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誘引) 아이스크림 가게

by 도드리


8월, 기나긴 장마가 끝나고 삭막한 여름날들이 펼쳐졌다.

한낮의 강렬한 햇빛은, 비쭉 날이라도 세운 것처럼 날카롭게 옷 밖으로 드러나 있는 살갗을 괴롭혔다.

거리에는 사람들도 몇몇 돌아 다니지 않았고, 더위에 지친 비둘기들은 평소보다 더 굼뜨게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아~ 엄마아~~~!!"


어린 아이의 앙칼진 목소리에 더위로 가라앉은 거리의 고요함이 깨졌다. 비둘기 몇 마리가 푸드득 날개짓을 하며 몸을 띄우려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 앉았다.

더위를 피해 빠르게 걷던 두 사람이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자의 손을 힘주어 잡아 끌었다.


"아 글쎄, 안 된다니까?"


"아 왜~!!!"


"너 오늘 아이스크림 몇 개 먹었어?"

"아~ 한 개~~~!"


"무슨 한 개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덥다고 한 개 먹고 아까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서 또 하나 먹었잖아, 아니야? 맞아, 아니야?"


"아니~~~ 그건 그냥 쪼꼬만거였다고오오~~~!! 하나 더 먹을래애~~~!!!"


"누가 하루에 아이스크림을 3개씩 먹어? 어? 됐고, 더우면 빨리 집에 가서 시원한 물이나 마셔! 알았어?"


"아 싫어어~~ 물 안 마셔!! 빨리 아이스크림 사줘~~!!!"


"얘가 오늘따라 정말 왜 이래? 안 그러던 애가..? 얼른 가자!"



아이는 엄마의 손에 억지로 끌려 가면서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게 안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무더위 탓에 아이스크림 가게조차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 듯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아직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뾰루퉁한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다.


"엄마가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알지? 자, 여기 시원한 얼음물 있으니까 이거 마셔."

"......"


아이는 대꾸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 갔다.

"너, 진짜...!"

엄마는 아이의 뒤통수를 쏘아 보며 한 마디 더 지르려다가 꾹 참았다.

이미 더위에 지쳐 소리칠 기력도 없었다. 아이에게 주려고 따랐던 얼음물을 벌컥거리며 단숨에 마셔 버렸다.


아이의 이름은 태성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직은 엄마, 아빠의 말을 잘 듣지 않을 만도 한 나이이다.

하지만 태성이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성숙한 편이었다.

영어, 수학, 국어, 한자, 줄넘기까지 부모님이 원하는 학원을 5개나 다니고 있지만 볼멘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주변 어른들에게도 늘 예의 바르게 인사하여 동네에서도 "꽤 괜찮은 아이"로 좋은 평판이 돌았다.


그래서인지 태성이 엄마도 갑작스러운 당혹감과 함께 배신감이 느껴졌고, 이번 기회에 더 단단히 교육을 시켜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한 동안 아이스크림 안 돼! 알았어?"

아이의 방문을 향해 소리쳤지만 여전히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사실 태성이는 방문을 닫고 들어 와서는 생각에 잠겨 있던 터였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렸지?'

'방금 전 행동은 너무 버릇이 없었나..?'


'그런데, 이상하게 왜 이렇게까지 아이스크림이 자꾸 먹고 싶은 걸까..?'


자기 반성으로 시작했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통 물음표 투성이로 바뀌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꾸벅꾸벅 잠이 밀려 오던 차에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한 동안 아이스크림 안 돼! 알았어?"


그 순간, 갑자기 졸음이 달아나며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열 살 평생 느껴 보지 못했던 묘한 감정과 이상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뜨거운 무엇인가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멍울지듯이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끝에 결심이 섰다.


'다시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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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거리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상가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긴 했지만 주변이 모두 주택가여서인지 오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매미 우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하염없이 울려 퍼졌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이 가게만 반딧불이처럼 어두운 거리에서 우두커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남자 아이 한 명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가게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태성이었다.


이 곳을 다시 꼭 오겠다고 마음 먹긴 했지만, 이토록 야심한 시간에 찾아 올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엄마, 아빠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빨리 다녀 가야겠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결국 잠이 들었던 것이다.


자다가 몸서리를 치며 깨어 났는데, '아뿔싸! 아이스크림 가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 아빠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밖으로 나왔다.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이 곳까지 오긴 했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뒤늦게 공포심이 밀려 들었다. 생각해 보니, 대낮에도 혼자서는 밖에 돌아다닌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새벽에 혼자 집 밖에 나와 서 있다니, 이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덜컥 겁이 났다.


'아,아무래도..그냥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발걸음을 돌리기로 마음 먹고 아이스크림 가게 안을 응시하던 눈길을 거두려던 순간,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겁에 질려 이런 저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대여섯 개 되는 큰 냉동고 안이 모두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뭐지? 왜 아이스크림이 없지? 설마, 다 팔리기라도 했단 거야?'


다 팔렸다고 생각하기엔, 아까 오후에 봤을 때만 해도 아이스크림이 냉동고 밖으로 넘쳐날 듯 꽉 차 있었다.


혼란스러운 감정이 공포심을 짓누르려 할 때, 빠르게 이쪽 저쪽을 훑던 태성이의 눈에 아이스크림 한 개가 들어 왔다.

새하얀 포장지에 새빨간 빛깔의 막대 아이스크림 이미지가 그려져 있는.


'있다! 하나 있어!'


사실, 단 하나의 아이스크림만 남아 있는 것 역시 아무 것도 없는 것 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태성이에게 묘한 안도감을 안겨 주었다.


태성이는 그 아이스크림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이 아이스크림을 냉동고 한 가운데에 바르게 진열해 두고선 태성이가 올 때까지 기다린 것만 같았다.


"이건, 널 위해 남겨 놓은 거야"


환청이었을까, 조금 전에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끼이익.."

태성이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갔다.


이제 이 아이스크림을 계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이 곳에 온 이유를 다시 상기시켜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나도 명확해졌다.

새벽의 공기는 한낮만큼의 더위를 머금지 않은 데다가 두려운 마음에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 보니, '내가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겠다고 이런 충동적인 행동을 했나'하는 후회가 밀려 왔었다.


하지만, 애초에 태성이를 여기까지 이끈 것은 더위를 이기지 못해 애원하듯 아이스크림을 갈구하던 육체가 아니라 부모에 대한 반항심과 오기의 '마음'이 한 것이리라.


태성이는 냉동고의 문을 옆으로 밀어 열고, 단 하나 남은 아이스크림을 꺼내 들었다.


"이런 아이스크림도 있었나..?"


포장지에는 아이스크림 이미지와 바코드 외에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제품명도 회사명도 원재료 성분도 칼로리도, 활자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태성이는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 이제 다른 선택지 같은 건 없었다.


"삑-"


익숙하고도 경쾌한 바코드 찍히는 소리는 태성이의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제 계산만 하면 된다. 이미 왼손은 주머니 속에 있는 어린이용 체크카드를 꼬옥 쥐고 있었다.


".....어?"


[생체 결제]


키오스크 화면에 나온 결제 옵션 선택 화면은 늘 봐왔던 그것과 달랐다. 원래대로라면 "카드결제 혹은 현금으로 결제 하세요."라는 여자 목소리가 나오면서 [카드결제], [현금결제] 둘 중에서 선택하는 화면이 나와야 했다.


"생체 결제 바랍니다."


'생체 결제'라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란 건지 알 수 없었다. 기계에 오류라도 있는 걸까 싶어서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가 '다음으로' 버튼을 누르기를 계속 반복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 재촉하는 듯한 음성만 튀어 나왔다.


"생체 결제 바랍니다."

"생체 결제 바랍니다."

"생체 결제 바랍니다."


이제 결제만 하고 집에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다시금 공포심이 밀려 들었다.


체크카드를 꼭 쥐고 있던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아이스크림은 조금씩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살면서 맡아본 적 없는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마음을 먹고 아이스크림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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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가게의 문이 굳게 닫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기는 게 아니라 밀어야 했던가..?'


"덜커덕! 덜컥!"


당겨도 밀어도 온갖 힘을 다 써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한참을 미친듯이 문과 씨름하던 태성이는 점점 낯빛이 하얗게 질려 갔다.

가게 안은 에어컨도 나오지 않았고 온 몸이 땀에 절어 속옷까지 젖어 버렸다.


지칠대로 지쳐 잠시 냉동고에 기대 서 있을 때, 이 가게의 문은 원래 수동 기능으로 움직이는 자동문이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아! 자동문이지만, 버튼을 직접 눌러야 하는 거였잖아?'


반색하며 다시 문 앞으로 다가간 태성이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문 옆에는 아무 버튼도 없었다.




"생체 결제 바랍니다."

"생체 결제 바랍니다."

"생체 결제 바랍니다."


이제는 만지지도 않은 키오스크에서 계속 음성이 흘러 나왔다.


태성이는 벌벌 떨면서 조심스럽게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화면이 반짝거리더니 안내 문구가 튀어 나왔다.


[아래 투입구에 손을 집어 넣으세요]


'아,아까도 이런 안내 문구가 있었나..?'


겁에 질린 채로 어찌해야 할 줄 모르고 있는데, 이어서 기계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래 투입구에 손을 집어 넣으세요."

"10초 안에 결제하시면 문이 개방됩니다."


"아래 투입구에 손을 집어 넣으세요."

"10초 안에 결제하시면 문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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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 8,


7, 6, 5,


"곧 가게가 폐쇄됩니다."


4, 3, 2,


"곧 가게가 폐쇄됩니다."


1.............


태성이는 부들거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간신히 부여 잡고는 투입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왼손에 꼭 쥐고 있던 체크카드는 이미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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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절규에 가까운 외마디 비명 소리가 고요하던 새벽의 적막을 깨뜨렸다.

굳게 닫혀 있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의 문이 열리고, 그 앞에서 기웃기웃 걸어 다니던 비둘기 몇 마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푸드득 댔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태성이가 마지막 아이스크림을 꺼낸 냉동고 안에 찐득찐득한 빨간 액체가 위에서 아래로 뚝뚝 흘러 내리더니 새빨갛고 영롱한 빛깔의 아이스크림 하나가 새로이 빈 공간을 채웠다.


잠시 정적. 그리고는 키오스크에서 또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상품을 추가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