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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Aug 29. 2021

이번 생은 행복했다 말할 수 있을까

아침에 비가 세차더니 낮이 되자 하늘은 컴컴해도 비는 내리지 않고, 밤이 되자 달빛이 구름에 드리워졌다 나타났다 합니다. 베란다에 앉아서 달을 바라보다, 이번 생은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었습니다.  



도깨비방파제 인근에 살고있습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그 도깨비 방파제요. 관광객들이 와서 사진 찍으러 줄 선 것을 보며 산책하는, 그런 소소한 행복을 즐길 수 있는 데 자리잡은 지 내일이면 딱 1년이 됩니다.  



회사 생활을 그만둔 지는 1년 2개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만하면 좋다구요. 이번 생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고요. 회사 다니면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확실히 상태가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지도 모르지요. 이제 더는 삶을 비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무엇을 할지 차근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고, 그게 안 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것이 어쩌면 할 수 있는 전부이고 멋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물론 이러다가도 매일 엉키고 다시 풀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옆에 바다가 있어 잘 안 되면 걸으러 바닷가로 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운이 좋으면 노을이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츰 바다의 색이 변하며 파란 바다가 라일락색을 띄고 빨갛게 노을이 익어갑니다. 누군가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으니,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가요? 당신의 황금기는 언제였나요?  



10살에는 3개월 정도 완도에 살았습니다. 10살까지 온갖 도시에 살았기에, 사실 기억이 별로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가 살았던 10개 정도의 도시 중에 완도를 가장 좋아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도시에서 딱 3달 살았는데도요. 그 도시의 친구들이 유독 잘해줬던 건지, 거기서 다닌 미술학원이 재미있어서였는지, 뭐가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바다가 있어서였나 싶기도 합니다.   



수영도 못 하는데, 바다가 좋았던 건지 신기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거기서는 대부분 괜찮았다고 할까요.  거기 친구들은 매년 봄 가을 소풍을 구계등으로 갔고, 가끔 다슬기를 채취하고, 그런 기억이 어렴풋이 있어, 그 도시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일 때문에 방문했을 때는 아, 이런 도시였구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지만요.



도깨비는 지금 없어도 대신 밀과 보리가 제 옆에 있습니다. 이제 4살인 보리는 내가 키보드를 칠 때면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곤 합니다. 매일 털을 흩트리고 그게 싫지만, 그래도 밀과 보리와의 시간은 모든 날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 옛날 사진 같은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털이 빠진다고, 손톱을 깎아줘야 한다고 투덜거리지만 실은 날이 좋든 좋지 않든 이 아이들과의 시간은 모든 날이 좋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찐사랑이지요.



오래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습니다. 나보다 2살이 많았는데 같이 동기로 들어와 말을 트고 친구로 지냈는데,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나보고 꼭 너는 너대로 살면 좋겠다고 군대에서 그런 편지를 보냈었는데, 왠지 잊혀지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뭘해도 언제나 내 편이라고 했는데, 그런 말을 남겨두고 먼저 이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그 친구가 떠났을 당시에는 많이 울었지요. 그래도 살아가는 일은 살아가는 일대로라, 매일 세상을 헤쳐나가며 잊혀지기도 했지만, 힘든 날은 그런 편지 같은 것을 펼쳐 보기도 했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해지며 그 친구 생각은 하지 않다가,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이 녀석은 이번 생은 좋았다고 생각했을까. 1년 정도 외국을 여행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그랬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정말 그랬을까.  



누구나 생을 살며 이번 생은 행복했다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엄마는 그럴까, 아빠는 그럴까, 누구나 그럴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무언가를 발견하고 위무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도 싶지만 내 품이 그만큼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품이란 무엇일까, 그런 답 없는 질문을 해보곤 하지요.



매일 세상의 시끄러운 잡음과 파도와 시와 가끔은 목욕과 머리감기 흩어진 머리카락 털을 온 집에 굴러다니게 만드는 눈이 동그란 밀과 보리와의 시간 결국 모든 날이 좋았다 할 이건 사랑이 분명한


아무 직위도 없는 누구씨의 이야기입니다.  



수입은 주식 팔아 5천원이고요, 지출도 달걀 15알을 사서 5천원이라 오늘의 경제생활은 똔똔입니다. 몸 누일 곳이 있고 오늘의 토마토와 오이, 내일의 가지 같은 것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다니… 누군가를 만나 진짜 더한 황금기가 시작된다면 좋겠지만, 실제 생활은 이 정도만으로도 감사한 것이 레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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