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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윤 Mar 22. 2024

질투와 자괴감 그리고 자기연민의 굴레

난임을 겪으면서 여러 소식을 접하며 느끼는 나의 감정들에 대해서

사실 10대 때는 나는 커서 결혼은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20대 중, 후반까지만 해도 아이는 커녕 결혼 자체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이 재밌는 세상을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고생하면서 사는거지?'

그 당시의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신주의자, 비혼주의자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이 바뀐 건 바로 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갑자기 혹시 나중에 나의 부모님이 나를 떠나게 되는 시간이 온다면

나랑 동생 단 둘이서 과연 이 슬프고도 힘든 일을 치뤄낼 수 있을까...?

결혼이 내 인생에도 필요하겠구나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 계기이다.


일단 결혼은 OK.

아이는? 크게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둘이서 돈 벌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유유자적 사는 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

하지만 회사 동료가 아이를 갖고 출산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특히 또 다른 사랑으로 충만해진 동료를 보며

나도 한 번은 겪어보고 싶은 감정 그리고 역할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렇게 비혼주의자였던 나는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난임시술을 하면서도 8개월 동안은 가족 이외에 아무에게도 나의 사정을 알린 적이 없다.

이유는,

1. 나의 주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음에도

나의 처지를 걱정하며 말하지 못할까봐.

2. 나에게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에 내가 속상한 모습을 애써 숨겼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하지만 결혼을 하고 2년차가 되었을 무렵 친구들이 왜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2세 계획은 없는지 혹시 딩크족인지에 대해 물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혼을 길게 즐기고 싶다고 둘러댔지만

어색한 변명을 하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장 친한친구가 임신을 한 걸 알게 된 날

고민을 수십번 하다가 카톡으로 나의 시험관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다.


결혼을 한 친구들에게 털어놓는 건 굉장히 고민이 많이 되면서도 속상했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털어 놓는 건 굉장히 쉬웠다.







생각지도 못하게 난임 생활이 3년차에 접어들면서

나보다 결혼을 늦게 한 친구들은 이미 출산을 하고 또 둘째를 가진 친구도 있고

지금 임신 중에 있는 친구도 있다.


1년차에는 친구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축하한다고 카톡을 보내면서도 눈물이 났다.

부럽고 질투나고 나만 안되는 것 같은 느낌.

그러면서도 나에게 소중한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겼는데도

온전히 축하해주지 못하는 나의 찌질한 모습.

그리고 매일같이 배에 주사기를 찔러가며 노력을 하는데도

뜻 대로 되지 않는 불쌍한 나의 모습.


짧은 시간에 수 많은 감정들이 지나쳐가고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남편한테 '내 친구 임신했대 잘됐지'라고 말하며 쿨 한척을 해봐도

아마 표정은 숨기지 못했나보다.

"우리도 곧 좋은일이 있을거야."라고 위로하지만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 단단해졌다.

이전에는 40%의 축하와 30%의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30%의 자기연민이 있었다면

이제는 70%의 축하와 20%의 부러움 그리고 10%의 자기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비율도 무너질 때가 있는 법.


내가 오랬동안 시험관을 하고 두 번의 화학적 유산과 실패를 아는 친구는

임신을 하고 몇달동안 나에게 이야기 하지 못했고

만나야 될 일이 생겼을 때 장문의 문자로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문자를 받고 머리가 띵했다.

나의 난임이 주변사람들을 눈치보게 만드는구나.


같이 축하해야할 일도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될 일도

수십번 고민해서 나에게 말해야 하는구나.

내가 그런 존재구나.....


참 그렇다.

나를 걱정하는 친구가 고마우면서도 

그 걱정때문에 늦게 말해준 것이 서운하다.

그 친구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나혼자 수만가지의 감정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이내 미안해진다.

사실 아무도 미안해 할 상황이 아니지만

내가 차라리 시험관을 말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들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남편도.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얼마 전 출산한 사촌까지도...

제일 웃긴 건 나도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어서 성공해야 다들 편하게 나를 대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나도 어서 성공을 해주고 싶은데 참 어렵다.






매번 분기별로 커피 쿠폰을 보내주는 남동생이 쿠폰과 함께 처음으로 문자를 보냈다.

어차피 잘 될거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요 근래에는 동생이 아니라 오빠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내 주변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지.

오만가지 감정에 휩싸일땐 그 생각을 하자며 훌훌 털어본다.






"어차피 잘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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