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아홉시 Jun 28. 2016

나이키 살린 조던, 그 덕에 잘 먹고 잘 사는 남자

신발 복원 전문 기업 '슈케어' 안재복 대표의 이야기

지금이야 ‘나이키 제국’으로 불릴 정도로 운동화의 대명사가 됐지만 1980년대초 나이키는 아디다스, 리복, 아식스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이키가 쟁쟁한 경쟁업체들을 상대로 대역전극을 벌일 수 있었던 건 천재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이 있어 가능했다. 그리고 여기 ‘조던’ 덕에 쏠쏠한 업(業)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신발 복원 전문 업체 '슈케어' 안재복(31) 대표


신발 복원·관리 용품 전문 업체 ‘슈케어’의 안재복(31・사진) 대표는 ‘조던복원전문가’다. 염색이 벗겨지거나 밑창이 갈라지는 등 낡아 더 이상 못 신게 된 에어조던 신발을 말끔하게 수선해주는 일을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 일을 사업화한 건 올해 2월. 사회적기업진흥원의 한 프로그램에 선발돼 창업 비용 등을 지원받고, '안앤리'라는 기업을 설립한 뒤 '슈케어' 브랜드를 만들었다.


신발이 낡으면 버리고 새로 사면 그만인 시대. 그는 왜 헌 신발을 수선해주는 사업에 뛰어든 걸까. 그의 창업 이야기는 1985년 ‘나이키 에어조던’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키 에어조던 시리즈를 신고 덩크슛을 하고 있는 마이클 조던


1984년 당시 NBA 데뷔도 하지 않은 신인이었던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와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고, 다음해 그의 첫 시그니처 농구화인 ‘에어조던 1’이 탄생했다. 나이키와의 계약 직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한 조던은 그야말로 코트 위를 날아다녔다. 에어조던의 인기도 덩달아 고공행진을 기록, 발매 첫 해에만 1억3,000만 달러어치가 팔렸다. 그전까지 죽을 쑤던 나이키의 매출도 이를 기점으로 조던의 덩크 슛처럼 호쾌한 비상을 한다.


이후 나이키는 1년에 한 번씩 에어조던 시리즈를 내놓으며 ‘조던’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었다. 조던 운동화는 폭발적인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매번 부족했다. 발매일마다 나이키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섰고, 학생들이 신발을 사기 위해 수업을 빠지는 일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기까지 했다.


숫자가 붙은 나이키 에어조던 시리즈는 조던의 등번호인 23번까지 발매됐다.



젊은이들의 로망 ‘에어조던’, 신발복원전문가를 탄생시키다


에어조던의 인기가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에 상륙한 건 1990년대 초·중반. ‘마이클 조던’을 필두로 만화 ‘슬램덩크’, ‘농구대잔치’ 등 그 시대를 풍미했던 농구 열풍에 힘입어 농구화의 인기도 함께 치솟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에어조던’을 사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농구 만화 '슬램덩크'


안 대표 역시 ‘에어조던’을 꿈에 그리던 소년이었다. 당시 에어조던 시리즈는 8~9만원대. 어른들도 사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했던 소니 워크맨이 당시 그 정도 가격에 거래됐던 것을 감안하면 초등학생 신분이던 그에게 조던 운동화는 언감생심이었다.   

“너무 갖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까 그냥 조던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에어조던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나이키는 어떤 기업인지 등등. 그렇게 관심을 갖다 보니 헌 운동화를 싸게 사서 깨끗하게 만들어 신을 수 있는 방법도 찾게 된 거죠.”

그렇게 그는 국영수 대신 신발을 공부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된 후엔 돈을 모아 조던을 사 신고, 그동안 습득한 신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신던 헌 신발을 수선해 되팔기도 했다. 그렇게 안 대표는 ‘취미생활’로 조던을 만지작 거리며 신발 복원을 위한 손재주를 익혔다.



‘취미생활’을 業으로 바꾸다


“어느 날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미국에서는 셀프 신발 관리 문화가 발달해서 사람들이 튜토리얼(강의) 영상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 공유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게 안 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우리나라에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에요. 돈이 많이 되는 것도 아니고 관리 방법도 잘 모르는 데다가 조던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이 없었거든요. 이걸 할 수 있는 게 딱 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안 대표는 작년 12월부터 신발 관리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망가져 신을 수 없는 에어조던 신발을 복원하는 과정을 손수 촬영・편집하고, 이를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렸다.


이 영상을 보고 안 대표에게 신발을 맡기는 사람도 하나 둘 늘어났다. 심지어 세계적인 신발관리용품 브랜드 ‘엔젤러스’의 한국 총판에서 용품 일체를 무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연락까지 왔다. “’어, 이거 돈이 되네?’하고 열심히 복원해주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창업을 했더라고요.(웃음)”



‘슈케어’는 현재 월 매출 1,000만원을 달성, 창업 4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긴 ‘유망주’ 기업이다. 신발 복원 사업이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전문 기술’ 분야인 까닭에 초기 비용 회수를 빨리할 수 있었다.  


슈케어는 최근 중소기업청 지원사업에도 합격해 융자금 지원도 받았다. 이 돈을 연구・개발(R&D)에 대거 투입해 ‘국산’ 신발관리 용품을 최초로 생산하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웠다.


“처음에는 신발 복원 사업만 했었는데 제가 (신발을 복원하는 데) 쓰는 관리 용품에 대해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전문 관리 용품도 같이 판매를 하게 됐는데, 이 물건의 95% 이상이 해외 제품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만들고 있는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그래서 많이 쓰이는 관리물품들은 저희가 직접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조업에도 뛰어들었죠.”



시대 흐름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다시 에어조던 시리즈가 탄생하기 전인 80년대 중반의 이야기. 당시 나이키 창립자 필 나이트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케팅’을 불신했다. 광고는 허상이고 결국 중요한 건 좋은 기술과 품질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디다스나 리복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전례없이 몸집을 불려나가는 동안 나이키의 매출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그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남자가 신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던 ‘데이빗 포크’다. 그에게는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있었다. 포크는 조던의 가능성을 눈여겨 보고 있었고, 이 천부적 재능을 지닌 선수와 좋은 스포츠브랜드의 결합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조던을 ’하늘을 걷는 사나이’라 칭하며 기업들에 적극적인 구애활동을 펼쳤고, 위기에 빠진 나이키가 그 손을 잡았다.


그 결과 에어조던을 출시한 해 나이키의 전체 매출은 10억 달러를 넘겼다. 이를 발판으로 나이키는 1988년 아디다스를 제치고 스포츠 브랜드 1위 왕좌를 탈환했다. 시대의 흐름에 뒤쳐졌던 나이키에 ‘신의 한 수’를 던져준 것이 ‘트렌드 세터’ 데이빗 포크였고, 덕분에 에어조던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안 대표 역시 자신이 짧은 시간 내에 성공 궤도 위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 ‘시대에 맞는 전략’을 잘 짠 덕분이라고 말한다. “신발을 세탁하거나 수선하던 집은 원래 다 있었잖아요. 그런데 전 요즘 시대 흐름에 맞춰 조던을 공부했고, 새로운 마케팅 방식으로 영상을 제작한 것이죠. 흐름에 맞춰 공략을 했기 때문에 지금 사업이 잘 되고 있는 거 아닐까요?”  /김현주 기자  joo@bzup.kr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말에 서툰 그가 한국 창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