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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n 24. 2021

무거우면 엄마가 들어


나와 아이는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비 오는 날의 피망카>라는 책을 읽는다.      


며칠째 비가 그치지 않던 어느 날, 집에서 혼자 놀던 박쥐 ‘모리’에게 개구리가 찾아온다. 비가 오면 날개가 젖어 날 수 없기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한다는 모리에게 개구리는 비에도 끄떡없는 피망으로 만든 자동차, ‘피망카’를 만들었으니 걱정 말고 나가서 놀자고 말한다. 모리는 그 말을 믿고 우비와 장화, 그리고 우산으로 중무장한 채 개구리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간다.      


피망카에는 이미 다른 친구들이 타서 모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망설이는 모리에게 친구들은 용기를 주고, 모리는 조심스레 피망카에 올라탄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친구들과 함께 숲속을 달리며 신나게 논다. 비가 그친 후에는 모두 우비를 벗어던지고 빗물 웅덩이에 첨벙첨벙 들어가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비가 쏟아지고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비를 피해 재빨리 개구리네 집으로 달려들어간다. 친구들을 뒤따라 달리던 모리는 비에 젖어 무거워진 날개 때문에 그만 넘어지고, 날개가 부러지고 만다.     

아이는 이 대목에서 어김없이 소리친다.     


무거우면 엄마가 들어!!!”     


평소에 “하늘이 무거우면 엄마가 들어줄까?”라는 말을 많이 했더니 아이 머릿속에 무거운 건 엄마가 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귀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한참을 웃었다. ‘요것 봐라? 너에게 난 짐꾼일 뿐인 거니?’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 멘트.. 너무 낯익은데?’하는 마음도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우리 아빠한테 지금도 거의 매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55년생이니까 벌써 예순일곱이다. 아빠가 맨날 ‘나도 곧 칠십이야.’ 이럴 때마다 속으로 ‘뭐래~’ 이랬는데 진짜 곧 칠십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차에 무거운 짐이 있으면 아빠에게 전화해서 들어달라고 한다. 엄마랑 같이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생각 보다 짐이 무거워지면 아빠한테 전화해서 들어달라고 한다.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이 좀 무겁다 싶어도 아빠한테 들어달라고 한다.      


거의 기억하는 평생 그래왔고, 가까이 살고 있는 지금도 틈만 나면 그러고 있다. 내 머릿속에도 무거운 건 아빠가 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거다. 알고보니 나름 대를 이어 전해지는 짐꾼 몰빵시키기 DNA(?)였던 거다.      


무거운 걸 들어주는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하다는 걸 안다. 저 작고 약한 아이에겐 무거운 것이 나에겐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내가 번쩍 들어줄 수 있다는 게 그저 기쁘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아이가 “무거우면 엄마가 들어!!!”하고 아이가 다급하게 외치면 “응 모리 날개도 엄마가 들어줄게!!!”하며 웃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아이의 충실한 짐꾼이 되어주려면 근육을 좀 늘려야겠다고. 하하하. 그래서 이제 우리 아빠도 그만 짐꾼 은퇴시켜 드려야겠다고.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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