고 도망간다고 수없이 들었던 터라, 귀신과 눈이 마주친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안방 침실과 화장실로 가는 통로에 서 있던 귀신은 한동안 움직이지도, 가지도 않고 제 시선을 따라다녔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던 그 귀신은 제가 꼼짝도 못 하는 사이 사라졌는지, 아니면 제가 실신을 했는지,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습니다. 가끔 뭐가 휙 지나가는 느낌이라던지, 아니면 사람 위에 까만 물체가 얹혀 다니는 것을 보고도 그저 주기도문을 외우고 모르는 척하고 지나다니던 제게도 이번 귀신은 좀 무섭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굉장히 지쳐 있었던 때이기도 하지만, 그 귀신을 본 후부터는 어쩌면 그렇게 문틀만 보면 목매달고 죽어있는 제가 보이는지, 수면제도 먹어보고, 술도 먹어보고, 오만가지 방법을 써도 자꾸 죽음이 저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이유도 모르고 헤매고 있을 즈음, 저희 친정어머니께서 갑자기 제 딸을 데리러 다니기가 너무 힘드시다며, 일을 그만두든지 아니면 친정 부모님과 합가를 하라고 하시더니만, 저희가 살던 집은 그냥 비워둔 채, 저희가 본의 아니게 친정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무슨 이상한 느낌을 받으셨는지, 아니면 그저 고생하는 딸이 보기 힘들어서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저는 기도와 성령으로 다져진 분도 회관 앞집, 가톨릭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친정살이가 편해서 그런지, 아니면 귀신 하나가 우리 집과 앞집의 하나님을 보고 놀라서 도망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에 저는 편안해져 갔습니다.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

 4-5년 전, 저는 귀신을 대구에서 서울로 이송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저는 당시 어깨의 회전근개 파열로 수술을 받고 서양 음악사 강의를 하러 대구로 매주 다닐 때였습니다. 늘 KTX를 이용했는데, 왠지, 그날은 시간도 좀 남고, 잠도 좀 자고 싶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분명히 우등고속버스를 타고 눈을 좀 붙였다가 일어났는데, 까만 모자에 까만 옷을 입으신 아주머니가 제 자리 앞의 손잡이를 잡고서 있는 겁니다. 날도 어둑어둑하고 버스에 불도 꺼져있고, 뭐, 앞사람이 잠깐 다리 아파 일어섰나 보다 하고 또 잠을 청했는데, 계속 서 있더라고요. 제가 아, 이게 실체가 아닌 귀신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저는 제 사무실에 도착해 있더라고요. 사무실에 들어가 불을 켜니까 갑자기 무언가가 저보다 먼저 사무실에 들어가더라고요. 아, 귀신인 줄 알았으면 아래층 편의점에서 음료수라도 사서 떨구고 오는 건데 하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더군요. 예전에. 친정아버지가 상갓집 가시면 꼭 귀신 쫓고 오신다고 뭘 사서 들어오시곤 했거든요. 여하간, 시간에 맞추어 학생이 오고 저는 수업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그 귀신 기억을 지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경연대회에 나가 3등이나 하면 다행이겠다 했던 학생이 1등을 한 거예요. 그때도 저는 대구에서 제가 모셔온 귀신과 결부를 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사무실에서 가르친 학생들이 전부 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겁니다. 그러고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아! 그는 착한 귀신이셨구나. 아마 고속버스터미널에 뭐 필요한 게 있어서 절 골라 같이 오시고는 고맙다고 좋은 기를 주시고 가신 건가 할 정도로 학생들은 승긍장구 했습니다. 지금은 심지어 그 사무실을 쓰지 않는데도, 그날 개인지도를 한 학생은 지금까지도 어디든 나가면 1등이니, 사무실이 아니라 그 학생한테 기를 불어넣었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지금은 천국 간 남편이 귀신으로라도 옆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영발이 떨어졌는지 전혀 안 보이네요. 저는 귀신을 믿냐고요? 물론 봤으니까 믿지요. 하지만, 귀신이 있다 해도 누구를 해하거나 흥하게 하는 능력은 절대 없는 것을 알고 믿습니다. 김 집사가 아니 믿으면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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