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영화계에서 일하는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웹소설 원작을 종종 검토하는데 설정이나 개연성이 엉망이라며 왜 그렇게 작가들이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는 그냥 멋쩍은 웃음으로 넘겼으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 분의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건 그 분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업계에서 그걸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이유가 일절 없다는 뜻이다.
왜인 거 같은가?
필자는 케이팝 CD를 사본지 10년도 더 됐다. 멜론, 지니 같은 곳에서도 무료 이외에 유료로 한번도 음악을 들어본적이 없다. 가끔 귀에 꽂히는 노래가 나오면 음원을 사기도 했으나 그것도 유투브로 인해 그만뒀다.
이런 필자가 케이팝에 대해 현 가요계에 대해 음악이 천편일률적이라며 외국의 팝을 들으라면서 한소리를 해보자.
그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음악이 나온다고 해도 필자는 그 음악을 소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음악이 나온지도 모르고 알더라도 유투브에서 한두번 듣고 땡일 것이다.
이제 필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는가?
필자는 케이팝의 소비자가 아니다. 필자의 의견이 반영됐든 안 됐든 필자는 그 음악을 듣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필자의 생각은 한 의견에 불과하다.
그것도 걸러서 들어야하는 의견 말이다.
필자는 웹소설 작가이자 독자다. 명품가방을 사고도 남을 만한 돈을 썼다.
그런데 유료 독자가 문제 삼지 않는 설정이나 개연성을 돈 한푼 쓰지 않은 사람이 지적한다.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기본적으로 웹소설 업계는 출판사, 플랫폼, 작가, 독자 이들이 주체이다. 이들이 업계를 돌아가게 만든다.
웹툰화, 영상화 좋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입맛에 맞춰 글을 써야할 이유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원작을 검토하는 입장이라서 걸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걸 웹소설 작가나 독자가 문제인거처럼 몰아가면 곤란하다.
매체에 따라서 ‘치고 넘어가는’ 부분은 항상 존재한다. 영화 매체에서 걸리는 부분은 각색 작가가 해결해야할 부분이지 웹소설 작가가 수정하거나 독자의 취향을 문제시 삼을 일이 아니다.
그런 걸 이유로 그 업계가 문제인것처럼 몰아가는 건 매우 무례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게 문제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