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시코기의 자각

2018년 3월 27일 화요일

by 김별


멜빵바지의 끈을 늘리고 있다.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가려고 준비 중이다. 봄을 기념해서 새로 산 멜빵바지를 개시했는데, 입었더니 바지가 내 두 다리를 찢을 기세로 바짝 올라와 있다. 아..... 낑겨.....


'뭐지. 뭐가 문제지. 어쩌지. 수선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달음이 왔다. 아 옷은 멀쩡하구나. 허리가 너무 아래 있는 내 몸의 문제구나. 헤헿.

어깨끈을 최대한 늘려서 입으니 그제야 내 가랑이에 순풍이 불고 봄이 찾아왔다. 그래, 그런 거였어.


어릴 때는 짧은 다리와 긴 허리 때문에 별명도 많았다. 허리가 길어서 '요롱이' 다리가 짧아 '별시코기' 또는 '별스훈트' 뭐 이런 거. 그게 되게 콤플렉스라서 옷을 입을 때 허리 라인과 허벅지의 시작점이 드러나는 것을 피했다. 원피스 사랑해요, 치마는 추켜추켜추켜입고, 바지를 입을 땐 상의로 엉덩이를 가렷!


근데 나이가 드니 아우 다 귀찮지 뭐야. 내가 바지 입고 싶으면 입는 겨. 서른넷에 멜빵 땡기면 고 하는 겨.

회사 그만 다니고 싶으면 때려치우는 겨.

어차피 아무도 나한테 신경 안 쓴다규.

자세히 안 본다규.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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