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다

10여 년 전 LA에서, 공공외교의 현장을 뛰던 시간을 회고하며

by 고니

지금 전 세계를 휩쓰는 한류 열풍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종종 10여 년 전의 LA를 떠올린다.


그 시절, 나는 화려한 무대와는 거리가 먼 자리에서

한국학, 문화외교, 공공외교라는 이름의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눈에 띄는 성과도, 박수받을 일도 거의 없었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해야 했던 일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문화는 지금처럼 ‘찾아보는 콘텐츠’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국은

아직 설명해야 하는 나라, 심지어는 왜 알아야 하는지부터 말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나의 일은 늘 기초부터 시작됐다.


대학 안에 한국학 연구소를 세우는 일, 미술관과 박물관에 한국 관련 전시 공간을 만드는 일, 교수와 학생, 정치인, 그리고 다양한 타인종 커뮤니티 사람들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일.


한국을 “좋다, 멋지다”라고 말하기 이전에 “어떤 나라이고, 왜 중요한가”를 차분히 설명해야 했다.


빠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유행을 만드는 작업도 아니었고, 숫자로 바로 증명되는 결과도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조금씩 쌓인 인식,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신뢰, 그리고 제도와 네트워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토양이 되어 갔다.


지금의 한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한국을 연구 대상으로 받아들인 대학들이 있었고, 한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기관들이 있었으며, 한국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들리도록 만든 수많은 대화와 만남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 나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지금 당장의 반응보다 십 년 뒤를 내다보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리고 그 방향은, 적어도 오늘의 한류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조용히 뿌려진 씨앗들이 이제야 비로소 전 세계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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