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수출’의 시대를 넘어 ‘글로벌 현지화’로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K-라면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고, 냉동 김밥과 즉석밥은 미주와 유럽의 매대를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숫자 이면에는 냉정한 진실이 숨어 있다. 바로 ‘컨테이너에 실어 보내는 방식’의 K-푸드 수출 모델이 이미 그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시아스(SIAS) 최진철 회장이 던진 화두는 우리 식품 산업에 뼈아픈 경종을 울린다. 그는 “K-푸드가 정체기를 맞았으며, 한국에서 만들어 배에 실어 보내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단언한다. 컨설팅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K-푸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의 전면적 재설계’를 요구하는 목소리다.
현재 K-푸드 수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물리적 거리와 그에 따른 SCM(공급망 관리)의 비효율이다. 한국에서 생산해 유럽이나 미주로 보내는 데는 최소 6개월의 리드타임이 소요된다. 트렌드가 시시각각 변하는 식품 시장에서 6개월 전의 기획 상품을 매대에 올리는 것은 ‘뒷북 경영’이 될 위험이 크다.
여기에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인한 물류비 폭등, 그리고 최대 40%에 달하는 관세 장벽은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변수다. 이제 K-푸드는 ‘Made in Korea’라는 원산지 증명에 집착하기보다, ‘Made by Korea’의 기술력을 현지에 직접 이식하는 전략으로 선회해야 한다.
현지 생산의 핵심은 단순히 공장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최 회장이 강조한 ‘레시피 번역(Recipe Translation)’은 매우 고도화된 마케팅 전략이다. 한국의 매운맛을 그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의 원재료를 활용해 그들의 식문화 맥락 안에서 K-푸드의 DNA를 녹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컨대, 프랑스 현지 공장에서 인근 국가의 밀가루와 육류를 사용하여 라면을 생산하는 것은 물류비 절감을 넘어 현지인들에게 ‘우리 곁의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는 ‘에스닉 푸드(Ethnic Food)’라는 좁은 카테고리를 벗어나, 현지의 주류(Mainstream)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필수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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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식품을 농업 보호 정책의 연장선에서 바라봤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K-푸드는 이제 첨단 제조 및 서비스 산업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
국내 농업 시장 보호와 글로벌 식품 기업의 영토 확장은 분리해서 대응해야 할 과제다. 기업들이 현지 생산 기지를 구축할 때 발생하는 초기 투자 리스크를 완화하고, 현지 유통망 확보를 위한 외교적·금융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등 정부 차원의 ‘산업적 서포트’가 수반되어야 한다.
시아스가 프랑스 알자스에 세운 라면 공장은 단순한 제조 시설이 아니다. 이는 K-푸드가 유럽 시장의 심장부로 직접 파고든 전략적 교두보다. 경쟁사들이 이 모델을 따라잡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 기간 동안 확보한 현지 데이터와 유통 장악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 될 것이다.
K-푸드의 르네상스는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그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컨테이너’라는 안락한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현지 시장의 생태계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여, 현지인의 식탁 위에서 직접 숨 쉬는 ‘글로벌 인프라’로서의 K-푸드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