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을 주세요

by 김작가

신탁을 주세요

아테네 시민들이 신탁을 받기 위해 델포이 신전을 찾듯, 내게도 그런 곳이 있다. 안개가 잔뜩 낀 인생에서 답이 보이지 않을 때 가는 곳, 탐라식당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긴 제주의 향토 음식을 파는 곳이다. 낮에는 열지 않고, 보통 오후 다섯 시에 가게를 여니 이름과는 달리 식당보다는 술집에 가깝긴 하다. 몸국(매생이국과 비슷하다), 돔베고기에 한라소주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해성사가 '술술' 나온다. 한라소주가 무슨 메시지를 주냐고 묻는 의심 많은 자들이 있다. 하지만 아테네 신탁도 가스에 의한 환각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니 크게 다를 건 없다. 이 식당은 아늑한 시끄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마음 맞는 친구 2-3명만 있으면 그 밤은 이미 완벽한 그림이라 더 이상 그릴 게 없는 밤이 되곤 한다. 오늘도 가려고 했으나 흑석동으로 행선지를 변경했다. 오랜만에 한강 이남으로 가려니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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