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야 말해 봐
`인생 그게 뭐라니?` 21화에서 수채화로 탁상 달력을 만들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그것은 고작 3달치 분 내 몫이 배분된 것이다.
그냥 지나가다 꼽사리 껴서 밥 얻어먹은 격이다.
이번에는 온전히 내가 그린 유화를 소개해본다.
그동안 글 속에 삽화로 넣은 것도 있고 새로운 것도 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한동안 그림을 그린다고 애쓴 흔적을 조금 남기고 싶었다.
1년이 마무리되는 시기니까.
한해를 헛살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노력했음을 내 독자들께 풀어내고 싶었다.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뭐라도 하지 않으면 금세 빈 손으로 연말을 맞을 것만 같았다.
시간을 이겨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릴 적 책에서나 신문에서 그림이 나오면 엎드려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몽당연필은 제대로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연실 침을 발라서 흑연의 자취를 찾아내던 동심의 원류.
원류(原流) 란 오랜 세월에 걸쳐 흐르면 드디어 장강대화(長江大河)가 되어
산천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장강대하 까지는 아직 멀었고 원류의 줄기는 찾았다고 말할 수 있다.
초승달이 만월로 익어가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림이라고 하기엔 어설픈 손동작에 불과했지만,
그 손동작에는 열망이 꼭꼭 채워져 있었다.
그려진 그림을 보고 식구들이 환호와 박수로 응원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그림에 대한 애착을 심어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꿈일 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아니 그래야 했다.
먹는 것조차 넉넉지 않은 주제에 무슨 그림을 넘볼 수 있으랴.
그림은 나와는 먼 인연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조차 허영심이었으므로.
그렇게 그림은 내 곁을 떠나갔다.
한참을 살다 보니 멀어져 간 그림이 그리워졌다.
화가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붓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떤 분은 내가 서양화를 전공한 것으로 아시는데 그렇지 않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림은 취미일 뿐이다.
먹고사는 생업도 아니며, 그것으로 인해 물질적 욕심을 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글 쓰는 틈틈이 양념처럼, 국수 위에 얹은 고명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마음이 외롭거나 왠지 사는 게 시들해질 때 붓은 내게 허허로움을 채워준 친구다.
그림은 내게 있어 그런 범주안에 있다.
내 그림들은 인공지능과는 무관한 그림이다.
인공지능을 아직은 활용해보지 못했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배워 그것과 접목해 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궁금하지만,
그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림은 본래 그린 이의 마음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렇다.
주도적으로 창의성을 섞어 넣지 못한 그림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든다.
도움을 받는 그림에 비하면 작업은 더디고 고되다.
그만큼 진심에 가깝다.
이제 2024년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누가 뭐래도 새해는 시작될 것이고 새로운 해로 우리는 걸어갈 것이다.
여전히 사는 일이 고달프기도 하고 벅차기도 할 테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낼 것이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독자 여러분들이 건강하시길 기원드린다.
건강해야 하려는 일도 성취를 볼 수 있을 테니까.
마침 글을 발행하는 오늘이 크리스마스 날이다.
일일이 선물을 드릴 순 없지만 그림을 통해 마음을 전해드린다.
그림도 화사한 얼굴로 보는 분들을 맞으리라.
진심이 깃든 곳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림이
그림을 그리워 한 이를 찾아오듯이 그렇게 좋은 결과로 귀결된다.
오늘 Merry christmas 도 그런 의미가 되고 싶다.
부디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마음 깊은 곳에 간직된 소망들이
오뉴월 꽃들처럼 화라락 피어나길 기원한다.
새해에는 작은 햇살조차도 행복으로 연결되길.
꼭 그렇게 되길.
바라만 보아도, oil on canvas, 60x7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