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회복되다
수술 4일째부터 퇴원하는 6일째 날까지 몸은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누워있는 방향을 바꾸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등 몸에 힘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상황이 생기면 상처부위를 중심으로 고통은 온몸으로 퍼져갔지만 그 고통을 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순간의 고통을 견뎌낸 다면 그다음에는 잔잔한 고통이 되었고 그 고통이 무뎌지는 건 순간이었다.
가슴에서 아기한테 밥을 주라는 신호의 모유가 나오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조금은 바빠진 병원 일상에도 적응되어가기 시작했다.
3, 6, 9, 12! 세 시간 텀으로 아기를 만나 모유수유 연습을 하고, 유축을 했으며, 유축한 모유를 신생아실에 다시 가져다주었다. 사실 세 시간 텀의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내진 못했지만 가능하면 지키려고 노력은 했다. 그리고 모유도 제법 잘 나와주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면 세 시간의 규칙을 지키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을 터.
Cho도 나의 출산으로 인해 출산휴가를 받게 되어병원 생활 동반자로 함께 있었다. 퇴원할 때까지 말이다. 항상 자신의 건강을 자만하며 병원 출입이 거의 없었던 그는 병원 생활이 꽤 답답했을 것이다. 사실 Cho는 크게 아프거나 다친 적이 없었고 입원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적어도 나와 결혼해 살아온 시간 동안 만이라도.
Cho는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 식사가 오면 그 식사를 내 침대 앞에 가지고 오는 일부터 시작해 필요한 내 물건을 내가 잡을 수 있는 공간까지 가지고 와 주었고, 사용한 유축기의 깔때기와 젖병을 소독하는 일까지 도맡았다.
보호자의 입장으로 1인실에 함께 상주하고 있기에 어떻게 보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Cho가 매우 고마웠고, 미안했다. 특히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넓은 1인실의 바닥이지만 푹신한 침대 매트는 아니기에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그리고 새벽에 종종 들어오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방문, 새벽에 유축을 해야 하는 나의 상황들이 Cho의 잠을 방해했을 것이다.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는 Cho의 잠 특성을 알고 있어서 그 안타까움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전체 중 일부는 Cho가 없이 혼자 보내기도 했다. Cho가 회사는 가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외출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혼자 병원 일상을 보낸 것이다. 그 시간이 그리 지루 하진 않았다.
세 시간의 규칙은 늘 나를 바쁘게 만들어 주었다.
병원에서의 6일째 아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기! 두 명의 아기를 데리고 조리원으로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아기를 잘 안지도 못하는 초보 엄마, 아빠였기에 아기들을 차에 태워 공간을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큰 과제처럼 다가왔다.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퇴원 전에는 다양한 절차가 남아있었다.
병원 원무팀에서 문자가 오면 수납을 해야 했고 수납 후에는 약을 받으러 가야 했으며 신생아실에 가서 아기 케어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병실에 펼쳐 놓았던 짐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생아실에서의 교육 후에는 아기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복이, 또복이 차례로 데리고 와 간호사는 아기들의 몸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특이점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가령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거나 태열이 올라와 있다는 사실 등. 더불어 우리 아기들은 체중이 적은 편에 속해 비타민을 처방받았었고 이 비타민을 먹이는 방법도 교육받았다. 모든 게 어려웠던 나는 간호사가 비타민 먹이는 것을 알려줄 때 핸드폰을 빠르게 꺼내 동영상을 작동시켰다. 간호사는 다복이에게 비타민을 먹였고, 또복이는 직접 먹여보라며 실습할 수 있는 시간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한 가지를 배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505호실. 나름 정들었던 병실에서 놓고 가는 물건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핀 뒤 그곳을 나왔다. 신생아실로 가서 준비한 아기들의 옷과 모자를 건넸고, 얼마 후 아기들은 병원에서 입던 옷이 아닌 귀여움이 가득 담긴 옷을 입고 간호사의 품에 안겨 나왔다. 귀여움도 잠시 나와 Cho는 아기들을 조리원까지 잘 데려갈 수 있을지 걱정 투성이었다. 이 걱정을 알았는지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렀고, 심장은 두근두근 떨려왔다.
다복이, 또복이 차례로 바구니 카시트에 앉혔고 Cho는 한 손에 한 개씩 바구니 손잡이를 잡아 들었다. 나머지 간단한 짐은 내가 들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병원 내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바구니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있는 남자를 보아서가 아니라, 그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작고 소중한 아기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으리라.
연신 "귀엽다", "너무 작아"라는 소리가 들렸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바구니 카시트가 저렇게 커 보이는 건 처음 봐"라는 말로 우리 아기들이 정말 작은 신생아임을 상기시켜주었다.
지하로 내려와 우리의 차 앞까지 도착했다. 아기들 한 명 한 명 뒷자리에 태울 차례가 되었다.
Cho는 아기가 들어있는 바구니 한 개를 먼저 들어 오른쪽 뒷 좌석에 두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미리 바구니 카시트 장착 방법을 익히고 온 Cho 였기 때문에 이 과정은 나름 수월해 보였다. 나는 뒷좌석 가운데에 앉았다. 조금은 비좁았지만 아기들 모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준비가 끝난 뒤 지하에서부터 지상까지 아주 천천히 차가 움직였다. 아기를 태우고 처음 차로 이동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운전자인 Cho는 매우 긴장해 있었고, 주차장의 작은 턱들을 성가셔하며 힘들게 운전을 했다. 주차장에서 나와 도로를 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속도는 매우 적정했으나 Cho는 연신 말했다.
"이렇게 운전하면서 떨렸던 건 운전면허 시험 이후로 처음이야"
운전을 하지 않았던 나는 Cho의 말에 완전한 공감을 해주진 못했지만,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기들을 데리고 떠나는 이 짧은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작고 작은 우리 아기들이 혹여나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대략 10-15분 만에 미리 예약해 두었던 조리원 건물에 도착했고, 주차를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넓은 공간에 주차를 성공시킨 뒤 아기들이 탄 바구니를 다시 아래로 내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만 타고 올라가면 목적지인 조리원에 도착하는 것이다.
띵동-
벨을 눌렀고, 문이 열렸다. 우리는 배정받은 룸으로 이동했고 조리원 간호사 선생님들은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리고 갔다. 그제야 한시름 놓았고, 식은땀은 말랐다.
"휴! 잘 도착했다"
그제야 나와 Cho는 조리원 방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으며 그와 동시에 나의 조리원 생활의 문도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