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
'한 편의 영화', '한 권의 책'은 문득 사진을 잘 찍고 싶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딸의 출생부터 결혼까지 흑백 필름으로 담은 아빠의 사진집 「윤미네 집」. 가게의 정체성을 아들의 이름으로 정해버리는 민구슈퍼처럼 ‘윤미네 집’이라는 이름에는 그런 따뜻함이 글자마다 묻어있다.
한 편의 영화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어느 날 미국 시골 경매장에서 비비안 마이어라는 이름이 적힌 필름 박스를 다량으로 구입한 주인공. 한 장 한 장 현상해보니 '비비안'이라는 무명의 사진가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비비안 마이어를 수소문한다. 비비안을 알고 있다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폭력적이었던, 친절했던 그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설을 쓸 때, 한 페이지에 공들인 문장은 두어 개만 넣고, 나머지는 대충 채워 넣는다고. 그래야 독자들이 읽기 쉽다는 말.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 권의 책을 만났을 때 우린, 각기 다른 곳에 밑줄을 긋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같은 것을 봤지만, 다른 것을 기억하곤 한다. 영화가 내 안에서 부서졌을 때 조각의 크기가 각기 달라서 모든 순간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하찮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밑줄을 긋는 시간이 좋다.
내가 수십 번, 수백 번을 그었을 사소한 순간들.
손목시계 초침 소리 귀 기울여 듣기
적막 속 당신의 구두 소리
엄마가 식탁에 수저 놓는 소리
드르륵드르륵 연필 깎는 소리
공항에서 수화로 말하던 연인의 눈빛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친구
서로 존댓말을 쓰던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