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 제품이 곳곳에
독일에 와서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출근도, 등교도 안 하는(네 식구의 삼시세끼)를 해결하라’였다.
처음 며칠은 근처 레스토랑을 배회했고, 또 며칠은 빵과 주스, 과일을 먹었다. 한국에서 빵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온종일 빵만 먹는 건 고역이었다. 빵은 밥 사이에 먹는 간식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현지 마트에 가야 했다.
독일 마트 시스템을 잘 몰라 걱정은 됐지만 도장깨기처럼 방문해 보기로 했다. 이래 봬도 8년 차 주부니깐! 장보기 짬밥이 있지.
여러 마트를 탐방한 끝에 주거래처로 집 근처 Rewe 레베를 선택했다. 레베는 독일 내 체인점 수가 가장 많은 마트로 한국의 이마트 에브리데이 같은 도심형 마트와 이마트 24 같은 편의점 형태의 레베 시티(Rewe City)가 있다.
우리 집 근처엔 다행히 레베 마트가 백화점 입점 식품관으로 들어와 보통의 레베 마트보다 훨씬 다양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마치 SSG 푸드마켓처럼.
몇 번 장을 보다 보니 bio 마크가 달린 제품이 눈에 띄었다. 유기농 인증마크다.
비오시겔은 식품의 방사선 처리, GMO, 화학비료, 방부제, 광물 비료 등의 사용 여부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거친 유기농 인증으로 독일 사람들에게 신뢰가 높다고 한다.
비오시겔 이외에도 독일에 총 7개 유기농 인증 기관이 있고 대부분 까다롭게 관리되고 있다. demeter라는 유기농 협동조합은 처음 씨를 뿌리는 순간부터 포장 단계까지 화학적인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는다.
백화점에 입점한 레베 Rewe 뿐 아니라 아니라 식재료를 주로 판매하는 보통의 마트에서도 유기농 마크가 있는 제품을 쉽게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품목에 유기농 제품이 다 있을 정도다.
가격 역시 유기농 마크가 없는 제품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 일반적으로 0.3-5유로, 많아야 1유로 정도 더 붙는다. 어느 날은 유기농 마크가 없는 제품으로, 또 어느 날은 유기농 마크가 있는 제품으로만 장을 봤다. 비슷한 품목으로 구성했을 때 10유로 정도 차이가 났다.
유기농 제품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도 식재료는 거의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써왔다. 친정 엄마의 오랜 암투병 기간 동안 ‘먹는 것’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했기 때문이다.
한살림, 자연드림, 소규모 유기농 식재료상에서 장을 봤다. 어쩔 수 없이 소득 대비 식비 규모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한국도 유기농 제품 구매처가 많이 생기고 제품군도 보다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가격 면에서는 비싼감이 없지 않다.
계란과 우유 파동이 생기면 정말 난감해진다. 아이들 때문에 매일 먹고 마시는데 항생제 검출 등 뉴스가 나오면 마음이 찜찜해 유기농 우유를 산다. 우유의 경우 유기농 우유는 일반 우유보다 2-2.5배 정도 비싸다. 하필 우리 집 아이들이 우유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1000ml씩 소비하는데 일주일이면 우유에만 5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먹는 것마저도 소득에 따라 차이와 차별이 생기는 건 아닐까.
의식주 중에서도 음식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에서 식재료에 대한 관리와 공급은 매우 중요하다.
demeter는 유기농 인증 기관인 동시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토지 재생 프로그램_생명역동농법(biodynamic)으로 농사를 짓는다. 화학 비료로 인해 망가진 땅의 생명력을 살리고 식물과 땅이 조화롭게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연의 평화가 곧 사람에게도 중요하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유기농은 인간다움을 위한 기본권의 고민이다. 그 기본권에는 큰 차별이 없다. 유기농 마크가 없는 제품과 있는 제품에 대한 가격 차이가 적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저변도 잘 갖춰져 있다.
SSG 마트가 청담동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동네나 있는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