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온라인 글쓰기 하는가?
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영업 직무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어떻게 보면 전문성 없는, 문과 커리어의 시작이었습니다.
스타트업 PM으로 이직하고 나서는 더욱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비개발자인 제가 자연스럽게 회사의 목표 달성을 위한 다양한 잡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바쁘게 일했지만 동일 연차의 개발자보다는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제너럴리스트로서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이나 주변 동료들과 커리어 관련 고민을 나눠보면 모두 자신의 전문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변호사 같은 전문직 자격증이 있는 분들도, 개발자 같은 진입 장벽이 있는 기술을 다루는 분들도 그 분야 안에서 스스로의 전문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전문직들도 전문성을 고민하는데, 제너럴리스트 직무로 알려진 PM이라면 대부분 본인의 전문성을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회사를 떠나도 시장에서 쉽게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전문성을 고민합니다. 제너럴리스트인 PM은 기술이나 학위, 자격증으로 진입 장벽을 만들 수 없는 직무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전문성을 어떻게 개발해나갈지에 대한 명확한 전략이 더욱 필요합니다.
저는 전문성을 갖춘 제너럴리스트로 나를 포지셔닝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커리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회사나 특정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는 커리어 전반에서 내가 가진 문제 의식이나, 특정 분야에서의 나의 유니크한 경험이나 인사이트가 커리어 스토리의 구체적인 예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차별화된 스토리라고 함은 주제나 관점이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내용은 충분한 설득력과 개연성을 갖춘 것입니다. 커리어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 자신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니치한 영역에 나를 포지셔닝해야하고, 포지셔닝한 영역 안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뒷받짐해주는 사회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 커리어 스토리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저는 초기 스타트업의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일에 전문성과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약 10년 간 제한된 자원으로 빠르게 사업성을 검증하는 비즈니스 경험을 쌓아 왔고, 이 과정에서의 스토리와 인사이트를 블로그와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만의 커리어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온라인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글쓰기'라고 함은 업계나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 혹은 업무 경험 등에 대한 글을 웹 상에 공개적으로 쓰는 것을 말합니다. 커리어에 대한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작업을 통해서 내가 포지셔닝해야할 영역을 발견하고, 나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증거들을 쌓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력서를 쓸 때 커리어 패스 전반의 맥락에서, 내가 어떤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고, 어떤 강점이 있는지 회고해봅니다. 이러한 회고의 결과로 나온 잘 쓰여진 이력서도 하나의 커리어 스토리입니다. 일관된 방향성이 있고, 타겟하는 기업의 지향점과 일치한다면 이력서도 굉장히 설득력 있는 스토리입니다.
이직할 때 이력서라는 형태로 커리어 스토리를 정리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블로그로 (여건이 허락한다면 유튜브 영상으로) 정리해서 온라인에 공유하는 것은 훨씬 큰 효과가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글쓰기를 하는 것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온라인 글쓰기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PM을 포함한 제너럴리스트의 일을 추상화해보면 결국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타인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역량은 글쓰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길러집니다.
그리고 내가 수행했던 일, 내가 속한 업계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모호하게 알고 있던 부분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고, 이를 완결된 글로 써내려가는 작업을 통해서 생각이 정리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함을 통해서 실제로 비즈니스 감각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향상됩니다.
또한 온라인에 글을 쓰면, 내 관점과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댓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노트에 쓰는 것보다 내 시야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온라인에 글을 쓰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공유하는지를 지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내 경험, 내 인사이트 중에서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경험이나 인사이트가 무엇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내 경험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휘발되는게 아까워서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대체적으로는 주변 지인들이 읽어주고 코멘트를 해주는 정도였습니다. 여러 글 들 중에서 ‘노코드로 사업 검증하기'라는 글을 썼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고, 공유해주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스타트업 업계에서 개발자 도움 없이 빠르게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실행하고자 하는 니즈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노코드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 글에 대한 많은 분들의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내 커리어의 방향성은 혼자 고민하거나, 신뢰하는 리더/멘토와 상담하는 것으로 정하곤 합니다. 이 방법도 훌륭한 방법이지만 온라인에서 글쓰기를 함으로서 정량적인 지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가는 것처럼 내 경험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가면서 내가 포지셔닝할만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내가 포지셔닝해야 하는 방향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그러한 주제로 글을 계속 쓰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구독자가 모입니다. 보편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컨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정말 빼어난 글솜씨와 실력이 아니고서야 그 속도는 무척 더딜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가 고민하는 커리어 주제에 대해서 비슷하게 고민하는 내 오디언스가 모이고 있는 것이고, 그들은 나의 여러 글을 보면서 나를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오디언스가 모인다는 것은 요즘과 같은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 시대에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어느 정도 오디언스가 확보되면 강의와 같은 실질적인 수익화 제안을 받을 수도 있고, 이런 제안이 없더라도 내가 어느 정도 그 주제에 관해서 신뢰도가 있는 스피커라는 사회적인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내 블로그를 이력서에 넣거나, 약력에 넣는 것만으로 나에 대한 가치가 올라갑니다.
오디언스가 비즈니스 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관계로서 내 삶에 분명 도움이 됩니다. 내 생각에 공명해주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지지받는 경험은 그 자체로 큰 감정적인 보상이 됩니다. 또한 내 오디언스 중에서 내가 기대치 않았던 제안은 주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이러한 커리어 세렌디피티가 내가 기대치 않았던 기회를 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작게 시작했던 글쓰기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퍼블리, 아웃스탠딩 같은 곳에 기고 제안도 블로그를 통해 받았고, 멋쟁이사자처럼 같은 교육 기관에서 강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 지금은 전업 크리에이터로 먹고 살수 있게 되었고요.
‘내가 무언가 쓸만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을까?’ 온라인 글쓰기를 해보라고 조언하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입니다.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쓰는 글쓰기는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저도 사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하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를 극복하는 마인드셋이 필요합니다.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지 마세요. 또한 내가 쓰고자 하는 컨텐츠의 내용에 대해서도 완벽히 배우고 난 다음에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러한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시작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불편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그 다음에 배우세요.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가 사람들이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내용일수도 있기 때문에 컨텐츠를 만들 때 완벽을 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반응해주는 글인데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글을 또 쓰면 됩니다. 내 실행력을 떨어뜨리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지세요.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한 개의 일관된 주제나 형식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도 초심자의 흔한 강박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온라인에서의 덕목은 고객에 반응에 맞춰서 조금씩 변경해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면서 업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교집합의 주제를 찾는게 일관성 있는 글을 쓰는 것보다 우선입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일수록 적합한 주제를 찾는게 중요합니다.
전혀 연관성 없는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슷한 경험이라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내 경험과 인사이트 근처에서 사람의 반응이 있고 내가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주제를 찾아보세요.
온라인에 글을 쓰거나 영상을 올리거나 서비스를 배포하는 것의 목적은 고객의 반응을 보고 이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함입니다. 온라인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글을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지 않고, 공유해주지 않는다면, 비슷한 인근 주제로 변경해서 글을 써보세요.이러한 시행착오와 조정을 통해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내 커리어 포지셔닝을 가져가야 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글을 단번에 쓰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성과(Outcome)를 따지기 전에, 결과물(Output)을 찍어내는게 우선입니다. 위에서 말한대로 나에게 의미가 있고, 나의 인생을 바꿔줄 글이 어떤게 될지 글을 쓸때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많이 발행하기엔 소셜 미디어에 짧게짧게 글을 쓰는 것도 좋습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짧게 소셜 미디어에 포스팅하고, 댓글과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세요. 반응이 좋은 글은 블로그 같은 긴 글로 만들어가는 전략도 좋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유튜브는 검색으로 유입되지 않더라도 자체 플랫폼 내에서 일정 부분 트래픽을 부어줍니다. 하지만 컨텐츠의 바다 속에서 내 컨텐츠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관심 가질만한 분에게 알아서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나의 소셜 미디어가 유사 타겟 고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첫번째 채널입니다. 내가 소유한 채널에 적극적으로 내 컨텐츠를 공유하도록 하는게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외에도 내가 속해있는 커리어 관련 커뮤니티 (페이스북 그룹,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글을 공유하는 것도 유사 타겟 고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온라인 글쓰기가 효과를 보려면 오디언스를 점차 빌드해가야 합니다. 초기라면 내 글의 오디언스를 빌드하기 위해 내가 속한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레버리지 해야 합니다. 유료 광고를 집행하거나, 전혀 관계 없는 사람에게 보여줘서 조회수를 높일 필요는 없지만, 내 글에도 마케팅은 필요합니다.
약 10년 간 직장 생활을 하고, 창업도 해보고, 크리에이터로서도 살아보면서 커리어라는게 참 어려운 것이다라는 생각은 듭니다. 저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제 커리어가 변변치 못하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커리어 방향성과 관련된 이러한 글을 쓰는 것도 사실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쓰면서 얻게 되는게 훨씬 많았습니다. 가장 큰 것은 저 스스로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 점입니다. 제 커리어 방향성을 잡는데 글쓰기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Product Market Fit을 빠르게 검증하는 경험과 기술을 가진 PM으로 저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이 분야에서 제 전문성을 키우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회들로 인해서 제 커리어가 훨씬 풍부해졌습니다.
이력서 상의 경력이 아니라 내 컨텐츠가 나의 새로운 이력서가 되는 것은 점차 트랜드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 스타트업에서는 소셜 미디어 계정, 블로그, 유튜브 등이 채용 과정에서 그 사람의 관심사와 실력을 검증하는데 주요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회사를 넘어서는 내 경력의 전문성을 찾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제너럴리스트로 살아남기 위해서 온라인 글쓰기를 당장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