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에게...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을 합니다. 3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 가족이라고는 나와 딸 단둘인데, 그 딸이 시집을 갑니다. 처음에는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딸의 결혼을 준비했는데, 막상 결혼식이 다가오니 섭섭하고 서운해지는 건 왤까요? 딸아이의 웨딩드레스 마지막 가봉에 저는 딸아이에게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20여 년 전, 딸아이를 낳은 저에게 남편이 선물한 진주목걸이였습니다. 목걸이를 하고 환하게 웃는 딸의 모습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 그 모습이 못내 가슴 아팠습니다.
결혼하는 신부에게 친정엄마가 진주목걸이를 선물하는 것은 서양의 풍습입니다. 서양에서 진주는 진주조개의 눈물로 만들어진 귀한 보석으로 여겨졌습니다. 천연진주로 비슷한 사이즈의 동그란 진주로만 만들어진 진주 목걸이는 무척 귀했답니다. 결혼식날, 신부의 어머니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에게 진주목걸이를 걸어주었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가며 딸을 키워 보석 같은 신부로 만들었듯이, 결혼을 하는 딸에게도 많은 어려움과 역경이 닥쳐도 참고 견디어 나가라는 의미라네요. 예전, 한국의 어머니들은 12폭 치마를 혼수로 보내며 그 치마가 다 닳도록 눈물을 닦아내며 시집살이를 참아내라고 했다는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결혼생활이 눈물을 흘리며 인내해야 했던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딸은 오렌지꽃 향기 나는 미국의 플로리다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플로리다주에 살던 저희 부부는, 말도 잘 통하지 않던 미국의 작은 병원에서 딸아이를 얻었습니다. 조리원은커녕 동양 식품점도 없어서 친정 엄마가 서울서 싸 오신 미역으로 3주의 산후조리를 마치고 첫 외출에, 남편은 3시간이나 떨어진 큰 도시의 백화점에 데리고 가 수고했다며 진주목걸이를 사주었습니다. 다이아 반지도 아니고 하필이면 노티 나게 진주라고 툴툴거리는 저에게 남편은 진주가 다 울었으니 울지 말라하더군요. 사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병원에서 진통을 하며 제대로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끙끙대던 제가 무척 안쓰러웠었나 봅니다. 한국보다는 서양의 문화가 더 익숙했던 남편은 그래서 진주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지금 같으면 가성비도 따지고, 이리저리 가격 비교도 해보며 바가지를 긁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우리는 플로리다의 한 보석집에서 당시 저희 사정에서는 큰돈을 주고 아무것도 모르며 진주를 사면서 그저 신이 났었습니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남편을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딸도 자기 짝을 따라 떠납니다. 딸에게 준 목걸이에는 남편 때문에, 딸 때문에 흘린 눈물도 있지만, 그간 우리 가족의 모든 세월이 묻어있습니다. 이제, 딸과 사위가 그 추억 위로 자신들의 행복을 입혀가며 더 값지고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 내겠지요. 그리고 또 그 딸이 그리고 또 그 딸이...
결혼식은 즐거운 일들로만 가득 차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이란 미래를 위한 행사이지 추억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빠가 아닌 삼촌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딸을 보고 울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가 하늘에서 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 할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참아보려 합니다.
딸!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