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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시 Jul 20. 2018

따돌림의 상처를 인생의 무기로 만든 여성 지휘자

 | 지휘자 & 게임음악 스타트업 ‘플래직’ 진솔 CEO를 만든 ‘결핍의 힘’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지만 그녀에게 몰아친 바람(風)과 물결(濤)은 유독 거셌다. 학교는 홀로 싸우는 전쟁터였다. 급식실로 몰려가는 친구들을 등지고 화장실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었다. 교실에 돌아오면 이유 없는 공격이 날아왔다. 피터지게 맞서도 봤다. 혼자 일곱 명을 상대해야 했지만 돌아온 건 정학 처분이었다. 부모님은 그런 딸을 이해하지 못했다. 집도 더이상 안식처가 될 수 없었다. 가출한 고등학생이 맘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은 피시방 뿐이었다.

“제가 지휘자가 되고 회사를 차린다?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죠.” 정말이다. 주목받는 신예 지휘자 진솔(만 30세·사진)에게 이토록 아픈 상처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대구 MBC 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게임음악 스타트업 플래직 대표’, ‘예술단체 아르티제·말러리안 예술 감독’ 등 갖고 있는 직함만 4개. 진 대표는 어떻게 어두운 과거를 딛고 클래식계 도전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을까. 그녀가 아픈 ‘상처’를 인생의 ‘무기’로 바꾼 방법. 이것으로 그녀의 인생 변주곡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 지휘자 진솔의 에너지 넘치는 지휘 모습을 음악과 함께 감상해 보세요.


1악장. Allegro bruscamente(빠르고 거칠게) - 용기와 반항 사이


‘누군가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유일한 삶의 목표였던 탓일까. 진 대표의 방황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대입에 실패했고 가출이 잦아졌다. 부모님과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날이 갈수록 반항심만 늘었다. 재수 학원과 피시방만 좀비처럼 오가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장래희망’이 생긴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 반골 기질 때문이었다.

“세이지 오자와라는 유명한 일본 지휘자가 있어요. 그 분의 지휘를 보고 감명 받아서 나도 지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심하게 반대하시는 거예요. ‘여자가 지휘? 성공 못할 일이야’라면서요.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날로 집을 나와 부모님 몰래 입시 준비를 시작했죠.”


플래직 대표와 동시에 대구 MBC 교향악단 전임 지휘자를 맡고 있는 진 대표. 그녀는 지휘자와 CEO의 자리가 사람을 움직이고 조직을 이끈다는 점에서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흔한 레슨도 받지 못했다. 입시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곡가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덕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익혀온 음악 감각 하나만 믿고 홀로 시험 준비를 했다. 언감생심이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합격했을 때를 떠올리며 진 대표는 “하늘이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거칠게만 흘러가던 그녀의 인생 1악장에 경쾌한 멜로디 한 줄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합격한 게 그만큼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입학하고 나서도 한동안 적응을 못했어요. 저 빼고 전부 범생이더라고요.(웃음) 그러다 장학금을 받아보겠다고 출석에 신경쓰기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수석이 돼 있는 거예요. 어느새 안경 끼고 책만 들고 다니고.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니까 지금의 제가 있더라고요. 하면 되는구나. 노력하면 되긴 되는구나. 전 안 되는 줄 알았거든요.


2악장. Adagio(침착하고 느리게) - 결핍의 미학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한 진 대표는 2012년부터 전문 지휘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에게 쉽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 ‘여성 지휘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생경하던 시기. 진 대표는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설움과 분노의 경험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어린 여자 지휘자라는 이유로 아래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20대 초반에 어린이 합창단을 우연히 맡게 됐는데, 제가 담당한 아이들도 여자가 리더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더라고요. 서류 심사로 채용되는 오케스트라에서 저만 리허설 면접을 따로 본 적도 있고요. 처음엔 분노했지만 ‘내가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여성 지휘자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제가 그 시기에 놓여 있는 거잖아요.


그녀의 지휘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다. 그 모습만 봐도 클래식 음악과 오케스트라, 클래식 산업에 대한 지휘자 진솔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남다른 사명을 갖고 묵묵히 지휘봉을 휘두른 7년. 진 대표의 커리어는 어느새 그녀가 짊어진 고민의 두께만큼 두텁게 쌓였다. 대구 MBC 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 국립합창단 등 굵직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그 사이 독일 만하임 국립음악대로 유학도 다녀왔다.

그녀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가장 큰 강점으로 ‘도전 정신’을 꼽는다. 4개의 직함이 말해주듯 진 대표는 클래식계에서 도전의 대명사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문 연주 단체 ‘아르티제’를 설립해 공연을 만들고, 연주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작곡가 ‘말러리안’의 전곡을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용기있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용기의 원천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상처’였다고 진 대표는 말한다.

마음 한 편에 항상 어렸을 때의 내가 존재해요. 도전을 망설일 때마다 그 친구가 말을 걸어요. ‘너 이렇게 힘든 일도 있었는데, 지금 뭐가 힘들어?’ 그러면 지금의 제가 답하죠. ‘그러게. 할만 하지. 지금은 더군다나 혼자도 아닌데. 여기서 못할 게 뭐 있겠어?’ 그게 용기 같아요. 어른이 돼서 한 순간 용기가 생긴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모여 저를 만든 거죠.”

▼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플래직 진솔 대표의 ‘덕후론’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3악장. Allegro passionato(빠르고 열정적으로) - 세상을 바꾸는 덕후


차근차근 지휘자로서의 입지를 다져 온 20대가 지나가고, 지난해부터 진 대표의 인생 템포가 다시 빨라졌다. 거칠고 공격적인 1악장과 달리 활기차고 열정적인 선율이 삶의 악보를 가득 메웠다. 그간 체감한 클래식 음악계의 한계와 ‘게임 덕후’ 기질을 바탕으로 게임음악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방황하던 시기에 게임을 달고 살았어요. 갈 곳이 피시방밖에 없었으니까. 중독도 됐었어요. 밤새도록 게임만 하면서 ‘만렙’(최고 레벨) 찍고, 모든 게임을 랭커(순위권)가 돼야 접을 수 있었죠. 제가 게임 덕후고 직업은 지휘자니까 게임음악과 오케스트라 연주를 결합해보자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게임 산업에도, 클래식 업계에도 꼭 필요한 서비스라는 판단도 있었고요.”


플래직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지휘를 체험해볼 수 있는 '컨덕트어스’ 등의 행사도 기획한다. 진 대표는 지휘를 하며 상처를 치유했던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게임 음악을 실제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없었다. 게임사들이 직접 해외 오케스트라를 수소문해 연주 영상을 찍어오는 것 외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 어려웠다. 반면 국내 클래식 업계는 일거리가 없어 연주자들의 몸값이 하염없이 줄고 있는 상황. 두 산업의 수요와 공급을 잇는 방식으로 진 대표는 1년 전 게임음악 오케스트라 공연 기획사 ‘플래직’을 창업했다.

“앞으로 제가 지휘자로 활동하는 데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큰 사업이었어요. 안 좋은 시선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용기를 냈어요. 세상은 ‘도전정신’과 ‘덕후스러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용기를 갖고 각 분야를 선점하면서 바뀌어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다행히 반응이 좋아요. 공연을 하면 관객들이 난리가 나요. 클래식 업계에서도 환영해 주시고요.”



4악장. 피날레 - 그러니까 잘 견디고 살았다


“어린 시절의 내 자신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는 진 대표의 표현처럼 집단 괴롭힘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나이가 들어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서 이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을 어린 자신에게 서른 살의 그녀는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렵게 입을 떼는 진 대표의 눈시울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저는 걔를 정말 아껴요. 원인도 모르고 마음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죽을 위기도 넘겼죠. 이런 미래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예요. 그럼에도 꾸역꾸역 잘 버텨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그 애가 기특하고 고마워요. 지금도 나태해지고 감사함을 모를 때마다 어디선가 쳐다보고 있을 것 같거든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걔를 나의 어두운 면, 상처라고 여겼어요. 지금은 ‘장점’, ‘나의 무기’, ‘방패’. 그러니까 잘 견디고 살았다. 이 얘기 해주고 싶어요.”


글·인포그래픽·영상 촬영/편집= 아홉시 김현주 기자 joo@bzup.kr
사진·영상 촬영= 아홉시 백상진·김경범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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