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그 이후

잊을 수 없는 고통의 기억

by 별리

#1. 가만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던 시간_수술 후 당일


회복실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를 쉬게 해주고 있던 침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원실로 이동한 것이다.


1인실 505호를 배정받고 병실로 들어섰다.

1인실을 선택한 건 제왕절개가 매우 아프고 힘들 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여러 사람들 틈에서는 편하게 있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인실보다 금액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으나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1인실을 선택한 걸 참으로 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남편이 함께 있을 수 있었고, 나의 고통스러운 회복 기간 동안 원치 않는 소음을 듣지 않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원하는 시간에 불을 켜고 끄는 등 아주 사소하지만 개인적인 것들을 스트레스 없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박 6일을 함께한 병실


다시 돌아가서,

나는 505호 병실에 자리하고 있는 침대로 옮겨가야 했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나를 대신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그리고 남편의 팔힘이 나를 이동시켰다. 앞으로 퇴원하기 전까지 오랜 시간 내가 있을 침대에 안착했다. 그리고 나의 정신은 점차 또렷해지면서 배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반신 마취로 인해 다리에는 아직 감각이 없어 움직이려 노력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의 감각이 돌아오면 마취가 완전히 풀린 것이기 때문에 수술 후의 고통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마취가 풀리 기 전의 통증은 아직 견딜만했다.

간호사는 마취가 모두 풀리기 전에 압박 스타킹 착용을 권했다. 아프기 전에 미리 입어 두라고 말이다.

Cho는 출산 가방에서 압박 스타킹을 꺼내 나의 양다리에 하나씩 하나씩 신겨주었다.


내 배 위에는 모래주머니가 올라가 있었다. 회복실에서 올려두었던 것보다 훨씬 무거운.

커진 자궁을 눌러주면서 뱃속 장기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왼쪽 다리의 감각이 돌아오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오른쪽 다리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마취가 풀린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에게 매달려 있는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제왕절개 상처부위에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라고 하는 약에 고통을 줄여달라고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수술 첫날이었던 오늘은 저녁 8시까지 고개도 들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만 했고 차라리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상황을 다행이라고 느낄 만큼 누워만 있는 것도 아파왔다.

수술대에서 연결했던 소변줄이 있어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욕구는 들지 않았다.


저녁 8시.

배 위에 올려 두었던 모래주머니를 제거하기 위해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나에게 심호흡을 크게 하라고 했고, 내가 후-하며 숨을 내쉴 때 간호사는 재빨리 모래주머니를 내 배 위에서 들어 아래로 내려놓았다. 배가 아프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강하게 들었다. 압축되었던 사이다병의 마게 가 한꺼번에 터지듯.

하지만 이 또한 조금의 시간이 지나니 적응되었고, 밤새 병실을 왔다 갔다 하는 간호사에게 몸을 맡긴 채 수술 첫날밤을 보냈다.


#2. 아픔을 견뎌야 했던_수술 2일 차


오전 6시.

소변줄을 제거했다. 소변줄 제거에 대한 공포도 있었기에 아픔이 있는지 간호사에게 물었고 간호사는 아프지 않다는 간단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다행히 간호사의 말은 옳았다. 별 느낌 없이 소변줄은 제거되었고 오늘의 가장 큰 과제를 해내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걷기'가 그것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고 일어서기 까지. 세상 그 어떤 고통보다 큰 고통의 시간이었다. 혼자 일어날 수 없었고 남편과 간호조무사의 도움을 받아 아주 천천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간호조무사는 내가 병원 가운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도와주었다기보다 전적으로 입혀준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조무사의 말에 따라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뿐이었으니까.


옷을 갈아입고 조금은 깔끔한 상태가 되어 일어서기를 시도했다. 일어설 수 없었다.

상처부위가 말 그대로 불에 타는 것 같은 느낌. 몸도 떨려왔다. 바로 허리를 세울 수 없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허리를 세워 온전히 선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천천히의 시간.

천천히 병실을 나가 걷기 운동을 했다. Cho는 옆에서 보호자의 의무를 다 하고 있었다.


고통이 심하면 무통주사를 조금 더 많이 나오게 하는 버튼을 누르면 되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진통제 주사를 맞을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버튼을 눌러 약의 양을 많게 늘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같았으며 진통제 주사를 맞지는 않았다.

내가 입원한 층의 병실은 대부분이 1인실이었고, 2인실도 몇 개 있었다. 그리고 함께 상주하는 보호자는 남편들이었다. 우리처럼.

이미 이 고통의 시기를 지난 것 같은 몇 산모들이나 자연분만을 해서 분만 후 고통이 상대적으로 덜했을 산모들이 보였다. 부럽기도 했고, 그만큼 이 고통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식사를 할 때는 침대에 앉아 내 등을 받쳐줄 만큼 침대를 조정해 앉았다. 첫 식사는 죽이었고 그다음부터는 산모식이라며 밥과 반찬, 미역국이 제공되었다. 미역국은 매 끼니에 거르지 않고 나왔으나 그 종류는 매번 바뀌었다. 홍합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새우 미역국 등등으로.


식사를 하고 나서는 양치질을 하거나 소화를 시키기 위해 다시 걷기 운동에 참여했다. 한번 침대에서 일어나기까지 고통이 심했으므로 일어난 김에 화장실 볼 일과 운동을 함께 하려고 한 나의 잔꾀였으리라.

침대를 기준으로 그곳에 앉아 눕는 것. 다시 걸터앉아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듦 그 자체였다. 누워서 쉴 때에는 뱃속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기들에게 공간을 내어 주느라 위로 올라가 힘겹게 있었을 몸안의 장기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이.

뽀글뽀글하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분명 자기 자리를 찾는 장기들이 힘들어서 내는 소리라 느껴졌다.


걸을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정해진 시간에 신생아실 창문으로 아기를 볼 수 있었다. 출산 후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본 아기의 모습이 아니라 더 또렷한 상태로 아기를 마주 하는 첫 시간.

다복이 와 또복이를 보고 동시에 핸드폰을 들어 아기들의 모습을 담느라 나름 분주했으나 이는 남편의 몫으로 넘겼다. 나는 내 눈에 한 개라도 놓칠 새라 아이들의 바라보고 바라보고 가득 담았다. 그리고 연신 말했다. 예쁘다고.


#3. 새로운 일과가 추가되다_수술 3일 차


버튼을 누름으로 나의 통증을 완화시켜주던 무통주사의 약이 끝났다. 더 이상 버튼을 눌러도 나오지 않는 상황. 아프면 진동제 주사를 맞는 방법은 남아 있었다.

버튼에 의지할 수 없음에 아프지 않을까 약간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둘째 날 잠을 청했으며 삼일째 새벽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나기를 시도했을 때 나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알았다.

무통주사가 효력을 다했으니 너무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남편의 손을 잡고 겨우 일어났으나 거기까지 였다. 일어난 상태에서 허리를 잘 펼 수 없었고 어떤 단어로, 어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결국 간호사를 호출해 링거에 진통제를 주입하게 되었다.


약이 어느 정도 나를 진정시켜주었고 무사히 화장실에 다녀온 뒤 남은 잠을 청했다.

오전 6시. 수액을 내 몸에 넣어주던 링거가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틀 동안 내 옆에 있었던 바퀴 달린 성가신 짝꿍이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오전 7시. 수술 부위의 고통을 줄여주던 페인 버스터도 내 몸에서 떠나갔으며 상처 부위를 소독했다.

모든 안녕의 시원섭섭함과 동시에 내 몸에 주입되던 수액이 없어도 고통이 참아질지 걱정이 되었다.


"너무 아프면 어떻게 해요?"

"점심때부터 먹는 약으로 소화제와 진통제가 나올 거예요. 그래도 아프면 엉덩이 주사로 진통제 맞을 수 있어요"


간호사는 나의 질문과 같은 질문을 수십 번 들었다는 듯 너무 평온하고 쉽게 대답하였다.


자세를 바꾸거나 움직일 때에는 수술 부위가 불타는 느낌이 지속되었으나 어제 보다는 분명 짧아진 고통의 시간이라 믿었다. 걷기 운동은 계속되었다. 순간의 고통을 참아낸다면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날부터 새롭게 시작된 나의 일과가 있다면 바로 모유수유였다.

신생아실 안쪽에 마련된 수유실에서 3시간에 한 번씩 아가들에게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다.. 모유수유를 한다는 것보다 처음 아기들을 안아보고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있었던 것 같다. 작은 아기들을 잘 안을 수 있을지 걱정도 하면서 말이다.


손 소독을 마치고 수유쿠션을 허리에 착용한 뒤 자리에 앉아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내 첫째 아기 다복이가 간호사의 품에 안겨 나에게로 왔다. 2kg으로 작게 태어난 다복이. 작은 만큼 안기가 더 조심스러웠고, 내가 다복이를 안는 것까지만 해도 오늘의 목표는 완수한 느낌이었다. 아직 작고 힘이 없는 다복이에게 엄마 젓을 빨라는 어려운 과제를 주는 건 당치 않은 현실이었다.

연습 삼아 다복이를 안고 가슴에 대어보았지만 아직 초유도 나오지 않고 있던 터라 말 그대로 연습으로 끝이 났다. 그 대신 다복이를 보며 연신 이야기를 했다.


"우리 다복이, 너무 예쁜 다복이"


다복이를 안아본 뒤 또복이를 만날 차례가 되었다. 또복이는 2.7kg으로 다복이보다는 크게 태어났으며 이 무게는 단태아가 태어난 정도의 무게였다. 그래서 그런지 또복이는 다복이보다 안기가 수월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느낌도 잠시. 어떻게 방향을 바꿔 안아야 하는지, 어느 부분을 잡아야 하는지 어렵고 어려운 시간이었다.


"우리 또복이~또복이 코 자고 있어요?"


또복이에게도 이야기를 했다. 혼자만의 이야기였지만 너무 작고 소중한 아기들에게 무슨 말이든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늦은 오후쯤부터 초유(모유가 처음 나올 때)가 나오기 시작했고, 유축을 해야 했다. 유축기를 사용해 모유를 짜내고 짜낸 모유를 신생아실에 가져다주면 아기들이 엄마의 모유를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모유수유 연습과 유축이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기다렸고, 그 출발선에 선 나는 어떠한 준비도 없이 엄마의 길로 내달리고 있었다.


초유가 나오기 시작하다



이전 05화갑자기 만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