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Mourning Nights:천일 애화

천일의 눈물

어릴 적,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같은 동화를 읽으며 문만 보면 "열려라 참깨"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들으며 언젠가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 보리라 라는 다짐을 하던 때도 있었지요.

이 모든 것이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동방의 전설에서 비롯돼었다는 것을 알고는 언젠가는 나도 세헤라자데 같은 현명한 왕비가 되어 천일동안의 이야기를 들여주고파 이야기보따리를 차곡차곡 쌓아놓기도 했었지요…. 그가 떠나기 전에는…




남편이 심장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저는 학을 접었었습니다.

종이학 천마리만 접는다면, 남편의 병이 낫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는, 천마리 학을 채 접지 못한 저를 두고 떠나갔습니다.

2년을 투병하고 떠난 남편을 보낸 지 2년 하고도 반이나 지나갔습니다.

꿈에 보이지 않아야 망자가 고이 잠들 수 있다는데 아직도 제 꿈에는 그가 살아 돌아옵니다.

마치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생생하게 꿈속에 살아있는 남편은 아침이면 햇살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진정 그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아빠를 보내고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는 친구와 연인이 된 딸아이의 기념일은 아빠를 보낸 닷새 후입니다.

여느 연인들처럼 100일, 200일을 기념하는 딸아이 덕에 저는 남편을 보낸 105일, 205일을 알아갑니다.

얼마 전, 900일을 기념하는 딸아이 커플을 보며 이제 95일만 지나 1000일이 지나가면 눈물이 멈추게 해달라고 마움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제가 지난 900 여일을 매일 울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다는 것을….

그가 그리워 울고, 야속해 울고, 불쌍해 울고… 눈물은 진짜 마르지 않더군요.








저와 남편은 죽고 못 사는 다정한 커플이기보다는 서로의 일을 존중하고 같은 쪽을 향해 걸어가는 파트너 같은 부부였습니다.

정확하고 거침없던 남편의 성격이 힘이 들어 한동안 도망가려 애를 써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남편으로서의 그는 힘들었어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분야에서 만큼은 으뜸인 그를 저는 존경했습니다.

그 자리까지 오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는 몰라도 조금은 알았기에, 1년에 30주를 출장을 다녀도, 결혼기념일 선물로 윔블던 테니스장에서 주은 반지를 건네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조금 바가지를 긁을걸 그랬나 봅니다.

그래서 출장을 조금  다녔다면, 가족들과 조금  시간을 같이 보냈더라면, 그가 그런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로 밤을 꼴딱 새운 날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떠났고, 저는 그와 함께 했던 날들보다 훨씬 많은 날들을 홀로 후회하고 슬퍼하며 채워가야 할 테니까요.






가슴이 미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저는  뜻을 알아버렸습니다.

제가 혼자 남아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시간을 홀로 외로이 보내며 익혔던 지식과 기술들을, 자신이 품었던 뜻을 이루지도 못한  떠나버린 그의 인생이 억울해 가승미 미어터집니다.

"조금만"  열심히,  성실하게,  똑바로 살고 가도 됐을 인생을 너무도 짧고 굵게 살다  그의 삶이 아쉬워 흐르는 눈물이 강이 되네요.




907일을 울었습니다.

오늘 밤도 울어야 하니 908일째네요. 처음에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지만 이제는 가슴으로 웁니다.

  요즘의 저는 웃어도 울고 있고, 아무렇지 않은  찢어지는 가슴을 숨기고 다닙니다.

세헤라자데 왕비가 천 개의 이야기를 준비해서 사형을 면하고 왕비가 된 것처럼, 저도 천일을 울고 나면 니비가 되어 그에게 날아갈 수 있을까요?

이제 남은 생은 그에게 갈 날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도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동화처럼 그가 저에게 다시 돌아올 수는 없겠지요?





천일이 지나도, 천일이 10번을 지나 가도, 아니 100번을 지나가도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가슴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터질  같기에, 슬픔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잊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저 세월에 저를 맡긴  하루  하루를 힘겹게 견디고 있습니다.

그가 있을 때는 그리도 짧던 24시간이 , 그가 가고 나니 모든 것이 슬로 모션으로 10배는 느리게 흘러갑니다.

이번 생에는 10000일 남짓밖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를 다시 만나면 그 2배, 3배, 아니, 10배를 함께 할 수 있겠지요?


작가의 이전글 귀신 보는 김집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