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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n 24. 2021

하늘이 머리 작아! 아빠 머리 커!


아이가 쓰던 모자가 작아져서 인터넷으로 새로운 걸 몇 개 더 주문했다. 부쩍 오리 인형이랑 잘 노는 아이를 위해 노오란 오리 모자를 샀는데 아뿔싸, 그것도 작아서 안 들어갔다. 밤톨처럼 작은 머리에 도토리처럼 더 작은 모자를 구겨 넣으려다 족족 실패하는 상황이 재미있었던 남편이 우리 하늘이 머리 크네~” 하며 웃었다. 옆에 있던 나도 그 모습이 귀여워 슬며시 미소 지었다.      


이때까진 그저 우리 가족 일상에 또 하나의 즐거운 에피소드가 생겼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배꼽을 잡고 웃는 남편을 물끄러미 보고 서있던 아이가 굉장히 노여운 표정을 지으며 하늘이 머리 작아아빠 머리 커!” 하고 소리치고는 내게 달려와 안겼을 때는 진짜 아뿔싸, 싶었다. 우리가 뭔가 실수했구나. 아이 마음을 다치게 했구나. 아무래도 아이는 남편의 목소리와 몸짓에서 놀리는 듯한 뉘앙스를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위로를 얻기 위해 내게 온 아이를 안고 겉으로는 열심히 사과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이가 비언어적인 표현도 충분히 느끼고 반응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특해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우와 우리 아이가 이제 정말 많이 컸네. 신기하다.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에게 상처를 준 일에 대해 성의 없이 변명했다. 지금도 당시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려보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아빠가 너를 놀리려던 것이 아니다. (놀린 게 맞다심지어 외모를 평가했다.) 그냥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런 거다. (이런 식의 변명은 최악이다좋아해서 괴롭히는 거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와아~ 우리 다른 모자 써볼까? (간단히 상황을 회피해 버렸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이에게(또는 타인에게) 하면 안 되는 행동을 아주 골고루 잘도 해놨다. 나보다 훨씬 너그럽고 긍정적인 아이가 금방 감정을 풀어주어 그날은 더 큰 충돌(?) 없이 잘 넘어갔지만, 이 일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내가 얼마나 부주의한지. 이미 알고 있는 육아 상식들이 실전에 적용되면 얼마나 쉽게 잊히는지. 내가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철렁하고, 점점 더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아이를 키울수록 턱없이 부족한 나 자신을 처절하게 목도한다. 이런 일이 한 번씩 있을 때마다 내가 과연 아이를 바르고 건강한 인간으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이 엄습한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아이는 나를 믿고 내 품에 안겨있으니 언제까지 자아비판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수도 없다. 그저 어제보다 눈곱만큼이라도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영차, 일어나 나아가야 한다. 아이는 이미 저만치 달려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부르고 있다.     


이때 우리는 한 걸음 나아가려는 노력과 더불어 너무 강박적으로 애쓰지 않으려는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내가 그저 평범하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시에 아이 또한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아이 덕분에 깨닫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나도 실수할 수 있는 거야나로 인해 아이가 상처받을 때도 있겠지만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나는 건 아니야     


내가 끊임없이 사랑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한아이는 언제든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자     


내가 그런 것처럼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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